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앉으세요 - 전장에서 로봇이 건넨 자비

담요 덮고 나선 UGV 이야기

by최재운

1859년 6월 24일, 이탈리아 북부 솔페리노 평원. 프랑스·사르데냐 연합군과 오스트리아 제국군이 맞붙은 단 하루의 전투에서, 약 4만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들판에 쓰러졌다. 이미 해는 졌는데도 부상병들은 누가 자기를 옮겨줄지조차 알지 못한 채 신음하고 있었다. 그 사이를 정신없이 돌아다닌 한 스위스인이 있었다. 앙리 뒤낭(Henri Dunant), 사업차 나폴레옹 3세를 만나러 왔다가 우연히 전장에 휩쓸린 서른한 살의 사업가였다.


뒤낭이 본 광경은 단순한 비극 이상이었다. 부상병들은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들을 옮길 사람도, 처치할 약도, 무엇보다 그들에게 다가갈 권리를 가진 누군가가 없었다. 5년 뒤인 1864년, 그의 회상록 한 권이 16개국을 한자리에 모아 첫 번째 제네바 협약을 만들어냈다. 의무병은 비전투원이며, 적군에게 총을 맞아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인류가 그때까지 가져본 적 없던 합의가 그렇게 종이에 새겨졌다. 의무병의 어깨에 박힌 붉은 십자가는 스위스 국기의 색깔을 반전시킨 것이다. 뒤낭의 조국에 대한 인류의 빚 같은 것이었다.


그 이전의 전쟁은 어땠을까. 로마군은 의무병을 카프사리이(Capsarii)라고 불렀다. 붕대 상자(capsa)에서 따온 이름이다. 다만 그들은 전투 중에 부상자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부상병은 전투가 끝날 때까지 들판에 누워 있어야 했다. 1790년대 나폴레옹의 외과 군의관 도미니크 장 라레(Dominique Jean Larrey)가 'ambulance volantes(날아다니는 구급차)'를 발명하기 전까지, 인류는 거의 1700년 동안 같은 풍경을 반복했다. 라레의 이동식 야전병원은 전투 중에도 부상병을 끌어내는 첫 번째 시도였고, 그것이 약 70년 뒤 미국 남북전쟁의 조나단 레터만(Jonathan Letterman)에게로 이어진다. 1862년 앤티텀 전투 직후, 포토맥군 의무사령관이었던 그는 들것조에서 야전병원, 그리고 후방 본부로 이어지는 통합 후송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tempImageEmzJdD.heic생성: 챗GPT


200년의 시간 동안, 인간은 자비를 발명해온 셈이다. 그것도 자기 목숨을 걸고.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노르망디 해변을 뛰어다니던 군의관 웨이드의 흰 완장에는 그 200년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2026년 4월의 한 풍경을 보자.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르이만(Lyman) 인근 회색지대(grey zone). 러시아군의 포격이 떨어지고 있는 한 마을의 거리를, 한 노인이 천천히 걷고 있었다. 우크라이나군 제60기계화여단의 드론 운용병이 그 모습을 발견한다. 거리 한쪽에는 같은 마을 주민들의 시신이 이미 쓰러져 있었고, 곳곳에 포탄 구덩이가 패어 있었다.


그곳으로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21세기의 "회색지대"는 보병이 들어가면 살아 돌아오기 어려운 구간이다. FPV 자폭 드론 한 대당 단가는 수백 달러, 그것이 사람 한 명에 꽂히는 거리는 수 km. 의무병의 붉은 십자가는 더는 그를 살려주지 않는다. 적십자가 의미를 잃은 전장 위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보낸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무인지상차량(UGV)이었다.


다만 그냥 보내면 노인이 놀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들은 UGV 위에 담요 한 장을 씌웠다. 그리고 담요 위에 한 줄의 메시지를 적었다.


"Grandma, get on"
"할머니, 앉으세요."


tempImageEK6W7F.heic할머니를 구조하는 UGV (캡처 이미지며, 영상은 글 하단에 링크있습니다)


77세의 할머니는 그 위로 올라탔다. 53년 동안 자기 집에서 살아온 노인이었다. 집은 이미 러시아군의 포격에 무너진 뒤였다. 영상 속에서 담요 덮은 로봇이 굴러가고, 노인이 그 위에 앉아 있고, 그렇게 한 사람의 목숨이 회색지대 밖으로 옮겨졌다. 작전을 수행한 것은 제60기계화여단 산하 "케르베로스(Cerberus)"라는 이름의 UGV 부대였다.


