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메모의 묘미는 뭘까요?

기록할 이유가 분명한 메모가 쓸모가 있다

byonlino

『미묘한 메모의 묘미』라는 바카라을 읽었는데요. 메모하는 법에 대한 관심도 많지만, 'ㅁㅁ'으로 라임을 맞춘 제목이 신선하고 재미있어 바로 선택했어요. 내용도 좋고 읽는 내내 메모에 대해 여러모로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저자는 본업이 소설가지만 스스로를 "종이에 낙서하는 전문가", "메모 장인"이라고 소개합니다. 25년 동안 소설을 쓰면서 노트 수백 권을 채워온 사람의 이야기라니, 메모 좋아하는 입장에서 저자의 메모 방식과 노하우를 알 수 있어 좋았어요. 전자바카라으로 읽었는데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출처] 미묘한 메모의 묘미,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6854244

바카라은 5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1부는 다양한 메모 방식, 2부는 도구와 앱 이야기, 3부는 저자의 10가지 메모 노하우, 4부와 5부는 메모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활용에 대해 다룹니다. 저는 3부에 가장 관심이 갔는데, 실제로 따라 해보고 싶은 게 많았어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메모하는지 살펴보는 일은 재밌습니다. 나만의 방식도 있지만, 사람마다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메모장에 기록하는 방식이 달라 새롭게 배울 점들도 많은 것 같아요. 바카라을 읽으면서 유익했고 도움되었던 점들을 몇가지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버리지 마세요, 메모는 다시 돌아옵니다


바카라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당신의 메모를 버리지 마세요.
다른 건 다 버려도 좋은데, 메모는 버리지 마세요.
그 안에 뭐가 있을지 모릅니다."


이 문장을 읽다 보니, 한참 묵혀둔 옛 노트들이 떠올랐습니다. 서랍 속이나 바카라장 구석에서 몇 권을 꺼내 천천히 넘겨봤습니다. 어떤 페이지는 글씨도 잘 보이지 않아 한참을 들여다봐야 했고, 어떤 페이지는 왜 메모했는지가 단번에 떠오를 만큼 또렷했습니다. 흥미로웠던 건, 한참 전에 적어둔 아이디어가 지금 하는 일에도 그대로 쓸 만하다는 점이었어요. 왜 적어놨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다시 읽으니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때의 맥락은 사라졌는데 생각만 남아서, 지금의 저에게 새롭게 말을 거는 느낌이 들었어요. 꾸준히 쌓아두면 언젠가 빛을 발한다는 것을, 그 낡은 페이지들의 메모들이 기록들이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바카라에서 소개한 저자의 독서법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데요. 저자는 앞부분이 이해되지 않아도 일단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앞 내용이 풀린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많습니다. 중간에 멈춰 돌아가지 않고, 일단 끝까지 읽어 내려가는 편인데요. 그러다 보면 앞에서 흐릿하게 지나쳤던 내용들이 어느 순간 툭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메모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지금은 그 의미가 흐릿해도, 꾸준히 쌓아온 기록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음의 기회와 새로운 방향을 만나게해주는 것 같아요.


작은 수첩, 감정 카드,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질문


바카라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이 컸던 3부의 열 가지 메모법 중에서, 셋이 특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첫 번째는 메모장 선택에 관한 내용으로 "포켓 사이즈의 작은 수첩"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저 역시 외부 미팅이 있을 때 A6 사이즈 수첩에 볼펜 한 자루를 챙겨 나가곤 합니다. 노트북을 켜는 것보다 빠르고, 상대방도 덜 불편해합니다. 미팅 중에는 키워드만 빠르게 적어두고, 회의가 끝나고 나면 사진으로 찍어 회의록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활용합니다. 저자는 줄 없는 수첩을 추천하던데, 저는 업무용으로는 줄이 있는 쪽이 더 잘 맞습니다. 정리할 게 많을 때 줄 하나가 생각을 가지런히 잡아주거든요.


