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기차의 꿈>(2026)은 자본이 아무런 제약도 없이 폭주하던 시절을 무대로 삼고 있다. 영화 자체는 미국 촌동네의 가난한 벌채꾼 주인공의 평범한 삶을 다루는 영화지만, 마치 암시하듯 중요한 사건들이 1:1.5의 좁은 프레임에 종종 튀어나온다.
가령 극의 초반부 함께 일하던 동양인 노동자를 이유도 없이 다리 위에서 떨어뜨리는 장면이 그렇다. 현재의 미국은 슈퍼파워로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지만 그 이면엔 피로 얼룩진 개발의 역사가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2009)에서 묘사된 흑인 농장과 같은 노예제도는 유명하다. 그러나 대륙 횡단 철도와 같은 거대 토목 사업에서 아시아인들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이 그야말로 '소모'되었다는 사실까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철도는 서부개척기를 지나 미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재미있는 건 이 철도가 항상 두 가지 방향으로 미국 슬롯를 완성해 나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철도왕' 릴랜드 스탠포드는 센트럴 퍼시픽 철도 건설을 주도했지만 한편으로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1878년 마이브릿지라는 사진작가에게 의뢰한 연속사진은 초기 영화사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고, 미국 명문 스탠포드 대학교 역시 그가 설립하였다. 한쪽에서는 인종 청소를 외치며 유색인을 소모품처럼 사용한 사업가가 다른 쪽에서는 학술에 기여했다니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스탠포드뿐만 아니라 20세기의 자본의 성격이 대개 그러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스포캔 국제철도 역시 다니엘 체이스 코빈이라는 사업가에 의해 진행되었는데, 소개소 사람들이 이민자의 임금을 착취하고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코빈은 지역 슬롯를 발전시킨 위인으로 추앙받았다. 문명의 눈부신 발전이 있었으나 한편으론 인간성이 말살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기차의 꿈>은 대개 같이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극단의 두 양상이 한데 섞여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자주 다룬다. 시각적인 이미지에서 서사적인 요소, 콘텍스트로 영화 바깥에 있는 거대담론과 개인의 삶까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아무렇지 않은 척 모여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왜 이 영화가 '기차의 꿈'인지, 왜 극 초반부 철도 건설 사업이 이미지를 가득 메우고 있는지 이해가 된다.
로버트가 아내와 만난 장면(위)과 로버트가 이해할 수 없는 무자비한 폭력을 마주하는 장면(아래)
기찻길의 이미지는 인생을 상징한다. 부모의 존재도, 태어난 날짜도 모르는 한 남자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추방된 이민자 가족에 대한 것이 전부다. 이 기나긴 인생의 여정을 시작하는 첫 침목부터 문명에 의한 인간성의 말살로 시작한 주인공은 과연 인생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처음 나간 철도 공사 현장에서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 마음의 짐을 떠안게 된 로버트(조엘 에저튼)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아내와 아름다운 나날을 보낸다. 애니메이션 <업>(2010)의 초반부 단편을 보는 듯한 이 눈부신 행복은 앞선 상황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참혹한 죽음과 완전한 행복이 로버트라는 한 인간의 시간선에서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기차의 꿈>은 서사 자체는 아주 단순하다. 주인공 로버트가 벌채 시즌이 되면 일하러 나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오길 반복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로버트가 일을 하러 나가거나, 갔다 온 사이 벌어진 일들이 항상 기대와 반대되는 일로 대치를 이루게 되며, 삶과 죽음도 한데 뒤섞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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