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27 작성
영화 <파묘>(2024)의 중심이 되는 사건은 영화의 제목처럼 주인공들이 '파묘(破墓)'를 시작했을 때다.
무덤을 파내기 전까지 의뢰를 받은 인물들은 세상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을 법한 익숙한 행태를 보여준다. 조선시대부터 명당이란 명당은 이미 다 자리차지하고 누워 사실상 'B급' 말고는 팔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명당을 속이며 돈을 챙기는 지관, 신 받은 무당치고 너무 세련된, 같은 동료들 커미션까지 날름 빨아먹는 속물 무당, 장례 절차의 달인이지만 파묘한 부잣집 묫자리에서 귀금속을 챙기는 장의사까지.
굿이니, 무당이니, 명당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미신이라는 걸 떠들면서도 한편으론 괜히 의지해보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을 배신이라도 하듯이, 작중 인물들은 하나 같이 '돈이 문제지, 귀신이 문제냐' 하는 속물적인 시각으로 사건에 뛰어든다.
겉으로는 안 믿는 척 하지만 암암리에 숭배되는 미신이 그러하듯, 물질적인 건 세속적이라며 멀리하다가도 뒤에서는 가까이하는 사람들의 속물적인 모습은 익숙하고, 때론 상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관객도, 극중 인물들도 익숙하게 품고 있는 '잘 알고 있는 것의 편안함'이 깨져버린다면 어떨까. 파묘의 시작과 동시에 밝혀진, 사람을 절대 묻어서는 안 되는 악지(惡地) 중의 악지에 부잣집 조상님이 누워있다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불가능한 파묘도 가능하게 만들었던 만능 무당 화림이었으나
장재현 감독이 영화 <파묘>에 심어 놓은 동력은 오컬트도, 귀신 이야기도 아니다. 바로 '미지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 그 자체다.
인간은 예상할 수 없는 문제에 공포를 느낀다. 과학의 시대에 살기 전 인류가 샤머니즘과 종교에 기대어 현상을 해석했던 것처럼, 예측불허의 상황이 생기면 어떤 식으로든 해소가 되기를 원한다. 그게 과학의 시대라고 다를까. 과학도 근본적으로는 모르는 것을 더 확실하게 알고자 하는 방법론일 뿐이다. 딸이 과학도였지만 결국 자신의 풍수지리도 다를 게 없다는 지관 상덕의 지론 역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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