케르베로스가 굴린 그 한 대의 로봇은 우연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2024년 한 해 동안 UGV 약 2,000대를 전선에 보냈다. 2025년에는 같은 숫자가 15,000대로 뛴다. 1년 사이 650% 증가다. 2026년 상반기에만 25,000대의 추가 계약이 체결됐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국방 마켓플레이스 Brave1에는 현재 270개가 넘는 회사가 200종 이상의 UGV 모델을 등록해두고 있다. 한 나라가 사실상 세계 최초의 UGV 군대를 갖추고 있는 중이다.


같은 4월, 우크라이나 제1독립의무대대(First Separate Medical Battalion)는 단 두 대의 UGV로 24시간 동안 6번의 부상자 후송 임무를 수행했다. 두 대의 로봇이 합쳐서 300km를 굴렀다. 그중 두 번째 후송에서 한 대는 러시아군 드론 투하 폭발물에 직격을 당했지만, 안에 든 부상병은 무사했다. 장갑 강철 캡슐이 그를 살린 것이다. 그 캡슐의 이름은 MAUL. 우크라이나 회사 데브드로이드(DevDroid)가 만든 후송용 UGV이고, 한 대당 단가는 약 19,000달러다. 쿼드바이크 차체에 내연기관을 얹어 시속 70km로 달리고, 200kg을 실을 수 있다.




어느 쪽으로 봐야 할까. 솔페리노의 뒤낭이 부상병에게 다가가던 광경에서, 르이만의 담요 덮은 로봇까지. 인류는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자기 자비를 외주해도 되는 곳을 찾아낸 것일까.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담요 한 장의 디테일은 너무 인간적이라는 것. 적군 후방에 노출된 노인을 안심시키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UX가 "담요 + 친근한 한 줄"이었다는 것. 어느 부대원이 그것을 떠올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한 줄을 적은 손은 분명히 사람의 손이다. 1859년 솔페리노 들판에서 부상병에게 물을 떠다 주던 뒤낭의 손과, 1862년 앤티텀의 폐허 위에서 들것조의 동선을 그리던 레터만의 손과, 르이만 어디선가 담요에 매직으로 "Grandma, get on"을 적은 손은, 정확히 같은 종류의 손이다.


다만 그 손은 더 이상 부상자에게 직접 닿지 않는다. 그 손은 이제 위험 지역의 입구에 멈춰서, 자신이 적은 한 줄을 로봇의 등에 올려 보낸다. 자비의 의도는 인간의 것이고, 자비의 수행은 기계의 것이 됐다. 그 분리가 좋은 일인지, 슬픈 일인지, 우리는 아직 잘 모른다.


확실한 것은, 2026년 동부 우크라이나의 거리에서 자비의 풍경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옛 영화에선 군의관이 흰 완장을 차고 십자가가 그려진 가방을 들고 들판을 뛰었다면, 르이만의 회색지대에선 담요 덮은 한 대의 로봇이 "할머니 앉으세요"라는 한 줄을 등에 지고 굴러간다. 그리고 어느 77세 할머니는 그 위에 올라타 53년을 살아온 자기 집을 뒤로하고, 다음은 어디일지 모르는 곳으로 옮겨졌다.


뒤낭이 살아서 이 영상을 본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나는 그가 한참을 말없이 보고 있다가,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담요 위에 한 줄을 적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자비의 자리 는 아직 인간의 것이라고. 다만 그 자리가 어디까지 외주될 수 있는지, 어디서부터는 다시 가져와야 하는지, 그 경계를 정하는 일이, 우리의 시대에 남은 마지막 숙제일 것이다.


붉은 십자가가 무력해진 전장 위에서, 자비를 전달하는 새로운 기호를 인간이 어떻게 다시 발명할지. 담요 한 장 위의 매직 한 줄은, 어쩌면 그 기호의 첫 번째 시안이다.




* 영상 출처


https://x.com/i/status/204808789440611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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