달리기는 퍼즐 맞추기

by쿼카의 하루

도시에 살다 보면 서로 많은 것을 나누는데도 말조차 걸지 않는 모임이 간혹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러닝크루다. 러닝크루에서는 서로에게 사적인 관심을 표현하는 것을 각자가 조심한다. 일정한 장소에서 만나 정해진 페이스로 약속해 둔 거리를 뛰는 것이 목적인 모임이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힘에 부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호락호락하지도 않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거나 쉽게 생각해 뛰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온 사람들은 보통 두 번은 후회한다. 진심으로 뛰는 사람들 사이에서 뒤쳐져 걷다가 이를 갈며 오기를 맘먹은 것을 후회하고, 준비 운동을 하고 헤어지는 간단한 진행 방식에 실망하며 뛴 것을 후회한다. 그런 사람들은 러닝크루에는 오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러닝크루의 효용은 너무나 단순하다. 그와 동시에 확실하다. 어떤 한 러너가 자주 뛰고 싶고, 뛰어야 하는데 혼자 뛰기는 어렵고 힘들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공감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나는 러닝 자체는 나름의 재미와 희열이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정직하게 트랙이나 코스를 밟으며 달리는 행위는 삶의 원초적인 기쁨을 느끼게 한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움직이는 생물, 즉 동물이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움직이고, 걷고, 뛴다. 살면서 언젠가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이며 과격한 움직임의 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때는 감정과 생각을 분출하고 비워내야할 때이다. 그게 즐거움이든, 욕망이든, 불안이든, 패닉이든 어떤 감정이어도 좋다. 카타르시스라는 단어를 써도 괜찮을 것이다. 청소기 같은 기계도 똑같은 동작만 반복하거나 멈춰있으면 녹슬고 고장나는 법이다. 과격한 움직임에는 춤과 유산소운동 정도가 떠오른다. 나는 두 개 중에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이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유산소 중에 달리기라고 생각한다.


달리기에 재미를 붙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발견하지 못한 나름의 빛나는 삶의 조각을 찾은 셈이다. 그런 조각들이 모이고 합쳐져서 큰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춤이나 수영이나 사이클도 괜찮을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런 과격한 활동들로 맞출 수 있는 커다란 퍼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한 조각을 발견하는 것에는 러닝크루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그 조각은 춤같은 표현의 과격함일 수도 있고 달리기같은 신체의 과격함 일 수도 있다. 한번 혼자 시도해보며 찾아보기를 권한다.


나는 러닝크루 모임에 도착하면 크루원들이 조용히 몸을 풀고, 두줄로 모여 뛰고 있는 장면을 본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신체 능력과 컨디션에 따라 그들 나름대로의 페이스 같은 게 있다. 같은 600이나 530같은 페이스로 뛰고는 있지만, 그들은 비유하자면 한 사람 한 사람 마다 퍼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거의 다 맞춘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크루에서는 같이 뛰지만, 각자 뛴다. 무거운 가방을 매고 팔자를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크루원도 본 적 있다. 그는 남들보다 복잡한, 수백 피스짜리 퍼즐을 풀고 있는 셈이다.


사실 이 퍼즐이라는 비유를 러닝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 즉, 하프나 풀코스, 혹은 울트라 마라톤같은 방향으로 일률적으로 풀어나가고 싶지는 않다. 그런 것은 외적으로 드러내기 손쉬운 목표일 뿐이다. 사람은 생각보다 복잡한 존재여서, 방금 이야기한 러닝만을 위한 목표로 설명하기 힘든 이름의 퍼즐들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다. 나 역시도 내가 가입했던 러닝크루의 크루원들에게 목표를 하나 하나 물어본 것은 아니다. 누구는 살을 빼고 싶어서, 아니면 체력을 늘리고 싶어서,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습관을 들이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각자가 가지고 있는 추상적인 퍼즐들을 맞추어 나가는 공개적인 '퍼즐교실'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교실에서는 선생님의 역할도 중요하다. 선생님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페이스메이커들이다. 페이스메이커들은 처음에 시작할 페이스를 모두에게 물어본다. 오늘은 어느 정도의 분량을 어느 정도의 속도로 맞추어 나가고 싶은지, 혹시 그것이 지나치게 어렵거나 쉬운 것은 아닌지. 달리면서도 크루원들의 상태를 자세하게 관찰해나가면서 자주 물어본다. 목표를 수정해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이어나가야 할지를 말이다. 사실 우리들의 발을 맞추며 지치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 그들의 역할이 그 누구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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