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쉬어가기] 1부를 마치며, 2부를 시작하기 전에

by별빛바람

본 글은 어리고 약하다고만 생각했던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의 갑작스러운 일상 붕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일이 우리 가족에게 벌어졌을 때, 누구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우리 가족은 처음엔 그 상황을 “부정”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설마… 내 아이가 그랬겠어?”


하지만 그 생각은 곧 다시 불안과 불신으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아이의 모습이 있지 않았을까?”


사실 아이의 말 한마디를 온전히 믿는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00년 00월 00일, 한 초등학교의 점심시간에 있었던 그 일을 우리 부부는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우리 아이는 절대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처음에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아직 증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피해자라 주장하던 찬우(가명)의 진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가해 관련 학생으로 지목된 남자아이들의 납득하기 어려운 진술이 있었습니다.


그 말들만으로 이 일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들 때문에, 어리고 약한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는 잔인하고 참혹한 집단 폭행 사안의 가해 관련자로 지목되었습니다. 학교의 시스템 아래에서, 아이에게는 낙인이라는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600여 일이 흘렀습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정말 아이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면, 학교가 그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을까요?”


저도 그런 낭만적인 생각을 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그렇게 해주지 못했습니다.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의 억울함은 “공정함”이라는 말 안에 갇혀 버렸습니다.
그저 학예회 공연을 준비하던 아이는 어느 순간 참혹한 집단 폭행 현장에 있었던 아이의 이름으로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학예회 때 친구들 앞에서 멋진 춤을 보여주고 싶었던 아이는 그 무대에서도 빠지게 되었습니다.

영어바카라 읽기를 좋아하고, 중국어 공부를 좋아하던 아이.

누구보다 예쁜 글을 쓰던 딸아이.
친구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이 부끄러워도, 그래도 한 번은 멋지게 해보고 싶어 하던 아이.

그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폭행 현장에 있었던 아이가 되었습니다.
혹은 폭행 현장에서 집단 폭행을 주도한 아이처럼 기록되었습니다.


그나마 딸아이를 지키고 보호했던 것은 USB 파일에 담겨 있던 CCTV 반출본뿐이었습니다.

그 어느 누구의 목격자 진술도, 그 어떤 논리적인 설명도, CCTV 이상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CCTV 속 아이는 가해 현장에 있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m 떨어진, 눈으로도 쉽게 식별하기 어려운 장소에서 친구들과 춤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돌 가수처럼 부드럽게 춤을 추지는 못했습니다.

동작은 뻣뻣했고, 아이는 수줍게 웃고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부드럽고 멋있게 춤을 출 수 있을지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그 영상 속에 남아 있던 것은 폭행 현장의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학예회를 준비하던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였습니다.


우리는 늘 “공정함”에 대해 교육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일을 겪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공정함이라는 말이 언제나 모두에게 공정하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든, 피해를 주장하는 아이든, 혹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아이든, 시스템은 때로 모두를 같은 절차 안에 세워둡니다. 그리고 그 절차는 겉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구에게도 충분히 친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억울하게 이름이 올라간 아이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시스템은 우리에게 딸아이를 향한 주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단 한 줄.


학폭 신고서에 내 딸아이의 이름이 올라왔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 아이는 어느 순간 “학폭 가해 관련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을 하게 될 겁니다.


“학교에서 철저하게 조사하면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나요?”


당연히 학교는 조사를 합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 학교의 조사는, 우리가 기대했던 의미의 사실관계 조사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CCTV를 확보하고, 동선을 맞추고, 진술의 모순을 끝까지 파고드는 방식의 조사가 아니라, 아이들의 진술이 일관되는지, 절차상 필요한 기록이 갖춰졌는지를 확인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 모든 것을 깨부수고 이겨내는 일은 결국 부모의 역할로 돌아왔습니다.


이 글은 600여 일간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치유의 에세이만은 아닙니다.


물론 치유도 필요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무너졌고, 아이는 잠을 자지 못했고, 학교라는 공간을 두려워했습니다.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우리에게는 기록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일방적인 주장을 어떻게 확인하고,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확실한 증거를 어떻게 확보하고, 그 증거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학교와 교육청의 절차 속에서 부모는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이 연재입니다.


1부에서 우리는 학폭위 심의를 거쳐 “관련 없음”이라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단어 하나를 받았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후 A씨 측은 그 결과에 불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다시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이라는 더 길고 차가운 서면의 싸움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2부에서는 바로 그 이야기를 이어가려 합니다.

학폭위가 말과 진술의 싸움이었다면, 행정심판은 문서와 증거의 싸움이었습니다.
감정이 아니라 서면으로 말해야 했고, 억울함이 아니라 팩트로 증명해야 했습니다.
내 아이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를 위해, 우리는 수백 페이지의 서류를 읽고, 반박하고, 다시 써야 했습니다.


최근 들어 학교폭력 조치사항은 상급학교 진학과 입시에서도 더 무겁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폭 신고는 더 이상 학교 안에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의 현재뿐 아니라, 앞으로의 시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진짜 학교폭력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피해를 입은 아이는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 원칙은 절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 제도가 누군가의 일방적인 진술이나 악의적인 프레임에 의해 이용될 때, 또 다른 피해자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다시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이름이 올라간 아이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증명하기 위해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큰 싸움 앞에 서게 됩니다.


본 연재는 그 억울함을 이겨내는 글입니다.


2부부터는 멤버십으로 글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글을 닫아두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앞으로 이어질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의 기록에는 실제 서면 대응, 반박 논리, 증거 활용 방식, 교육청과 위원회를 상대로 한 문서 싸움의 과정이 더 구체적으로 담기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 가족의 기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일을 겪고 있는 부모에게는,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작은 지도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이 많은 분들에게 읽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간절한 바람은 따로 있습니다.


억울한 학폭으로 고통받는 누군가에게,
내 아이의 말을 믿고 싶지만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몰라 밤을 새우는 부모에게,
학교와 교육청의 절차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가족에게,
이 기록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부는 여기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이제 2부에서는,
조치 없음 이후 다시 시작된 싸움,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의 시간을 기록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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