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무늬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아

보통날의 시선 63

by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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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다른 ‘나’로 산다면 어떤 삶일까? 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미 내 곁에서 많은 시간이 흘러가 버린 후라 딱히 다른 삶의 ‘나’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의 삶이 지극히 만족스럽냐면, 그렇지는 않다. 대체로 행복의 만족도 수위 문턱이 낮으므로, 그것이 내 삶의 관점을 크게 좌지우지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질문에 대한 답을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것으로 대신하면 어떨까.


한때 성직자를 꿈꾸었다. 처음 어디서부터 형성된 것인지는 모를 일이나, 스무 살 무렵 성직자가 되고 싶어서 관련하여 바카라을 읽었다. 종교가 없는 환경이어서 딱히 정해 놓은 것은 없었으나 스님이나 수녀가 될 수 있다면 하고 바랐다. 그 당시 누구도 진로를 상담해 줄 사람이 없어서 무척 외로웠다. 신문을 보거나 방송, 바카라을 통해 알음알음 찾아간 비구니만 거처하는 절이나 성당, 교회의 문을 기웃거렸다. 생각해 보면 그 무렵의 나는 나를 바로 보지 못하고 투철하지 못했다. 어물쩍 일상의 삶과 화해하고 말았다.


최근 우연한 기회에 성격 테스트를 받게 되었는데 결과에 깜짝 놀랐다. 놀랍게도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될 확률이 아주 높게 나왔다. 종교가 없는 지금의 내 모습에 웃고 말았으나 정말 그 길을 걸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뒤늦게 말이다.


어린 시절 친구 따라 마을 교회를 다녔던 적이 있다. 일요일 아침이면 대문 앞에 서서 큰소리를 나를 불렀는데 동생이 많은 나는 집을 나서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교회에 가곤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유년부 선생님의 성경 말씀 듣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말끔하게 세수한 선생님의 이마는 늘 빛이 어려 있었다. 조무래기들을 앉혀 놓고 알아듣기 쉽게 차근차근 하느님 말씀을 이해시키며 찬송가를 불러주던 선생님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도 열심히 했다. 어린 마음에도 말씀을 전하는 선생님의 모습과 역할이 귀하게 다가왔다.


선생님은 마을을 끼고 있는 언덕길에서 문득 나타나곤 했다. 성경과 찬송가 바카라을 옆구리에 끼고 일주일 동안 노동했던 허름한 옷을 깨끗이 세탁한 셔츠 차림으로 어김없이 교회 종탑을 끼고 걸어 오셨다.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 알았던 것일까.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일은 선하고 향긋한 일일 수 있음을, 그래서 나도 막연히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어느 날 친구가 “오늘 저녁에 부흥회라는 행사가 있는데 꼭 같이 가자.”라고 말하며 온 교회 식구가 모이는 축제라고 했다. 한껏 마음이 설렜고 궁금했다. 어떤 행사인지. 그런데 나는 그날 이후로 교회를 다시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 사람들이 갑자기 바닥을 치면서 울부짖었다. 통곡하는 이가 있었고 하염없이 하느님을 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나는 큰 충격을 받고 다시는 그곳을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교회에 나가지 않는 나를 위해 한 친구가 넌지시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을 때 누군가 어른이 잘 다독여주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며,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했으나, 나는 그때의 무섬증이 트라우마가 되어 있음을 다시 상기시켰을 뿐이다.


성경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친구와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 너는 꼭 교회에 나가게 될 거야.”라면서 진심으로 교회에 나가는 내 모습을 보고 싶어 했던 친구도 있다. 글을 쓰는 나를 위해 큰 시누이는 성서 한 권을 선물해 주셨다.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말씀이 많을 거야. 한번 읽어 보게나.”라면서 따뜻한 마음까지 보태주셨다.


그런데 재밌는 현상을 겪으며 살고 있다. 최근까지도 받는 질문 중 하나는 혹시 목사 사모가 아니냐는 말이다. 친구들 대부분이 종교를 가지고 산다. 그런데 그녀들은 그런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없단다. 친구들이 식사 전에 하는 간단한 기도 행위가 좋다. 함께 기도하며 일용할 양식을 준 이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밥을 맛있게 먹는다. 그녀들이 행하는 종교에 대한 신뢰를 존중한다.


일요일 아침이면 교회로, 성당으로, 혹은 절에 나가기 위해(14층에 사는 여사는 절에 다닌다.) 깔끔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아파트를 나서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잘 살았으니, 몸과 마음 가지런히 하고 기도하는 마음이 참 어여쁠 것 같다고.


친구로부터 선생님 소식을 들었다. 같은 마을에서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당신도 어르신들과 함께 늙어가고 계신다는 것이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선생님이라면 아마 그런 보람된 일을 하고 계시지는 않을까 생각하곤 했는데 역시나 그랬구나.”라며 친구와 함께 어린 시절 아주 잠깐 다녔던 교회 이야기를 실컷 나눴다.


새삼 이제 와 종교를 갖는 일은 없겠으나, 종교가 아닌 말씀을 따르는 그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사는 일에서 중요한 것은 지극히 소박한 것에서 오는 작은 희열이다. 별것 아닌 것들로 이루어낸 값진 성과가 나를 환하게 하는 순간이라고 여긴다. 그러고 보니 삶이라는 게 달리 뭐 거창한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일상을 윤기 있게 닦으려 애쓰는 일, 이것이 곧 주어진 삶을 기꺼이 사는 일이며, 일상에서 종교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일은 아니겠나 싶다.


지금과 다른 ‘나’의 삶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묻는 게 아니라, 지금 살고 싶은 ‘나’로 상정하고,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아! 라는 말을 나에게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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