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라진 회색지대, AI 드론만 남다
지난 글에서 알고리즘이 차지한 두 자리를 살폈다. 자율 비행과 자율 표적. 그러나 이 두 자리는 사실 위태로운 자리들이다. 드론이 아무리 똑똑하게 날고 터렛이 아무리 빨리 표적을 잡아도, 그 둘은 결국 그 사이를 흐르는 보이지 않는 신호 위에 얹혀 있기 때문이다. 신호가 끊기면 드론은 길을 잃고, 터렛은 표적을 놓친다. 그래서 양측은 가장 많은 돈과 머리를 비행도 표적도 아닌 통신에 붓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선의 진짜 승부처는 거기에 있다.
우크라이나 전선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는 스타링크(Starlink)다. 일론 머스크의 회사 스페이스X가 운영하는 저궤도 위성 인터넷 망이다. 신호가 지상이 아니라 우주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적이 지상에 깔아둔 재머(jammer, 전파를 같은 주파수로 마구 쏘아 통신을 방해하는 장비)로는 끊을 수 없다. 폭격 드론 Vampire, 중거리 타격 드론 B-2와 Hornet, 해상 무인수상정 USV(Unmanned Surface Vehicle), 분대 헤드셋 통신까지 거의 모든 무인 자산이 이 위성망 위에서 굴러간다. 우크라이나가 4년 가까이 버틴 데에는 어떤 무기보다도 이 보이지 않는 망의 힘이 크다.
스타링크가 들어오면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드론 조종사의 위치다. 한때 드론 조종사는 최전선의 가장 위험한 직업이었다. 무전기로 드론과 신호를 주고받으려면 사거리 안에 있어야 했고, 사거리 안에 있다는 건 적 포병의 사거리 안에 있다는 뜻이었다. 스타링크로 갈아탄 뒤 그 자리가 바뀌었다. 조종사는 후방 수백 km의 안전한 사무실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보며 드론을 몬다. 회색지대에서 위험을 감수하던 인간이 위성 한 단계를 건너뛴 뒤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는 위치로 옮겨갔다. 전쟁터의 가장 위험한 자리가 갑자기 사무실 바카라상이 된 셈이다.
흥미로운 건 러시아가 이 무선 인프라를 베끼다가 같이 의존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작년 1월, 크림 앞바다에서 좌초된 우크라이나 해상 자폭정이 발견됐다. 그 위에는 스타링크 단말 두 대와 카이메타(Kymeta) 위성 안테나가 함께 달려 있었다. 카이메타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위성과 연결되도록 만든 평면형 안테나로, 메인 통신인 스타링크가 끊겨도 백업이 살아 있게 이중으로 깔아둔 구성이었다. 러시아는 그 구성을 그대로 베껴 자기 USV에 얹었다. 그러다 스타링크와의 통신이 끊어지자, 러시아 무인 보트도 같이 멍해졌다. 적이 깔아둔 사다리를 빌려 타다가, 그 사다리가 빠지자 같이 떨어진 그림이다. 통신 인프라 자체가 전략 무기가 되는 시대의 풍경이다.
그래서 양쪽 모두 다음 단계를 찾고 있다.
한쪽 답은 광섬유다. 드론에 수 킬로미터에서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가는 광섬유 케이블을 감아 풀어가며 조종하는 방식이다. 무선 신호가 아니라 진짜 전선으로 명령을 보내니, 어떤 재밍도 의미가 없다. 케이블이 풀려나가는 동안 연결이 끊기지 않고, 적이 전자전 장비를 아무리 깔아둬도 그저 가는 실 위로 데이터가 흐른다. 이 전술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처음 본격 등장했는데, 1년도 안 돼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쓰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부랴부랴 남부 레바논 전담 준장을 새로 임명하고, 그물과 모바일 레이더와 산탄총, 공중폭발 탄약, 자동 터렛까지 시험 중이다. 공중폭발 탄약이란 표적 바로 옆에서 터지면서 파편을 뿌리는 탄을 말한다. 작고 빠른 드론을 직격하기 어려우니, 근처에서 터뜨려 파편으로 잡자는 발상이다. 우크라이나에서 검증된 전술이 1년 만에 세계 최정상 수준의 군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다른 한쪽 답은 양자다. 우크라이나의 메시 라디오 회사 히메라(Himera)가 캐나다의 양자 암호 스타트업 콴트로피(Quantropi)와 손잡고, 분대 무전기와 드론과 지상 로봇을 하나의 보안 메시 네트워크로 묶고 있다. 메시 네트워크란 모든 단말이 서로 직접 연결돼 데이터를 릴레이로 전달하는 통신망이다. 한두 노드가 잘려나가도 다른 경로로 우회되니까, 단말이 자주 파괴되는 전장 환경에 적합한 구조다. 거기에 두 가지 기술이 더 얹힌다. 첫째, 의사 무작위 주파수 호핑이다. 송수신 주파수를 빠르게 바꿔가며 통신하는 기술인데, 적이 한 주파수를 막아도 다음 순간엔 다른 주파수에 가 있어서 통신이 끊기지 않는다. 둘째, 양자 내성 암호(post-quantum cryptography)다. 미래에 양자컴퓨터가 보편화되면 지금 인터넷의 RSA 같은 암호는 사실상 무력화되는데, 그 미래에도 풀리지 않도록 설계된 새 암호 알고리즘이다. 지금 통신이 잡혀도 5년 뒤 양자컴퓨터로도 못 풀게 막아두는 셈이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날, 그 메시 무전기를 사냥하는 시스템이 카메라에 잡혔다. 러시아의 메시태스틱 스니퍼(Meshtastic-Sniffer)다. 메시태스틱은 원래 등산과 아웃도어용으로 만들어진 오픈소스 메시 통신 시스템인데, 우크라이나군 일선 분대가 공식 무전기 백업이나 드론 조종사 연락용으로 광범위하게 쓰고 있던 도구다. 러시아의 스니퍼는 이 메시지를 풀려고 만든 게 아니다. 그저 어디서 보냈는지를 잡는 장비다. 여러 대의 수신기를 동기화시켜 신호가 각 수신기에 도달하는 시간차를 측정한다. 이걸 TDOA(Time Difference of Arrival, 신호 도달 시간차)라고 부른다. 세 대 이상의 수신기가 시간차를 측정하면 송신원의 좌표가 삼각측량으로 나온다. 메시지의 내용은 풀지 못한다. 풀 필요도 없다. 어디서 보냈는지만 알면 그 좌표로 자폭 드론이나 박격포가 날아가니까. 메시지 한 줄이 묘비명이 된다.
