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무늬 -웃음은 인간의 특권

보통날의 시선 65

by호랑
보통날의 시선 65 정미소 그림.jpg

평소에 잘 웃는 사람이 좋다. 그러다 보니 남을 웃게 만드는 사람도 곁에 두는 걸 좋아한다. 대놓고 웃음보따리를 풀어 놓는 사람이 아니라 재치 있는 말에서 묻어나는 느슨함을 즐긴다. 대체로 잘 웃거나 웃길 줄 아는 사람 옆에 있으면 덩달아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부터다. 웃음도 전염된다. 환한 얼굴로 힘껏 웃어 재끼는 사람을 보면 즐겁다. 개그 장벽이 낮아서 그렇다고 하지만, 사심 없이 웃는 얼굴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내가 저 사람을 단연코 웃게 만들어야지 하는 의도를 가지고 구사하는 유머 말고 일상에서 툭 던지는 재치 있는 한 마디 말로 옆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사람이 더러 있다. ‘웃음이 인생의 한 가지 쾌락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 현자가 아니다’라고 했던가. 웃음이야말로 인간에게 허락된 특권이다. 이 웃음의 스릴을 느끼지 못한다면 건조한 삶에서 어찌 소소한 즐거움을 지니고 살 것인가. 사소한 일에 잘 웃는 편이지만, 나는 늘 위트가 있는 사람을 향해 시선을 둔다.


위트는 파격이다. 아무도 걷지 않은 길에 슬쩍 내딛는 용기의 한 걸음이다. 긴장 끝에 오는 한 줄기 숨이고 해방감이다. 웃음과 냉소 사이를 저울질하는 한 끗 차이다. 그럼에도 위트는 품이 넓다. 한 마디 촌철살인의 말에 옹졸했던 어깨가 쭉 펴진다. 그리하여 살아갈 날의 힘이 실린 어깨는 저절로 반듯해진다.


순간순간 상황 개그를 잘하는 그의 언어는 눈앞에 있는 사람을 순식간에 무장해제 시킨다. 유머도 자기 코드에 맞으니 웃는 것이다. 웃기는 사람이 아니라 웃음 유발자인 그의 개그와 위트, 여느 때의 해학까지 닮고 싶다고 생각한 지 오래다. 그에게는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유머가 있다. 언제 누구를 만나도 일단 말로서 타인을 즐겁게 한다. 그렇다고 그 말이 허풍이나 진솔하지 않은 말이 아니다. 즉석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현실에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공감이 크다. 그를 만나면 실컷 웃고 깨알 즐겁다. 삶이 별거 아니구나 싶고, 단순하고 단출하게 자기를 돌보며 살고 있는 그가 퍽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긴다. 그를 보면서 더 많이 웃어야지. 나도 위트 한 자락 멋지게 날려 봐야지. 다짐하곤 하지만 그때뿐이다.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본바,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그의 말을 듣고 생각하면 “아, 그래 맞네!”라면서 뒤늦게 맞장구를 친다. 철학이라고 무슨 거창한 지식이나 이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사람과 사물을 주의 깊게 볼 줄 아는 데서 오는 친근함이 배어 있다.


언젠가 집이 너무 삭막한 것 같다며 화원에 좀 들르자는 그의 말에 잘 죽지 않는, 키우기 쉬운 다육식물을 들려 보낸 적이 있다. 수시로 보살피다가(물을 많이 준 것) 죽고 말았다며, “그나저나 식물 키우기 쉽지 않고만요. 집을 나설 때 바라보고 저녁에 돌아와서 보면 뭔가 얘들이 말을 걸어 올 것 같아 제가 먼저 말을 걸어요. 허허, 고것 참, 매이면 안 되는데, 나 붙잡으면 골치 아픈데, 적당히 하자고 하려고요.”라면서 능청스레 애정을 표현한다. 다행이다. 그가 하찮은 생명에도 몸을 낮출 줄 알아서, 작은 기쁨으로 제 일상을 돌볼 수 있어서.


“대한민국 개그계로 안 나갔으니 망정이지 네가 나갔으면 잘나가는 개그맨 다 죽었어.”라고 말하면, “허허, 여기서 살기 천만다행이네요.”라고 말하면서 웃어넘긴다.


다수의 사람이 그를 한 번 만나고 팬이 되었다고 할 만큼 누구에게나 호불호가 없는 편이다. 가진 돈이 많아 넉넉하게 베푸는 것은 아니나, 밥도 술도 잘 산다. 자기관리를 아주 잘한다고 보지는 않지만(자유분방함), 본인이 자족하며 사는 걸 보면 순전히 내 기준에서 바라볼 때의 것이다. 혼자서 먹는 밥도 대충 먹지 않는다. 아침 밥을 거의 거르지 않고 무엇이든 챙겨 먹는 습관을 유지하며 살려고 애쓴다. 그를 위해 반찬을 가져다주곤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제 식구 챙기듯 한다. 넘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그는 “거기까지 합시다.”라고 말할 줄 안다.


얼마 전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입국 심사대에서 모자를 벗어 보라는 직원의 요구에, “내가 모자 벗으면 상당히 더울 텐데 그래도 벗을까요.” 했다던가. 모자를 훌쩍 벗고 그가 한 말, “거 봐요. 이 더운 날 나무 한 그루 없잖아요. 내 바카라임 아녀요.”라고 말하며, 어리둥절한 직원을 두고 공항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어디 웃을 일이 많아서 웃는가. 웃으니까 즐거운 것이지. 그와 만나면 무슨 얘기 하면서 웃고 재밌었느냐고 아이들은 꼭 묻는다. 한바탕 재미있게 즐겁게 지내고 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이어서 어른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게 한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문턱이 낮고 접근성이 수월해 만인의 친구가 되는 사람 말이다. 그가 그렇다. 그러나 실속 없는 사람이 아니다. 명랑한데 가볍지 않다. 내가 만난 사람 중 으뜸에 그가 있고, 유머가 그를 따른다. 그는 나를 큰누나라고 부른다. 여섯 살 터울인 그의 돌떡을 내 손으로 돌렸다.


그가 있어 내 삶이 즐겁다. 앞으로도 우리는 많이 웃을 것이 분명하다. ‘질병과 슬픔이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강하게 살도록 만드는 것은 웃음과 유머밖에 없다.’라고 한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의 말이 새삼 와닿는다. 유머를 놓치고 싶지 않아 나는 오늘도 그의 유머를 따라 해 보려고 한다. 아이들을 상대로 휙, 아주 짧은 조크를 날려 본다. 통할지어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겨울의 무늬 - 약간의 다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