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라진 회색지대, AI 드론만 남다
오랜만에 온라인카지노에 글을 씁니다. 이 주제는 계속해서 쓰고 싶었던 글이었으나, 최근 너무x100 바빠서 완성에 시일이 걸렸습니다.
최근 전국을 돌아다니며 특강을 진행하고, 국회 간담회에 참석하고, 온라인 콘텐츠를 여러 건 촬영했습니다. 거기에 여러 매체와 인터뷰 및 기고가 이어지고 있네요. <인간 없는 전쟁>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기에(최근 3쇄 2000부 추가로 찍었습니다!), 바쁘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지만 체력이 딸리고 있습니다. 내일은 부산에서 강연이 있어 비행기표까지 끊었네요. 4월과 5월 근황은 개인 인스타그램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
전쟁에는 늘 회색지대(grey zone)라는 공간이 있었다. 양측 보병이 들어갈 수 없고, 정찰병과 저격수만 잠시 머무는 사이의 땅.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선의 회색지대에는 이제 사람이 없다. 장갑차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드론과, 드론이 떨어뜨려 놓은 것뿐이다.
회색지대 위를 떠다니는 가장 흔한 풍경은 3D 프린터로 뽑은 FPV 드론이다. 잡을 게 사람뿐이라, 새로 만드는 탄두는 더 이상 장갑을 뚫는 성형작약(shaped charge)이 아니다. 케이싱 안에 강철 볼베어링을 가득 채우고 C4 한 줌을 박은 대인 파편탄으로 갈아탔다. 우크라이나의 신형 PUBN-95 파편 탄두는 폭발과 함께 수백 개의 작은 금속구를 사방으로 뿜는다. 두께 3mm 강판도 작은 금속구로 쉽게 뚫는다. 일반 보병 헬멧, 방탄조끼 일부, 트럭 차체 같은 "경방호" 목표가 거의 다 무력화되는 두께다. 러시아군 텔레그램 채널에서 "이 탄두가 진짜 골치 아프다"는 시인이 새어 나왔을 정도다. 양측이 자기 손실은 숨기는 게 디폴트인 전쟁에서, 적의 자기시인은 가장 신뢰도 높은 사료다.
회색지대의 땅 위에는 또 다른 풍경이 있다. 드론이 공중에서 떨어뜨려 놓는 즉석 지뢰다. 러시아의 "PTM-K2N"이라는 대차량 지뢰는 드론에서 투하되는 순간 끈으로 연결된 안전핀이 뽑히면서 전자식 무장 절차가 시작된다. 1분쯤 기다린다. 지뢰가 땅에 자리를 잡을 시간이다. 그러면 검은색 플라스틱 부품 안의 전기 점화기 두 개가 동시에 작동해, 다리를 묶고 있던 나일론 실을 태워 끊는다. 스프링 로드된 다리들이 튕겨 나오면서 지뢰는 스스로 벌떡 일어선다. 다시 1분을 더 기다린다. 자기가 흔들리지 않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다. 그러고 나서야 자기감응 퓨즈(magnetic-influence fuze)가 무장된다. 이후 시속 60km 안팎으로 지나가는 차량의 엔진 블록만 감지해 폭발한다. 보병이 위로 걸어도 안 터진다. 손으로 만져서 옮기려고 하면 그 자체가 방아쇠가 된다. 한마디로 로봇 지뢰다. 사람이 들고 나가서 묻는 게 아니라, 공중에서 떨어뜨려 놓으면 알아서 일어서서, 자기가 잡고 싶은 표적만 골라 잡는다.
이게 회색지대의 새 풍경이다. 자동으로 떨어지고, 자동으로 일어서고, 자동으로 표적을 고르는 무기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놀라울 정도로 싸다. 한 분석가가 그 의미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 적이 있다. "드론이 이걸 전부 뒤집어 놓는다. 십대 한 명이 날리는 100달러짜리 드론이, 평생 받아온 훈련과 그 뒤를 받쳐온 모든 지원체계를 한 방에 무너뜨릴 수 있다."
미군 전투기 조종사 한 명을 양성하는 데는 통상 1,000만 달러가 든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군 K-2 흑표 전차 한 대 가격은 수십억 원대다. 그런 자산을, €11,900짜리 우크라이나 신예 드론 한 대가 무너뜨린다. 비용 비대칭의 문제가 아니다. 차원이 다른 산수의 문제다.
