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들의 연대

by쿼카의 하루

저마다 가리고 싶은 그림자가 있다. 보이기 싫은 약점이라든가 숨기고 싶은 과거 같은 것들. 우리는 그것에 나름대로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혹은 그 그림자가 시작된 발끝에는 어떤 기억이 있을지 머릿속을 더듬어 찾아볼 수도 있다. 나의 발끝에는 항상 '그 기억'이 있다. 사건이 내 안에 새겨진 이후로는 거의 항상 혼자가 된다는 것이 두려웠다. 이제 와서 피해를 입힌 사람에 대해서 고발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초등학생 때까지 안경을 쓰고, 왜인지 눈을 작게 뜨고 다니는 남자아이였다. 학사모까지 쓰고 찍은 유치원 졸업사진에는 감정의 동요는 거의 느끼지 않는 듯 차분한 눈매와 직선의 눈썹을 하고 있는 내가 있다. 그러나 당시의 내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예측불허함과 예민함마저 있었다. 수련회 전날이나 특히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에는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기대가 된다기보다는 불안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주체하지 못해서였다.


나는 중학교를 전라북도 완주에 있는 기숙사 학교에서 다니게 됐다. 서울 종로구에서 나고 자랐던 내가 그렇게 먼 중학교에 진학한 이유는 어렸음에도 공부에 나름대로 흥미를 붙여 착실히 잘해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할아버지께서는 손주들 중에서도 유달리 나를 사랑하셨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부모님께 학교에 관한 신문기사를 오려서 공바카라에 붙여놓은 것을 펼쳐 보여주었다. 똑똑한 아이들만 다니는 학교이고, 배치고사라는 시험을 치르고 가는 좋은 학교라고. 심지어는 할아버지의 지인의 지인이 교장선생님으로 계신 학교여서 더욱 애정이 간다고 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부모님을 적극 설득하시고, 나에게도 의견을 물어보았다.


나는 당시 하나의 생각을 길게 이어서 할 수 있는 나이였다. 그러나 자아 혹은 의심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에, 어른들이 시키면 일단 열심히 했다. 일례로, 나는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화가 나서 벌로 교실 청소를 시키면 별다른 불만 없이 어떻게 깔끔하게 해야 선생님이 노여움을 푸실까를 고민하는 착한 아이였다. (내 상상 속에서 선생님은 내가 청소해 놓은 것을 보고 화를 푸는 건 당연하고, 압도적인 깔끔함에 감탄 속 기쁨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간곡한 설득과 감언이설, 그리고 적극적인 후원에 이끌려 단 한 번의 저항이나 의심 없이 그 기숙사 학교로 진학을 결정했다. (성인이 된 나였다면 비싼 유학을 보내주신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방향으로 지레 의심부터 했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별별 일을 다 겪었다. 6시 기상에 6시 반부터 운동장을 뛰게 하는 버거운 아침 루틴을 따라야 했고, 7시 정도에 시작되는 아침 식사 시간을 놓치면 더 이상 아침을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거의 아침을 먹지 못했는데, 빨리 자고 빨리 일어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숙사는 그다지 편안하지 않았다. 침대 없이 이불을 깔고 자야 했고, 있는 것이라고는 사물함과 비좁은 개별 화장실이었으며 흡사 군대처럼 중3과 중2 형들이 룸메이트로서 신입생들의 기강을 잡았다. 부모님이 계시는 안락한 집은 저기 서울에 아스라이 멀리 있는 것이었다. 14살이었던 나는 입학한 지 한 달 만에 5kg 이상 빠져서 점점 말라갔다.


그러던 중에 '그 사건'을 겪었다. 4월의 밝은 낮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점심시간이었기에 햇살처럼 하얀 식탁에 식판을 올려놓았다. 내가 굳이 반 친구들을 피해서 다른 식탁에서 먹으려고 했던 이유는 단순히 밥을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먹고 싶어서였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러던 나에게 A라는 아이가 나를 한번 쏘아보았다. 그리고는 왕으로 따돌린다는 의미의 왕따,라고 큰소리로 외치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우스꽝스럽게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모두가 웃으며 떠들썩해질 때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A가 그 모욕적인 말을 한 순간과 모두가 왁자지껄해지는 순간 그리고 그 이후에 내가 느낀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매우 오랫동안 지속된 것만 같다.


그 이후로 나는 뼈가 시릴 정도로 아픈 고독감을 느꼈다. 어쩌면 당시 나에게는 외로움보다도 고독 그 자체가 무서웠다. 원래 혼자라는 건 견뎌야 하는 사실이라는 걸 알기도 전에 남들이 바라보는 내가 혼자라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A 때문에 몇 번을 서럽게 울어본 뒤에야 비로소 고독이 원래는 고통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외로움이 생각보다 괴로운 감정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 사실들은 중학생 때 경험한 거의 최초의 아이러니였다. 가짜의 고통이 끝난 뒤에 진짜 고통이 시작된 것이다. 그 사건은 나의 세계를 깨뜨리고 나아가는 계기가 아니라, 마치 부활절 달걀에 덧씌운 장식 같이 나를 꽁꽁 싸매는 사건이었다. 이제야 나는 그것이 비극이었다는 것을 안다.


당시 나에게 드리운 그림자의 발끝에는 '그 사건'이 있지만, 현재 내가 가진 그림자에는 이름 하나를 붙여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돈'이다. 돈은 언제나 나를 난처하게 만든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곰곰이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다. 당시의 내가 느낀 뼈아픈 고독처럼, 돈만이 주는 고통이 있다. 남들한테도 있는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실제로 통각을 느끼는 통점, 추위를 느끼는 냉점처럼, 돈에 고통을 느끼는 '돈점' 따위가 있는 것 같다.


이상하게 통장의 잔고만 보면 우울해진다. 적은 금액이지만 현금카드나 신용카드를 쓸 때마다 나는 자그마한 괴로움을 감지할 수 있다. 내게 남은 돈이 사라질 때마다 딱 그만큼씩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는 것 같다. 점점 혼자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아마 돈 대신 선택한 꿈이라는 게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꿈을 선택한다고 돈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보통 멋진 꿈을 꾸는 데는 비싼 돈이 들 것이다. 더 좋은 것을 위해 약간 좋은 것을 포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혼자가 되어야 할까? 지금의 나에게도 어쩌면 그런 두려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그런 두려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지도 모르는 나에게, 그리고 돈보다 꿈을 선택한 모두에게도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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