여기서 잠시 멈춰서 보자. 같은 날 같은 분석가의 타임라인에, 우크라이나의 양자암호 무전기와 러시아의 위치 사냥꾼이 나란히 박혔다. 한쪽은 통신을 미래까지 봉인하려 하고, 다른 한쪽은 그 통신을 보낸 사람의 좌표를 잡으려 한다. 둘 다 같은 날 카메라에 잡힌 게 우연일까. 2026년 봄, 우크라이나 전선의 진짜 풍경은 드론도 미사일도 아닌, 보이지 않는 신호의 추적전이다. AI는 드론을 띄우고, AI는 표적을 잡고, AI는 신호를 숨기고, AI는 그 숨긴 신호를 다시 찾아낸다. 네 번의 자율이 한 사이클을 이루며, 그 사이클은 인간의 시간 단위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돌고 있다.
지난봄 체코의 한 개발자 그룹이, 우리가 학생 코딩 실습에 쓰는 그 손바닥만 한 컴퓨터 라즈베리파이 5와 가민(Garmin) 손목시계 하나로 분산형 드론 탐지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적 드론이 사용하는 영상 송신 주파수를 감지하면 블루투스로 손목시계에 진동 알림을 보낸다. 손목이 부르르 떨리면 "드론이다, 숨어라"라는 신호다. 영감을 받은 것은 우크라이나의 휴대용 RF 디텍터 추이카(Chuyka)였다. 추이카는 우크라어로 "감각, 직감"이라는 뜻이다. 적 드론 송신 신호를 잡아 거리와 방향까지 추정해주는, 전선 보병의 여섯 번째 감각 같은 장비다. 핵심은 양산성이다. 한 대 100만 원 미만에 수만 대를 뿌릴 수 있다면, 비싼 정밀 레이더 한 대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공 그리드가 만들어진다.
라즈베리파이 디텍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가르쳐 준 또 다른 답이다. 양자컴퓨터와 메시 네트워크가 동원되는 국가급 알고리즘 경쟁이 한쪽 답이라면, 코딩 키트와 손목시계로 깔아 만드는 분산형 방공 그리드는 다른 한쪽 답이다. 한쪽은 비싸고 한쪽은 싸다. 한쪽은 국가가 만들고 한쪽은 시민이 만든다. 그런데 같은 전장에서 같은 표적을 잡으러 움직인다. 둘 중 하나만 가진 나라는 결국 둘 다 가진 나라에게 진다.
흥미로운 건 어느 쪽이 더 빠르게 진화하느냐다. 양자암호와 TDOA 사냥꾼은 국가가 수백만 달러를 들여 몇 년에 한 번씩 갱신한다. 그러나 추이카에서 영감을 받은 체코의 디텍터는 누군가가 주말에 깃허브 코드를 받아 다음 주에 새 버전을 올린다. 신무기의 갱신 주기가 군대의 조달 주기를 앞지른 시대다. 사단장의 결재 한 장이 떨어지는 동안, 또 다른 시민 개발자가 어디선가 다음 모델을 깎고 있다.
자율 비행, 자율 표적, 자율 통신. 알고리즘이 차지한 세 자리가 인간의 손을 떠나는 동안, 그 알고리즘을 누가 더 빨리, 더 싸게, 더 많이 깔 수 있는지가 다음 전쟁의 답이 된다. 우크라이나의 무전기 한 대와 체코의 손목시계 한 짝이 함께 던지는 질문이다. 손목이 부르르 떨리는 그 작은 진동이 머지않아 모두에게 도착한다. 그 진동이 도착하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깔아 두었는가. 그 답이 다음 시대를 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