창과 방패의 역사는 늘 한쪽이 한 걸음 나아가면 다른 쪽이 한 걸음 따라잡는 식이었다. 활이 등장하면 갑옷이 두꺼워지고, 머스킷이 등장하면 갑옷은 사라진다. 기관총이 등장하면 참호가 깊어지고, 전차가 등장하면 대전차포가 따라온다. 그 끝없는 주고받기는 늘 인간의 보폭 안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선에서는 그 보폭 자체가 무너졌다. 인간의 시간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알고리즘이 새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두 자리에 들어섰다. 비행과 표적이다.
가장 먼저 들어선 자리는 비행이다. 우크라이나의 중거리 타격 드론 Hornet은 전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Eric Schmidt)가 세운 Swift Beat사의 작품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지형추적(terrain-following) AI 자율비행. GPS가 끊겨도 지형의 형상을 보고 알아서 경로를 찾아간다. 둘째, Starlink 통신. 위성 링크라 러시아의 지상 재머로는 끊을 수 없다. 이 둘을 합치면 "재밍 무시 + 실시간 영상 + 150km 종심 침투"라는 무서운 조합이 된다. 사단 사령부, 보급기지, 공항 같은 작전·전략 수준의 표적이 사거리 안에 들어온다.
이 드론이 처음 전선에 나타났을 때 러시아군은 "Martian-2"라는 별명을 붙여가며 경계 대상으로 다뤘다. 그러나 몇 주 만에 풍경이 바뀌었다. 한 분석가의 표현을 빌리면, "공중에서 우리 편 드론끼리 마주칠 만큼 흔한 일상 무기"가 되었다. 또 다른 회사 Atma Sky의 신예 B-2 드론은 사거리 400km, 탄두 8.5kg에 단가가 €11,900이다. 같은 사거리의 정밀 미사일은 수억 원이다. 100대 만들어도 14억 원 남짓이면 끝난다. 양산성 자체가 무기가 된 것이다.
회색지대를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풍경은 폭격 드론 Vampire의 변신이다. 한때 무전과 GPS로 조종하던 이 덩치 큰 드론은, 둘 다 러시아 재밍에 취약했다. 무전이 끊기면 길을 잃었고, GPS가 흔들리면 표적을 놓쳤다. 그래서 통신을 스타링크로 전환했다. 그 결과 "드론 조종사 = 최전선 위험직업"이었던 자리가 "드론 조종사 = 후방 사무실 근무"로 바뀌었다. 회색지대에서 위험을 감수하던 인간이, 위성 한 단계를 건너뛴 뒤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는 위치로 옮겨갔다.
이 창에는 곧 방패가 따라붙었다. Wild Hornets라는 우크라이나 시민 드론 그룹이 만든 드론 잡는 드론, Sting 인터셉터다. Sting의 진화 속도가 흥미롭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그저 적 드론에 부딪쳐 떨어트리는 수준이었다. 몇 달 사이 인터셉터 조종사는 샤헤드(Shahed) 자폭 드론의 코끝, 폭약이 박혀 있는 그 한 점을 정확히 노린다. 그래야 탄두까지 같이 공중에서 유폭되어 잔해의 2차 피해가 없다. 짧은 기간에 "어디를 맞춰야 가장 깨끗하게 끝나는지"까지 데이터가 쌓였다. 우크라이나 38방공미사일연대는 어느 하루에만 샤헤드 20대를 격추한 적이 있다. 창과 방패가 같은 속도로 학습한다.
흥미로운 건, 최근 등장한 한 장면이다. 우크라이나가 만든 "Shooter"라는 FPV가 6연장 무반동 산탄총 시스템을 달고 다닌다. 다가오는 러시아 정찰·자폭 드론을 향해 공중에서 산탄을 뿌리고 격추한다. 미사일도 아니고 고성능 레이저도 아닌, 19세기 사냥꾼식 발상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표적이 작고 빠르고 싸기 때문에, 잡는 쪽도 싸야 채산이 맞는다. 러시아 정찰 드론 한 대가 1만 달러쯤 한다면 미사일 한 발(수만~수십만 달러)로 잡는 건 미친 짓이다. 산탄 한 발은 1달러도 안 한다. 비대칭의 게임에는 비대칭으로 답한다. 첨단 기술의 끝에서 다시 사냥꾼의 직관을 만나는 셈이다.
