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는 쓰는 것이고, 원고는 버리는 것이다

초고는 왜 이렇게 못생겼을까

byMiracle Park

첫 원고를 읽고 작가가 된 것을 후회했다. 그런데 그 원고를 고치지 않고는 다음 문장도 쓸 수 없었다.


첫 원고를 완성한 날, 나는 작가가 된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적어도 한 편의 글을 끝냈으니 스스로를 조금쯤 칭찬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원고를 처음부터 다시 읽는 순간,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첫 문장은 어디선가 본 듯했고, 두 번째 문장은 지나치게 친절했다. 애써 쓴 비유는 어색했고, 감동을 주려고 넣은 문장은 혼자 감동하고 있었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말로 세 번이나 반복한 곳도 있었다. 분명 쓸 때는 괜찮았는데 읽으니 전혀 괜찮지 않았다.


더 난감한 것은 무엇을 고쳐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 문장을 지우면 글이 허전해 보였고, 다시 넣으면 답답했다. 단어를 바꾸고 문장을 다듬을수록 글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낯설어졌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었나?’


초고를 쓰고 실망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 실망이 곧 글쓰기 능력의 부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초고를 완성했기 때문에 비로소 보이는 문제가 있다. 머릿속에 있을 때는 하나의 이야기였던 것이 문장으로 옮겨지는 순간, 허술한 연결과 부족한 설명, 과장된 감정까지 드러나는 것이다.


초고가 못생긴 이유는 작가가 못나서가 아니라, 생각과 문장이 아직 서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초고가 서툴다는 데 있지 않다. 서툰 초고를 완성된 작품처럼 평가한다는 데 있다.


# 1. 쓰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결함

글을 쓸 때 작가는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고 있다. 어떤 경험에서 출발했는지, 그때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 왜 그 장면이 중요한지도 기억한다. 그래서 문장 사이에 설명이 빠져 있어도 머릿속에서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독자는 다르다. 작가의 기억을 공유하지 않는다. 원고에 적힌 문장만으로 인물의 행동과 사건의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그날 나는 큰 상처를 받았다. 그 사람의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나는 한동안 사람을 믿기 어려웠다.”

쓰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설명일 수 있다. 그러나 읽는 사람은 궁금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기에 그렇게 상처를 받았을까? 그 말이 왜 오래 남았을까?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될 정도로 어떤 일이 있었을까?


작가는 기억을 쓰고 있지만 독자는 그 기억을 처음 만난다. 작가에게는 생략할 수 있는 과정이 독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다.


이 간격이 초고의 첫 번째 문제다. 작가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쓰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생략했는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이해하는 사람이 한 사람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초고를 쓸 때마다 독자의 눈으로 모든 문장을 점검해야 할까? 오히려 그럴수록 글쓰기는 느려진다. 한 문장을 쓰면서 동시에 그 문장의 완성도까지 심사하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여유가 사라진다. 초고를 쓸 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문장이 아니라 다음 문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힘이다.


일단 써야 한다. 앞뒤가 맞지 않아도 쓰고, 표현이 진부해도 쓰고, 결론을 아직 모르더라도 써야 한다. 쓰면서 발견하는 생각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서운했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써 내려가고 나서야 그것이 서운함이 아니라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초고는 이미 알고 있는 생각을 옮겨 적는 문서가 아니다. 때로는 쓰는 과정에서 생각을 발견하는 장소다.


# 2. 초고에 완성도를 요구하면 왜 글쓰기가 멈출까

초고를 망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첫 문장부터 잘 쓰려고 하는 것이다.


한 문장을 쓴다. 마음에 들지 않아 지운다. 다른 표현을 넣는다. 이번에는 조금 나은 것 같지만 어딘가 부족하다. 다시 고친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첫 문장 하나를 붙들고 있다가 결국 처음 쓴 문장으로 돌아온다.


문제는 문장력이 아니다. 지금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려는 데 있다.


글을 쓰는 일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는 생각을 문장으로 옮기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그 문장이 제대로 쓰였는지 판단하는 능력이다. 전자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후자는 멈춰 서서 살펴야 한다. 두 가지를 동시에 작동시키면 글을 쓰는 손과 글을 평가하는 눈이 서로 발목을 잡는다.


미국 작가 앤 라모트는 1994년 출간한 《Bird by Bird》의 ‘Shitty First Drafts’ 장에서 초고의 불완전함을 정면으로 다뤘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도 형편없는 첫 원고를 거치며, 첫 번째 원고가 있어야 두 번째 원고와 세 번째 원고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라모트는 자신이 잡지에 음식 평론을 쓸 때도 처음에는 지나치게 길고 엉성한 원고를 만들었으며, 다음 날 다시 읽으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내고 시작과 끝을 새로 잡았다고 설명한다. 앤 라모트의 글쓰기 경험은 초고의 서툶이 특정 작가의 결함이 아니라 창작 과정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초고를 쓸 때는 문장을 잘 쓰는 것보다 글을 끝까지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글의 전체 모양을 모르는 상태에서 문장 하나의 완성도를 따지는 것은 집의 설계도를 그리기도 전에 벽지 색깔을 고르는 일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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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전문작가. 현지 취재ㆍ르포ㆍ출간ㆍ강연으로 실크로드의 땅, 중앙아시아의 신비를 문장으로 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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