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모드에서 선택모드로-3편

왜 나는 아들에게 특성화고를 권했나?

2편에서 나는 셋째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했다.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공부하기 싫다고 했을 때, 나는 아이에게 자기 삶을 선택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 결과 중학교 3학년이 된 지금, 성적은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의 인생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또 하나의 선택 앞에 놓였다.

고등학교를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아들에게 특성화고를 권했다.



공부를 못하니까 특성화고를 권한 것이 아니다

나는 아이가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특성화고에 가라고 한 것이 아니다. 특성화고를 일반고보다 낮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의 세상을 생각하면 어떤 아이에게는 특성화고가 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의 성적보다 앞으로 어떤 능력이 살아남을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던지려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직업의 틀을 잠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 공식은 영원하지 않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비교적 단순한 공식이 있었다. 열심히 공부한다. 좋은 대학에 간다. 좋은 온라인 게임에 취업한다. 안정적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에게 공부를 시켰다. 나 역시 그 공식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그 공식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다. 실제로 그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삶을 얻었다.


문제는 그 공식이 앞으로도 그대로 작동할 것인가이다.

지금 AI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글을 쓰고, 번역을 하고, 코드를 만들고, 이미지를 만들고, 영상을 만들고, 자료를 분석한다. 과거에는 오랜 시간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야 할 수 있었던 일들을 AI가 점점 빠르게 대신하고 있다. 물론 AI가 모든 직업을 곧바로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가 정확히 어떻게 변할지도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직업의 상당 부분이 앞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렇다면 부모가 아이의 미래를 준비시키는 방법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나는 AI보다 로봇을 생각했다

AI가 지적 노동을 대체한다면, 그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렇다면 인간의 육체노동은 어떻게 될까?

이 역시 언젠가는 로봇이 대체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AI와 로봇의 발전 속도가 반드시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AI는 이미 인터넷과 컴퓨터라는 기존 인프라 위에서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반면 현실의 물리적 세계를 움직이는 로봇은 훨씬 복잡하다. 공장에서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로봇과, 사람이 사는 실제 현장에서 상황을 판단하고 작업하는 로봇은 전혀 다른 문제다. 좁고 복잡한 공간에 들어가야 하고, 매번 다른 환경에 대응해야 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손으로 섬세하게 작업해야 한다. 전기 설비를 점검하고, 오래된 건물의 배선을 고치고, 복잡한 현장에서 문제를 찾아내고, 사람과 함께 작업하는 일은 단순히 지능만 높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론 이것 역시 영원히 인간의 영역으로 남는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AI가 지적 노동을 빠르게 자동화하는 것과 같은 속도로 로봇이 모든 현장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고 단정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기술을 가진 사람이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그래서 전기를 권했다

아들은 공부에 취미가 없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도 아니다. 피아노를 배우고, 복싱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중고거래를 하며 돈을 벌어보기도 했다. 나는 이 아이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라"는 하나의 길만 제시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이런 길도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고 다루는 기술을 배워보는 것.

특히 전기 분야는 앞으로도 다양한 산업에서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가 늘어나고, 스마트공장이 만들어지고, 데이터센터가 늘어나고, 로봇과 자동화 설비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그것을 설치하고 유지하고 관리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AI가 발전한다고 해서 현실의 전선과 설비가 저절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그런 이유로 전기 관련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특성화고를 추천했다.



그러나 아들의 생각은 달랐다

아들은 특성화고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친구들이 일반고에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특별히 배우고 싶은 전공이 특성화고에는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다시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미래를 분석해도, 아들의 삶을 대신 결정할 수는 없다. 나는 AI가 어떻게 발전할지 예측할 수 있다. 로봇 산업이 어떻게 변할지도 예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들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지는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부모가 미래를 대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인지도 모른다.



부모는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지를 열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아이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특성화고가 정답인지도 모른다. 일반고가 정답인지도 모른다. AI가 정말 5년 뒤 우리의 직업을 얼마나 바꿀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하나의 정답을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들이 일반고를 가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지 않았다.

"좋아. 네가 일반고를 가고 싶다면 가라."

그리고 한 가지를 덧붙였다.

"대신 그 선택에 따른 삶도 네가 감당해야 한다."



자유에는 선택의 바카라임이 따라온다

나는 아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유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유에는 반드시 바카라임이 따라온다. 일반고에 가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일반고에서 공부하지 않으면 대학 진학이 어려워지는 것도 현실이다. 그 현실까지 인정하고 선택해야 한다. 나는 아이에게 "공부 안 해도 괜찮아"라고 말한 적은 없다. 대신 "공부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그 선택의 결과까지 네가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수학을 꺼냈다

아들이 일반고를 가겠다면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생긴다. 대학 진학이다. 현재 성적으로는 좋은 대학은커녕 일반적인 대학 진학도 쉽지 않다. 갑자기 마음을 먹고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든 과목의 성적이 급격하게 올라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공부에는 누적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들은 독서량이 부족해서 언어 이해력이 약하다. 국어뿐 아니라 영어, 슬롯, 과학에서도 교과서를 이해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가능성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아들에게는 한 가지 강점이 있다. 수학이다. 초등학교 때 개념을 혼자 공부하고 심화까지 해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선택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잘하려고 하지 말자. 수학 하나를 제대로 해보자.

현재 아들은 하루 한 시간 정도 수학을 공부하고 있다. 중학교 3학년 2학기 개념서는 혼자 거의 끝냈고, 그다음에는 공통수학을 시작한다고 한다. 내가 처음 제시한 목표는 하루 세 시간이었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중요한 변화가 하나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자기 계획으로 하고 있다는 것.

나는 그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부모가 미래를 두려워하면 아이에게도 두려움을 가르치게 된다

나는 아이가 반드시 특성화고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아이가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이 길이 정답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길도 있고, 저런 길도 있다. 각각 어떤 가능성과 어떤 바카라임이 있는지 같이 생각해 보자"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내 아이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AI가 어디까지 발전할지도 모른다. 로봇이 언제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할지도 모른다. 특성화고를 나온 아이가 더 유리할지, 일반고를 나와 대학에 가는 것이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하나의 길에 모든 것을 걸고 싶지 않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니라, 정답이 바뀌었을 때 다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은 부모다.하지만 아이의 미래를 대신 결정해 주는 부모가 되고 싶지는 않다. 특성화고든 일반고든, 대학이든 취업이든, 기술직이든 지식노동이든, 결국 그 삶을 살아갈 사람은 아들 자신이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조금 먼저 세상을 바라보고, 가능성을 보여주고, 선택의 결과를 함께 생각해 보는 것까지다. 그다음에는 아이가 선택해야 한다.


나는 아이가 부모가 정해준 안전한 길을 걷는 사람보다, 길이 사라졌을 때 스스로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생존모드에서 선택모드로 넘어가는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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