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by쿼카의 하루

모두가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아름다운 곳. 그것이 내가 어릴 적 가지고 있던 시골에 대한 생각이었다. 우리 다섯 명의 가족들은 아파트나 전원주택에서 살 수 있다고 상상하라 하면, 대부분 전원주택을 선택했다. 엄마 정도만 전원주택도 좋지만 아파트도 좋아서, 둘 중 무엇을 고르기 고민된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사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시골에 살아본 역사가 없다. 서울에서 살다가 귀농을 한 외할아버지 부부만 전북 부안에 있을 뿐이지, 모두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 같이 전원 생활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우리 가족이 상상하던 전원 풍경에는 항상 큰 마당과 그 안에 뛰노는 대형견 한 마리가 등장했다. 그 개가 골든 리트리버인지, 그레이트 피레니즈인지는 몰라도 그 커다란 개가 누는 대변과 시시때때로 꼬이는 날벌레와 바퀴 따위의 애로사항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우리가 상상하는 시골에 대한 그림은 항상 막연하고, 어디선가 주워 듣거나 본 인상적인 디테일들 뿐이라서 이야기 하는 것에 재미는 있었다. 아빠가 숯을 구해와서 바베큐를 해먹을 수도 있고, 주변에 강이나 바다가 있으면 형이나 내가 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구워먹을 수도 있다. 매일이 캠핑을 가는 것 같은 그런 하루들이 이어질 것을 상상하니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다섯 가족들의 전원 생활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시골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싹틀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싹은 생각보다 빠르게 생명력을 잃게 되었다. 나는 결국 삼십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가끔 외갓집에 놀러가거나, 여행을 갔을 때 빼고는, 집 밖에 나가기만 하면 편의점이 있는 곳이 아니면 왠지 답답했다. 이사를 해야 한다면 일단 그 집 근처에 지하철역이 있는지를 찾아볼 것이었다. 내게 '인프라'라는 말은 단순히 며칠만 머물러야 하는 임시 거처에서도 쓸 수 있는 단어가 됐다. 시골에서 이름 모를 나무나 풀들을 조우하는 것보다는 도시의 가로수들이 내뿜는 초록으로 계절을 느낄 수 있음에 만족한다.


또한 번화한 도시이기에, 가질 수 있었던 추억들이 있음에 내 나름대로 감사한다. 물론 자연에 대한 교감이 없다는 것, 미묘하게 풍랑이 변화함을 발견하고 초목들의 이름을 부르며 가까워질 수 없다는 것에 아쉽기는 하다. 그런 순간들을 포착해 문장으로 남길 수 없음도 안타깝다. 그러나 내게는 조그마한 킥보드를 타고 집 주변 아스팔트길을 돌다가 무릎을 까진 사소한 일이 기억난다. 그 언덕 내리막길이 어릴 때 봤을 때는 얼마나 높아보였는지도. 그리고 그 골목 중간에 있던 감자탕집에서 먹었던 반찬들, 특히 계란말이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기억난다. 친구와 수많은 간판들을 보며 따라부르며 웃었던 기억들. 친구가 바보같이 말했을 때 더욱 크게 웃으며 놀렸던 것도 기억난다. 사람들이 많은 마을버스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던 것 역시 말이다.


사실 옛날에 살았던 고향인 서울로 돌아가보면 어딜 가든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 도시가 그새 오랜만이라고 나를 반기고 있구나라는 그런, 간질간질한 감정. 그 사이에 바뀐 것들이 참 많이 있다. 분식집이 있던 곳에 카페가 들어섰고, 치킨을 팔던 곳은 이제 공터가 되어 주차된 차들이 들어차 있다. 나는 빠르게 바뀌어 버린 것들에 그런 감정이 들까? 아니면 변하지 않는 그 길들, 그 골목들에서 느낄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어느 때나 살던 그 동네를 찾으면 예의 반갑고 몽글몽글한 감정이 든다는 것이다. 정말 도시가 나를 반기고 있을까? 시간을 뛰어 넘어서 지금의 내가 그곳에서 걷고 있는 어린 나를 만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 감정의 출처를 나이테에서 찾았다. 마치 나무가 한 해를 살 때마다 더해지는 나이테처럼. 내가 십 년 넘게 오래 살았던 그 동네에서 쌓았던 추억은 켜켜이 덧대어져 있다. 넘치는 반갑고 기쁜 감정들은 내가 그 동네에서 경험하고 쌓았던 감정들이었다. 우리 가족들이 지지고 볶고, 서로 울고 웃었던 기억들이 그곳에서 채 언어가 되지 않고 나무처럼 서있었다. 햇살처럼 환하게 반기며, 그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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