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시선 64
아침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콩을 갈았다. 나가야 할 일이 있는 터라 후다닥 갈아 커피를 내리는데, 그 짧은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커피야 빨리 내려오너라. 내가 좀 바쁘단다.”라는 주문을 외면서 그 시간을 틈타 오르락내리락 까치발을 한다. 급하게 내린 커피는 맛이 다르다. 마시는 동안의 한가함을 잃으면 커피는 그저 쓴 맛으로만 머문다. 마치 기다림이 생략된 연인 사이 같다고나 할까. 요즘 들어 별반 급한 일이 아니면서 커피 내리는 일에 여유롭지 않다. 무뎌진 습관 하나를 치르듯 아침마다 마시는 커피가 의무감이 된 것 같다.
커피를 마시는 일은 오롯이 나를 위한 행위이고,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호흡이다. 커피는 목넘길 때의 제대로 된 쓴맛에서 존재 이유와 고급함이 생성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커피 마시는 시간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바로 나를 위한 다정함을 잃고 있다는 사실에 다름없다.
다정다감多情多感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나는 다정하지도 다감하지도 않다. 간혹 말의 억양 때문에 다정한 사람인 듯 하나, 스스로에게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감성도 감정도 풍부하지 않아 이성적인 면에 가깝다. 눈물은 흘리되 한없이 친근한 감정으로 흐르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징징거리는 사람을 참을 수 없어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막 취업했던 때였다. 거리에서 중학교 때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주말에 약속하고 만났을 때 그 아인 나에게 자신의 얘기를 늘어놓았다. 처음엔 그저 들어주었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끝없이 자기의 푸념을 쏟으며 감정 친구이기를 바랐다. 조곤조곤하게 이어지는 친구의 넋두리가 힘겨운 내 삶에 또 다른 무게를 싣는 것만 같았다. 급기야 나는 친구에게 당분간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아마 인생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놓은 친구 같다. 감당하기에 정말 버거웠다. 그때 마신 커피는 무척이나 썼고, 맛이 나지 않았다. 다정함을 상실한 커피 타임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후 생각해 보니 그 친구는 마음이 많이 아팠던 것은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게 자기를 알아봐 달라고 골 깊은 투정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보았으나, 사실 그 무렵 나 역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의 손을 놓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카페와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던 친구의 모습이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다. 시린 나무 한 그루가 아직도 차가운 바람에 떨고 있을 것만 같다. 말랐고, 눈망울이 컸으며, 목소리가 작았고, 키가 껑충했던 아이가 지금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이제 와 궁금한 것이다. 내 형편과 사정에도 불구하고, 그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다정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것이다.
하고 싶었고 가고 싶었던 삶의 방향이 순식간에 어그러졌을 때의 황망함을 추스르지 못하고 내 나름의 소심한 반항과 방황을 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회사를 마치면 독서실로 향했다. 다행히 회사 바로 앞이어서 오가는 시간을 아낄 수 있었고, 버스 정류장도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나름 괜찮았으나, 단점이라면 회사 직원들의 눈에 띌까 전전긍긍 노심초사했다. 잘 다니는 회사를 두고 굳이 어려운 일을 자처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스무 살의 자존심이었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주어진 환경에 대한 내 나름의 원망 표시라고 여겼다. 나를 혹독함 속으로 몰아넣어야 누군가로부터 이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친구는 성가신 존재로만 보였다. 나도 힘들다고, 그러니 제발 나에게 투정 부리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애원했던 결론은 그 아이와 거리를 두는 일이었다.
몇 번의 시험을 치르는 동안 결기도 고집도 지쳤던 것일까. 그 후로 나는 바카라을 읽기 시작했다.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를 필사했다. 카뮈와 쇼펜하우어, 전혜린과 오정희, 실비아 플러스의 문장에 전율했다. 그럼에도 어찌 된 일인지 그때의 내가 측은하기만 했다. 다독다독 나를 위한 다정함이 없었던 것일까.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일도 이 무렵이었다. 커피를 마주하는 시간만큼은 철저히 나만의 시간이었다. 그 누구한테서도 방해받지 않는 내 작은 숨통의 공간이었고 시간이었다. 나를 위해 그 시간을 다정하게 썼다. 그러고 보니 남편의 프러포즈도 커피 마시며 오래 함께 살자는 말이었던 것 같다. 퍽 싱겁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다정함이다. 오로지 나를 위한 약간의 다정함을 말한다. 세상 모든 사물과 사람을 다정함을 장착하고 대했을 때 내 마음도 조금 누그러졌다. 다정도 과하면 병이라는데, 넘치지 않는 다정함은 나와 타인을 향한 미덕임이 틀림없다. 오후엔 약간의 다정함이 가미된 커피를 내려볼까. 천천히, 커피만 생각하고, 나만 생각하면서, 영화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처럼, “맛있어져라! 커피!”라고 말하며 다정함이라는 주문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