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세상

by쿼카의 하루

처음으로 태국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방콕에서 여행 일정을 마치고 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거의 직각으로 세워진 좌석은 불편했고, 양 옆에 두 명의 건장한 승객들은 팔걸이를 좀체 내어주지 않았다.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하면 왼쪽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고, 나간다고 조용히 손짓해야 하는 번거로운 상황. 비행은 4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평소에 폐소공포증 같은 것은 없지만, 없던 공포증마저 고개를 내미는 듯했다. 다음날 아침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수하물을 찾고, 입국 수속을 짧게 마쳤을 때는 정신이 몽롱해진 나를 발견했다. 두 시간이나 짧아진 밤에 적응하려는 정신과 밝은 공항 안에서 깨어나려는 몸이 분리되고 있는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간신히 붙잡고,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에 오른 뒤로는 기억이 없다. 아마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해외여행은 그랬다. 비교적 짧은 두 시간의 시차임에도 그 존재를 뼈저리게 느끼며 불편해했던 기억. 아마 시차만 없었으면 여행이 더욱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 아니었을까 싶은 마음도 든다.


비단 시차는 해외여행을 갈 때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나이대별로 해야만 하는 과제 같은 것들이 있다. 아마 누가 일부러 정해준 것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면, 10대에는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야 하고, 20대에는 남자는 군대 여자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30대는 결혼과 취업을 하고, 40대는 온라인 게임에서 자리를 잡고, 결혼을 했다면 육아를 해야 한다는 그런 기준. 크게 봤을 때는 이렇게 단순한 편이지만, 작고 사소한 것까지 본다면 매우 복잡할 것이다.

언젠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무슨 일을 하기에 몇 살이 늦을까요?라는 종류의 수많은 글들을 본 적 있다. 그런 글들은 대개 댓글들도 많이 달려 있다. 댓글들을 보면 28살은 늦지도 빠르지도 않지만 30살이면 늦었다, 같은 정밀해 보이는 기준이 마치 정설처럼 떠받들어지고 있었다. 슬롯가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재단하면서 굴러가고 있는 것이라면 조금 두려워지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한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더라도 모든 세상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삶의 시기별 해야 할 과제라는 이름의 줄자가 가상으로 존재할 것만 같다. 만약 그런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슬롯와의 '시차'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다. 슬롯적인 시차를 겪는 사람들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져있다는 생각에 고통스럽고 불안해진다.

세상을 살면서 이런 크고 작은 시차들을 보면서 시차라는 게 아예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보기도 한다. 모든 세계인들이 같은 시간과 같은 나이대를 산다는 건 상상하기조차 힘든 괴상한 모습일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적어도 시차는 지구가 자전하는 현상과 다수가 모여사는 슬롯가 존재하는 한 여전할 것 같다. 하지만 위로가 될 만한 말을 적어보자면, 시차의 존재는 생각보다 세상을 재미있는 곳으로 만드는데 일조한다는 것이다. 항상 모든 게 그렇듯 시차의 당사자가 아니라면 시차는 세상을 조금 더 풍요롭고, 다채로운 곳으로 만드는 재료 중에 하나일 뿐이다.

늦은 밤에 올라온 지인의 SNS나, 가족의 연락으로부터 도착한 파리, 런던, 그리고 암스테르담의 사진들. 그곳은 아침이거나 밝은 대낮이라고 했을 때 우리의 호기심. 그와 계속 이야기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곳은 어때? 나는 이제 잘 준비하는데 밥은 먹었어? 여행지나 출장지에서 눈부실 만큼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시차라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고 말이다. 또한 뒤처지거나 전혀 다른 삶의 과제들을 완수해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생각한다. 그들도 나름대로 자신의 삶 속에서 분투하며 살아가고 있구나,라고.

우리는 사실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있다. 공간을 너머, 가끔은 시간까지도 초월하며. 그러나 아무리 시차가 있는 타국이라고 해도, 우리는 다른 시간 속을 살고 있는 게 아니다. 시차란 동일한 순간을 이르는 서로 다른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침이 가리키는 초가 똑같은 단 하나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단 하나의 삶을 영위하며 같은 초(秒)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두 그 자체로 다채로운 여행지의 풍경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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