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의 <오디세이>엔 오디세이아가 필요하지 않다

by민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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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로이>의 브래드 피트



1. 영웅의 신발에는 똥오줌이 묻어있다


승리의 역사는 멋지다. 영화 <트로이>(2004)에서 앳된 브래드 피트가 전장을 휩쓸고 트로이 목마에서 용감하게 내려오는 모습은, 비록 그게 참된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영웅의 발자취를 그리기엔 더할 나위가 없다. 드넓은 전장에서 일렬로 도열한 군사들이 힘차게 뛰쳐나가며 장군과 함께 비장한 죽음을 맞이하는 그림은 전쟁사를 다루는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명장면으로 등장하곤 한다.


커크 더글라스가 주연을 맡은 1954년의 <율리시즈>(율리시즈는 오디세우스의 로마식 발음이다)에 등장한 오디세우스 역시 멋진 영웅처럼 묘사된다. 항해 장면은 "선원들이여, 돛을 올려라!"같은 힘찬 외침에 영웅적인 배경음이 깔린다. 부하들의 얼굴에도 공포심이나 두려움 따위는 찾을 수가 없다. 그들은 기운 넘치고 용맹하며, 촬영장에서 강하게 쏟아지는 아크 조명은 인물들과 오디세우스의 영웅적인 얼굴을 한껏 부각시킨다.


하지만 그로써 우리가 진정 역사 속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점프컷으로 중무장한 승리 혹은 비장미가 넘치는 역사의 이면 속에선 어떤 구질구질한 문제들이 숨어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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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 안에서 검에 찔리는 병사와 그 입을 틀어막는 동료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2026)에서 처음 시선을 끄는 지점도 거기에 있다. 예컨대 트로이 목마에 대한 묘사를 돌이켜보자. 해변에 버려진 목마를 성 안으로 들이기까지, 목마 속에 숨어있던 병사들은 얌전히 허리춤에 숨겨둔 단검을 정비하며 멋진 모습으로 대기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자신들을 숨겨주던 동료가 트로이 군에게 살해당하는 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거나, 검문으로 목마를 찌르는 병사의 검에 어깨를 찔리면서도 입을 틀어막으며 버틴다. 함께 뒹굴던 병사들의 똥오줌이 뒤섞인 채로 역한 고비를 넘긴 뒤에야 간신히 야밤 기습에 성공한다.


'트로이 목마의 실상'은 그야말로 구질구질하다. 트로이 목마 내부를 비췄듯, 화려한 신화적 승리와 거리가 먼 장면들이 오디세우스의 귀환 내내 이어진다. 그러니 어느 순간엔 '분명히 승리의 귀환인데 어째 패배보다도 더 참혹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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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참호 신


대의나 신화 같은 '큰 이야기'의 가장 밑단으로 내려가 보면, 그 현장의 숨결은 대부분 기대했던 것과는 딴판인 경우가 많다. 영화는 종종 그런 속성을 역사 속에서 불러들인다. 가령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는 선전용 전쟁 영화들과 달리 오마하 해변에서 죽어나가는 병사들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면서 당시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전쟁을 놀이쯤으로 여기다 크나큰 충격을 받는 독일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나, 피와 살로 빚은 항일 운동을 잔혹하게 드러낸 <하얼빈>(2024)과 같은 영화 역시 같은 지점을 묘사한다. 어찌 됐건 이런 영화들이 추구하는 바는 어떤 대의가 그것이 추구하는 것 이상으로 고단하고 참혹한 여정을 따른다는 데 있다.


그런데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는 그 양상이 앞선 영화들과는 조금 다르다. 거창한 목표 아래 희생된 참혹한 현실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귀향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 앞에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놓는다는 것이다.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고난을 맞이하는 이유는 전쟁이나 국가 간의 알력, 이데올로기 같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에 있지 않다. 대부분의 문제는 그저 물자가 부족하고 배가 고파서 벌어진다. 트로이에서의 승리 같은 건 언급되지도 않는다.


폴리페모스의 굴에 갇힌 사건도 물자를 조달하려다 양을 따라가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고, 라이스트뤼고네스족들의 섬에 도착해 끔찍한 도살을 당하는 장면도, 마녀에게 잘못 걸려 돼지가 되는 장면도 모두 굶주림 때문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묘사된 신화적 여정은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에서 보다 더 인간적으로 각색된다. 키클롭스 거인과 여섯 머리 괴수 스킬라와 같은 신화적 생명체들도 등장하기는 하지만, 고난 자체는 다분히 인간의 문제에 가까우며 특히 오디세우스에게는 트롤리 딜레마가 수시로 강조된다. 부하들을 죽게 만든 것은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신화적 존재들이지만 그 이전에 오디세우스라는 한 인간의 선택이 놓여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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