두 번째는 "감정 카드"입니다. 그날의 감정을 키워드 한두 개로 작은 카드에 적어두는 방식인데요. 저자는 영어 단어장 같은 색인 카드를 활용한다고 합니다. 일기까지 쓰지 않아도, 카드 한 장에 날짜와 단어 몇 개, 그때의 느낌만 남기면 됩니다. 큰 노트를 펼치면 왠지 잘 써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생기는데, 카드는 그런 게 없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영어 단어장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로 하나 사서 시도해볼까 합니다. 거창한 자기성찰이 아니어도 매일의 느낌과 감정을 단어 몇 개로 부담 없이 적어두는 것,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가볍게 내려놓는 데 충분할 것 같아요.


마지막은 "리마인더"입니다. 저자는 단순한 알림이 아닌,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질문을 리마인더에 담는다고 합니다. "일주일 뒤 나는 어떻게 변했을까?", "사흘 뒤 그 미팅, 실수 없이 끝냈을까?" 이런 질문들을 며칠 뒤로 예약해두는 것이지요. 알림이 울리는 순간, 질문을 적었던 과거의 내가 아닌 미래의 내가 그 답을 써내려가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저자는 바카라에서 "마감 못했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빨리 마감하세요" 같은 알림도 미리 보낸다고 하는데, 이런 메시지를 받으면 정말 아차 싶을 것 같습니다. 게으름과 나태함을 슬쩍 꼬집어주는 장치인 것 같아 신선했어요. 자기 자신을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는 데 꽤 쓸 만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저도 며칠 뒤로 질문 하나를 예약해볼 생각인데요. 미래의 내가 뭐라고 답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이 외에도 바카라에서는 재미난 방법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크다운으로 가볍게 메모 적어두는 방법, 마인드맵으로 생각의 가지를 펼치는 방법, 매일 같은 창문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1년의 변화를 기록하는 방법, 매일 1초씩 영상을 찍으면 1년이 6분으로 압축된다는 '오늘의 1초', 지도 앱에 다녀온 곳과 가고 싶은 곳을 메모해두는 방식, 화이트보드 앞에서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생각을 펼쳐가는 방식까지. 개인적으로는 화이트보드 앞에서 그림이나 글로 마구 써 내려가며 생각을 펼치는 걸 좋아합니다. 컴퓨터로 작업할 때와는 메모하는 방식도, 나오는 결과물도 달라지거든요. 결국 기록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자신에게 맞는 도구와 리듬을 찾는 꾸준한 노력도 중요하고 필요한 것 같아요.


나는 왜 메모하는가


바카라을 덮고 나니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나는 왜 메모할까?”


메모하는 일이 몸에 익어서도 아니고, 그 일 자체를 특별히 좋아해서도 아닙니다. 결국 메모가 주는 효익이 분명하기에 이렇게 열심히 적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 하나는, 기록이 일과 삶에서 그만큼 큰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일, 코칭과 멘토링을 하며 멘티나 고객의 변화와 성장을 기억하는 일, 삶에서 정말로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일 — 이 모든 것이 기록에서 시작되고, 기록을 통해 이어집니다. 일에 휩쓸려 흐름을 놓치거나 맥락을 잊을 때, 적어둔 메모는 "내가 왜 이걸 시작했지?",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지?"라는 질문의 답을 스스로 찾게 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자 나침판이 됩니다. 바쁘게 움직이느라 방향을 잃었을 때 다시 펼쳐 보면, 흩어져 있던 생각의 조각들이 어느새 하나의 길로 모입니다. 메모와 기록이 지나간 시간을 붙들어 두는 일을 넘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멈출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여러 일이 동시에 굴러가다 보면 머릿속이 정말로 멍해지거든요. 그래서 노트 한 권에 프로젝트별로 서너 페이지씩 빈자리를 미리 잡아두고,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 자리를 채워 넣습니다. 노트를 여러 권 들고 다니는 것보다 한 권에 모아 두는 편이, 여러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한눈에 둘러보는 데 훨씬 도움이 됩니다. 노트는 쓰임에 따라 둘로 나눕니다. B5 두 장을 펼친 크기의 큰 노트에는 컨셉을 중심으로 큼직하게 정리하고, A5 노트에는 아이디어를 촘촘하게 기록합니다. A5 노트는 한 페이지가 네 칸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저의 경우 늘 왼쪽 위 칸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오고, 오른쪽은 반대로 아래 칸에서 시작해 위로 올라가며 채웁니다. 그러면 글이 오른쪽 맨 위 칸에서 끝나고, 그 흐름이 다음 페이지의 왼쪽 맨 위 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더군요. 별것 아닌 방식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써두면 나중에 노트를 다시 펼쳤을 때 시선이 흐트러지지 않고 기록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습니다. 몇 년 동안 이 방식으로 써보니, 이런 작은 작성 규칙 하나가 노트를 빠르게 훑어볼 때 시야의 흐름을 꽤 쾌적하게 만들어 주더군요.


