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하나를 살리려다 글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
문장만 떼어놓으면 훌륭했다. 그런데 글 속에서는 가장 거슬렸다.
몇 번이나 소리 내어 읽었다. 비유는 정확했고, 리듬도 좋았으며, 마지막 단어까지 마음에 들었다. 다른 글에 옮겨놓아도 충분히 빛날 문장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문장이 들어간 원고는 자꾸 멈칫거렸다.
앞에서는 주인공이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는데, 다음 문장에서는 작가가 인생의 진리를 설명하고 있었다. 인물의 슬픔을 따라가던 독자는 갑자기 작가의 문장 실력을 구경하게 됐다.
결국 그 문장을 지웠다.
아까웠다. 한참을 고민하며 다듬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지우고 나니 앞뒤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인물의 감정도 살아났다. 무엇보다 글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좋은 문장을 쓰는 능력과 좋은 글을 만드는 능력은 같지 않다는 것을. 문장 하나가 아름답다고 해서 그 문장이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1. 우리는 왜 좋은 문장을 버리지 못할까
작가에게 문장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시간과 노력의 흔적이다.
마음에 드는 비유 하나를 찾으려고 여러 번 고치고, 단어 하나를 결정하지 못해 사전을 뒤적이며, 문장의 리듬을 맞추느라 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완성한 문장에는 자신이 들인 시간이 묻어 있다.
문제는 그 시간이 아까워질 때 시작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매몰비용’은 이미 투자한 시간이나 노력이 아까워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지는 현상을 설명한다. 글쓰기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세 시간 동안 다듬은 문장을 삭제하면 그 시간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작가는 문장이 필요한지 묻는 대신 얼마나 공들여 썼는지를 따진다.
하지만 독자는 작가가 그 문장을 쓰는 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독자가 만나는 것은 작가의 고생이 아니라 완성된 원고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그날의 침묵은 오래된 상처가 겨울의 강바닥에서 다시 얼어붙는 소리였다.”
그 자체로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앞에서 인물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었다면 어떨까. 독자는 이미 침묵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 그런데 상처와 겨울과 강바닥까지 한꺼번에 등장하면 감정이 깊어지기보다 문장이 무거워질 수 있다.
문장이 나빠서가 아니다. 이미 전달한 것을 다시 전달하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소중한 문장과 독자에게 필요한 문장은 다를 수 있다. 이 차이를 받아들이는 순간, 퇴고의 기준도 달라진다.
# 2. 문장이 빛날수록 이야기가 어두워질 때
문학적인 문장을 쓰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다.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 오래 기억되는 표현, 누군가에게 인용될 만한 문장을 만들고 싶다. 그런 욕심이 표현을 고민하게 하고 글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도 한다.
문제는 모든 장면에서 좋은 문장을 보여주려고 할 때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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