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칼날이 무뎌졌다 <군체>

by민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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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감독을 꼽으라면 누가 있을까. 일단 단박에 떠오르는 건 연상호 감독이다. 그는 극장과 OTT까지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까지 다작하는 팔방미인형 감독이다. 2025년 한 해에만 <계시록>과 <얼굴>을 개봉했는데 2024년에는 드라마를 무려 3편이나 연출했다. 놀라운 건 이 엄청난 스케줄에도 작품의 편차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축구선수로 치면 풀타임 선발을 1년 내도록 뛰는데도 부상 한 번 없는 철인 미드필더 같은 모양새다.


엄청난 작업량만큼 그의 관심사도 주로 SF 장르를 향한다. 국내에서는 혹평을 받긴 했지만 <정이>(2023)는 국내 SF에서 보기 드문 수작이었고, <부산행>(2016)을 필두로 한 연상호식 'K-좀비 시리즈' 역시 그의 독특하고 고유한 영역을 자아내고 있다. 좀비를 통해 인간 광기의 현장을 드러내고 그와 대비되는 휴머니즘을 배치함으로써 인간의 양면성을 다루는 것이 연상호식 휴머니즘의 특징이지만 그가 작품에서 항상 중요하게 다루는 요소가 있다. 바로 시스템과의 대결이다.


그의 출세작 <부산행>은 표면적으로는 좀비와 인간의 사투를 그리는 듯 하나, 주인공들은 한정된 자원과 길목을 열고 닫는 철도 시스템 속에서 인간의 규칙이나 제도와 같은 드러나지 않는 시스템과도 마찰을 빚는다. 그것은 후속작 <반도>(2020)에서도 마찬가지다. 좀비가 득실거리며 국가라는 초월적인 시스템도 붕괴된 세상 속에서 631부대가 재창조한 시스템이 새로운 우상을 낳고 주인공들은 이 때문에 곤경에 처한다. 한편 드라마 <지옥>(2019)에서는 사자라는 '정체불명의 재해(극 중 공형준 교수의 말에 따르면)'가 가장 큰 위협으로 다가오지만 점차 극이 진행됨에 따라 새진리회 교단과 화살촉이 맞물린 시스템이 더 위협적인 대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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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이전 작품들이 시스템의 존재를 직접 드러내지 않는데 반해 최근 개봉한 <군체>(2026)는 아예 시스템을 설정으로 끌어와 대결 구도를 만든다. 분노와 파멸을 꿈꾸는 존재가 직접 시스템을 조종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간 연상호 감독의 영화에서의 좀비는 특정한 계기로 인해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광기였다면 <군체>는 최초 발신자의 의도에 따라 확산이 통제된다. 사람이 사람을 공격하는 연상호의 디스토피아에서 이 변화는 작금의 사이버렉카로 불리는 1인 미디어, 사이비 종교와 정치극단화 등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중앙 거대 권력의 음흉한 계획이 아닌, 한 개인의 몰락과 분노가 국지적으로 파멸적인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는 <군체>의 의도는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하다. 요즘 대한민국 슬롯의 어두운 단면을 알레고리화 하는데 이만한 것이 또 없지 않나 싶다.


물론 군체의 '연대 좀비' 설정은 인간을 광기로 이끄는 시스템에 대한 은유를 넘어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설정 도전이기도 하다. 기존 좀비물에서 좀비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사람을 물어뜯어 전염시키는 것뿐이지만 종종 이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좀비를 요청하는 사례가 있다. 가령 <#살아있다>와 같은 영화에서는 좀비가 생전의 기억을 살려 직업 능력을 활용하게 된다는 설정이 있고 <나는 전설이다>(2007), <아미 오브 더 데드>(2021)에서는 <군체>와 같이 '지도자 좀비'가 있으며 상위레벨에 있는 좀비는 말을 타거나 인지능력 및 지능도 갖추고 있다.


SF장르가 다양한 과학적 발견들을 세계관으로 끌어왔듯이, 당연하게도 현대 좀비 영화에서 좀비의 능력 자체에 대한 변주는 끊임없이 시도 돼왔다. 좀비의 능력이 다양해질수록 서사 속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위기나 복선도 다양하게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군체>는 앞선 작품들에 대비해서 독창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군체 설정을 서사 장치로 그럭저럭 잘 활용하고 있다. 더구나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졌다'라는 두루뭉술한 서술보다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노력을 초반부에 가미함으로써 단순히 기존 세계관에만 기대지 않으려는 단호함도 내비친다.


그러나 그런 도전들이 언제나 옳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좀비 장르에서 좀비라는 대상은 '무작위'라는 공포로 극을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일면식도 없는 존재가 느닷없이 나를 공격하고 심지어 그 끔찍함 속에 내가 빨려 들어간다는 공포감은 얼마나 끔찍한가. 반면 '통제된 좀비'라는 영역은 좀비 장르의 가장 큰 장점을 스스로 버리는 것과 같다. 장점을 버려가면서까지 참신한 시도를 하겠다면 그만큼의 어떤 서사적 이점이 있어야 하는데, <군체>는 과연 그런 이점을 취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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