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게 자란 부모가 있다. 어릴 때부터 돈이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부족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갖고 싶은 것도 마음껏 가질 수 없었고, 무엇을 하든 돈부터 걱정해야 했으며, 미래는 늘 불안했다. 그래서 그들은 열심히 살았다. 공부했다. 성공하려고 애썼다. 돈을 벌었다. 자신이 갖지 못했던 것을 하나씩 채워갔다.
가난이 준 결핍은 때로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된다.
‘나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
‘내 자식에게는 이런 삶을 물려주지 않겠다.’
그 마음으로 살아온 부모들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꽤 많은 것을 이루어놓는다. 집이 생기고, 안정된 직업을 얻고, 자녀에게 먹고 입히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찾아온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긴다. 삶은 풍요로워졌는데 마음은 여전히 가난했던 시절에 머물러 있다. 돈이 없던 시절의 불안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혹시 잘못되면 어떡하지?’
‘지금보다 상황이 나빠지면 어떡하지?’
‘더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공부하지 않으면 나중에 고생한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부모의 몸은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가난했던 시절의 생존모드에 갇혀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생존모드를 자녀에게도 물려주려 한다.
자녀는 부모와 다르다. 부모가 가난 속에서 자랐다면, 자녀는 부모가 평생 노력해 만들어놓은 풍요 속에서 자란다. 부모는 부족함 때문에 열심히 살았지만, 자녀는 그 부족함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부모는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으로 움직였지만, 자녀는 ‘없어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부모의 눈에는 이것이 불안하다.
‘우리 아이는 왜 이렇게 절박하지 않을까?’
‘왜 더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을까?’
‘왜 미래를 준비하지 않을까?’
‘나처럼 고생해보지 않아서 그런가?’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요구하려 한다. 더 불안하게 만든다. 더 경쟁하게 한다. 더 가혹하게 준비하게 한다. 자신이 겪었던 결핍을 아이에게도 은연중에 심어주려 한다. 그래야 아이도 자신처럼 열심히 살아남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래야 할까?
가난하게 자란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가난의 불안이 아니다. 생존모드도, 결핍도 아니다. 풍요 속에서 살아가는 법이다. 부모가 평생 생존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면, 이제 다음 세대는 생존을 넘어 진짜 삶을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부모 세대의 성공이 자녀 세대에게 똑같은 생존 방식을 강요하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한다. 부모가 치열하게 살아 자녀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었다면, 자녀는 그 환경에서 전혀 다른 것을 배워야 한다.
여유를 배워야 한다.
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궈낸 삶을 누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부모가 만들어놓은 풍요를 죄바카라감 없이 받아들이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다음 세대에게 줄 수 있는 진짜 선물이다.
하지만 평생을 생존모드로 살아온 부모에게 이것은 결코 쉽지 않다. 자녀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돈을 아껴 쓰지 않으면 걱정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있으면 답답하다. 아이들이 편안하게 머물러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진다.
‘저렇게 살아도 정말 괜찮을까?’
생존모드로 살아온 사람에게 여유는 때때로 게으름처럼 보인다. 풍요는 낭비처럼 느껴지고, 쉬는 것은 뒤처지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자꾸만 아이를 다시 불안 속으로 밀어 넣는다. 하지만 그 순간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니 너도 이렇게 살아야 해.’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살아왔지만, 너는 조금 다르게 살아도 된다.’라고 말해주는 것.
그것이 다음 세대가 해내야 할 몫이다.
나 역시 오랫동안 생존모드로 살아왔다. 어릴 때 가난했고,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을 일찍부터 경험했다. 살아남기 위해 공부했고, 일했고, 돈을 벌었다. 치열하게 살았고, 어느 정도는 성과를 이루었다. 그런데 지금도 가끔 그때의 오랜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사업이 안 되면 불안해지고, 수입이 줄면 미래를 걱정하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끊임없이 계산한다. 지금의 삶은 예전과 전혀 다른데도 마음은 자꾸만 과거로 돌아간다.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더 준비해야 안전하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리고 나는 그 불안을 아이들에게도 물려주려 했다.
“공부해야 한다.”
“열심히 해야 한다.”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속에는 내가 평생 짊어져온 불안까지 함께 들어 있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생존모드를 물려주는 대신, 나부터 생존모드에서 조금씩 내려오는 것이다.
돈을 더 벌어야만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진 것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어보는 것.
일을 조금 덜 하고 쉬어보는 것.
바카라을 읽고, 운동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가는 것.
아무런 생산적인 목적 없이 온전히 하루를 보내보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그런 나를 보게 하는 것.
아버지가 평생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버지도 가끔은 쉬고, 놀고, 여행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생존모드로 살아온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깊은 교육이다. 부모 세대는 결핍을 통해 성장했다. 하지만 자녀 세대까지 결핍 속에서 성장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부족해서 얻은 것들을 아이들에게까지 일부러 부족하게 만들 필요도 없다.
부모가 가난해서 치열하게 살았다면, 자녀는 풍요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찾아도 된다.
부모가 살아남기 위해 살았다면, 자녀는 살아가는 기쁨을 배워도 된다.
부모가 불안해서 미래를 대비했다면, 자녀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도 된다.
그리고 부모가 마지막으로 해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자녀에게 계속해서 생존모드로 살아가는 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생존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
‘나는 너를 위해 평생 생존해 왔다.’가 아니라, ‘나는 너를 위해 이만큼 잘 살아냈다. 그러니 이제 너는 조금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라고 말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생존모드로 태어난 부모가 다음 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마지막 모습이다.
생존은 부모 세대에서 끝내고, 풍요는 자녀 세대에서 시작하는 것.
그리고 그 풍요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풍요롭게 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인 내가 먼저, 더 이상 생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