두 번째로 들어선 자리는 표적 인식이다. 표적을 누가, 얼마나 빠르게,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 이 자리에서 인간은 한 칸씩 물러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1세대 대드론 기관총 시스템 "Sky Sentinel"은 원격조종이다. 후방의 운영자가 화면을 보면서 직접 조준하고 쏜다. 사람의 시각, 사람의 손, 사람의 반응속도가 회로의 중심에 있다. 그 다음 단계로 K-2 무인체계여단이 실전에 투입한 신형 AI 자율 터렛이 등장했다. 이제 표적 탐지·추적·교전 준비를 AI 알고리즘이 모두 처리한다. 카메라 영상에서 적 드론의 실루엣을 분류하고, 비행 궤적을 예측하고, 조준 솔루션까지 계산해 둔다. 인간 운영자는 사실상 "발사 허가" 버튼만 누른다. 군사 기술 용어로 "human-on-the-loop" 모델이다. 사람이 회로의 일부이긴 한데, 회로 안에서 결정의 무게중심이 옮겨 가고 있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의 K-2여단이 보여주는 풍경은 의미심장하다. 같은 부대가 공격(고정익 UAV로 적 보급 차단)과 방어(AI 대드론 터렛으로 FPV 차단)를 동시에 무인화 실험실로 굴리고 있다. 미래의 보병 여단이 어떻게 생길지 미리 보여주는 부대다. 그리고 머지않아 마지막 한 칸인 "허가도 자동"까지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표적 인식 정확도가 99%에 도달하고, 적 드론이 떼로 몰려와 1초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일상이 되면, 인간의 손가락이 그 사이에 끼어들 자리가 좁아진다. 자동화는 늘 그 한 칸을 향해 움직인다.
여기서 한 가지 묵직한 질문이 떠오른다. 그 한 칸이 사라지면, 결정의 주체는 누구인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1961년 예루살렘 법정에서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뒤 한 개념을 만들어 냈다. "악의 평범함(banality of evil)"이다. 거대한 악은 꼭 악마적 인물에 의해 저질러지는 게 아니라, 바카라상 앞에서 묵묵히 자기 업무를 수행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통찰이었다. 아이히만은 가스실로 가는 기차의 시간표를 짰다. 그는 자기가 누구를 어디로 보내는지는 알았다.
지금 같은 풍경이 21세기에 다시 펼쳐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선 너머 어느 사무실에는 한 러시아군 엔지니어가 앉아 있다. 그의 업무는 방아쇠를 당기거나 포로를 다루는 게 아니다. 키보드 앞에서 순항미사일의 비행경로 좌표를 입력하는 것이다. 그가 몇 시간 좌표를 두드리면, 그 미사일은 우크라이나의 병원, 학교, 아파트 단지에 떨어진다. 아이히만은 자기가 기차에 태운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았다. 이 엔지니어는 좌표만 입력한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 AI가 좌표를 알아서 정하고, 사람은 "전송" 버튼만 누르는 단계가 곧 온다. 그 다음에는 "전송"마저 자동이 될 것이다. 그때 도덕적 바카라임은 어디에 있는가. 알고리즘을 설계한 엔지니어의 바카라상 위에 있는가, 데이터셋을 라벨링한 노동자에게 있는가, 그 시스템을 구매한 부대장에게 있는가, 아니면 그저 코드 한 줄 안에 있는가. 아렌트가 1961년에 본 풍경은 그래도 인간의 시간표였다. 우리가 곧 보게 될 풍경은 알고리즘의 시간표일지 모른다.
알고리즘은 비행과 표적의 두 자리에만 들어선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 전쟁의 진짜 승부처는 그 두 자리 사이를 흐르는 보이지 않는 신호, 그리고 그 신호를 잇는 동전만 한 부품 하나에 있을지 모른다. 다음 글에서 이어가려 한다.
이 글의 사실 관계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드론·전자전·폭발물을 추적하는 캐나다인 OSINT 분석가 Roy(@GrandpaRoy2)의 X 포스트와, 그가 인용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측 1차 자료(텔레그램 채널, 군 블로거, 기업 발표 등)에 기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