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감정들을 섞어보는 너의 손아귀*
녀석은 여전히 스스로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꾼다.
내일의 내일에서 이어진 언제까지라도 이어질 것만 같은 일상이다. 이런 탓에 하루걸러 하루마다 모습이 바뀌는 사람을 소재로 찍었던, 어떤 영화가 떠오를 때가 많은데_ 자유로이 대화를 주고받는 영화와 달리, 녀석과 나의 공전에는 주고받을 언어라고 할 게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방적인 나의 언어만이 녀석과 나 사이에 머문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녀석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언어의 하위쯤으로 여겨질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기껏 한다고 해봤자 내 말을 알아듣고 고갤 끄덕이거나 어딘가 어설픈 몸짓을 한다든가, 무언가를 말하듯이 하는 웅얼거려도 그저 소리를 내기만 하는 수준이지. 녀석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직도 그러하다. 물론 몸짓이나 손짓, 웅얼거림까지 언어라고 친다면 나름의 언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_ 언어의 기준이랄 게, 그렇게까지 느슨해지면 내가 사람인 이유가 사라질 것만 같으니까. 누구도 기쁘지 않을 배려, 그것과 빼닮은 생각 따위는 그만 소등했다.
이전에도 곧잘 그랬지만
요즘의 녀석은 유독 창밖을 바라본다.
그 모습이 어떤 날에는 출소날짜를 헤아리는 죄수와 같은 때도 있고, 여느 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공주라도 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고 있으면 종종, 아무런 의도 없이 할당된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때문에 녀석은 닿지 않을 그 무엇이 그토록 신기한지, 곁에 다가서지 못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건지. 그 의중이 심히 궁금해질 때가 많기도 많다. 이러하여 한가한 때라면 곁에 다가가가 무얼 보고 있었는지. 언어를 이해하긴 하지만, 그것을 입에 담지 못하는 녀석에게 물어도 보는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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