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스파이더 맨> 시리즈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스파이더 맨 : 브랜드 뉴 데이>(2026)는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어쩐지 기묘한 그리움 같은 것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움의 정체가 무엇일까 가만 생각해 보니 어느덧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 맨도 10년 차를 앞두고 있다. 세월은 바라보는 대상이 무엇이 됐건 아련하게 만들고 지나간 일들을 추억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 맨을 보고 자란 나는 아직도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10년을 거듭 보고 있으니 어느덧 관객 경험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그의 성장사가 눈에 띄게 된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히어로 영화에서 성장사가 눈에 띈다는 건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매력적인 캐릭터는 관객이 감정적으로 동화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서서히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예가 <아이언 맨> 시리즈의 토니 스타크라고 할 수 있다. 군수산업의 피도 눈물도 없이 이익만을 추구하던 사업가가 자각과 좌절, 극복과 희생을 통해 지구를 구한다는 서사는 15년에 걸쳐 관객과 함께 했다.
그리고 이런 캐릭터는 종종 배우와 함께 나이가 든다. 톰 홀랜드가 <스파이더맨 : 홈 커밍>(2017)에 등장했을 무렵을 돌이켜보면 현재의 모습과 얼마나 큰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새삼 실감이 된다. 단순히 외양뿐만 아니라 작중 언행도 달라졌다. 때로 영화 속 영웅이 관객이 이루지 못한 서사를 대신 짊어지고 있는 것이라면, 그들이 세계관 속에서 쌓아가고 있는 삶 역시 다른 의미로 관객의 거울이 되는 것 아니겠나.
영화 <21>에서 블랙잭 팀과 함께 라스베이거스에 입성하는 벤
<스파이더 맨 : 브랜드 뉴 데이>의 매력은 여기서 진가를 발휘한다. 영웅이 나이가 들면 그들이 이겨낼 역경도 나이에 걸맞은 것으로 변모하지 않을까?
전작 <스파이더 맨 : 노 웨이 홈>(2021)에서 피터는 멀티버스의 충격으로 인한 파멸을 막기 위해 스트레인지에게 부탁해 전 우주에서 자신에 관한 기억을 지운 상태다. 시민들은 더이상 '스파이더 맨=피터 파커'라는 도식을 기억하지 못하며 그의 절친인 네드와 애인이었던 MJ조차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영웅 스파이더 맨으로서 활약은 가능하지만 피터 파커라는 본인의 페르소나는 철저히 잊힌 상태.
그 모습을 보면 영화 하나가 떠오른다. 영화 <21>(2008)은 천재 대학생이 라스베이거스의 블랙잭 판을 털어 떼돈을 버는 이야기로, 후반부에 접어들면 주인공 벤이 다음과 같은 독백을 흘려보낸다. 구질구질한 대학교 펍을 벗어나 라스베이거스에서 환상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안 좋은 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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