마지막 이유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메모를 합니다. 생각이 복잡할 땐 일단 키워드부터 종이에 던져 놓습니다. 그렇게 한참 끄적이다 보면 컨셉이 잡히고, 흩어져 있던 것들 사이에서 연결이 보이고, 어느 순간 전체 그림이 떠오릅니다. 저는 그림이나 도식을 많이 그리는 편이라, 컴퓨터보다 종이가 훨씬 편합니다. 컴퓨터로 도식이나 그래프를 그리려면 도구를 찾고 익히는 데만 시간이 한참 걸리는데, 종이에 슥슥 그려서 사진으로 찍어 두는 편이 더 빠를 때가 많거든요. 그렇다고 디지털 도구를 안 쓰는 건 아닙니다. 짧은 메모는 맥의 드래프트(Drafts)에, 조금 긴 글은 옵시디언에 정리합니다. 글은 주로 마크다운으로 쓰고, 에디터는 타이포라(typora)나 바이워드(byword)를 자주 씁니다. 간단한 목록은 구글 킵(Google Keep)에 적어 두고, 워드 프로세서가 필요할 땐 페이지스(Pages)나 구글 닥스(Google Docs)를 씁니다. 한 때 에버노트와 노션, 업노트도 꽤 썼는데,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쓰다 보니 결국 저에게 맞는 도구로 자연스럽게 좁혀지더군요. 지금도 디지털 도구들을 많이 쓰지만, 개인적으로 메모의 첫 번째 선택지는 언제나 종이 노트입니다. 컴퓨터 앞에서 한참 일하다가도, 생각이 엉키기 시작하면 결국 다시 종이 노트를 펼치게 되더군요. 개인적 경험으로는 종이 위에서 한 번 정리되지 않은 생각은, 화면 위에서도 좀처럼 정리되지 않더군요. 세 가지 이유를 적어 놓고 보니, 저에게 메모는 무언가를 적어 두는 일이라기보다, '생각하는 방식' 그 자체인 듯합니다.




바카라을 다 읽고나니, 메모란 결국 "왜 적느냐"라는 질문에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구가 종이든 앱이든, 형식이 마인드맵이든 색인 카드든, 그 안에 자기만의 기록의 이유가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을 모두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것을 머릿속 밖으로 꺼내 놓아야 비로소 무엇인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줄이 있는 노트든, 표지가 마음에 드는 노트든, 컴퓨터 메모 애플리케이션이든, 나만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꽤 즐겁고 재미있는 일입니다. 지금 자신만의 메모법을 새로 시작하거나 다듬고 싶다면, 이 바카라을 통해 먼저 “나는 왜 메모하는가”라는 질문을 천천히 떠올려 보며 앞으로의 방향을 찾아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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