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카메라는 하나의 트렌드였다. 디시인사이드를 중심으로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올리고, 서로의 사진을 평가하던 시절이 있었다. 여행을 갈 때면 카메라 한 대쯤은 챙겨야 했고, 누군가 DSLR을 들고 오면 그 사람은 순식간에 사진을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 시절은 그랬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세상은 변했다. 카메라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이 되었다. 고작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는 일은 비효율적인 행동처럼 여겨졌다.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은 충분히 편리했고, 결과물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미 충분했다. 굳이 카메라를 꺼낼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조금 낯선 사람이 되었다. 때로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상한 점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일에는 모두가 관대하면서도,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으면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태원의 한 음반 매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안요원은 출입을 막았다.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인증샷을 찍고 있었다. 여의도의 한 대형 빌딩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카메라로 사진 몇 장을 찍으려 하자 보안요원이 다가와 사진 촬영을 금지했고, 찍은 사진을 지우라고 했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는 관광객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브이를 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이상하게도 스마트폰 속 카메라와 진짜 카메라를 다른 물건처럼 대한다.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은 가볍고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찍는 사진은 어딘가 더 의도적이고, 더 진지하고, 때로는 부담스러운 행위처럼 느낀다. 사실 카메라는 그저 사진에 조금 더 집중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일 뿐인데도 말이다.
카메라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를 상상해 본다. 초기의 다게레오타입 카메라는 분명 불편한 물건이었다. 장비는 크고 무거웠으며,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 시절의 카메라는 평범한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담기 위한 도구라기보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남기기 위한 도구에 가까웠을 것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카메라는 집안의 귀한 물건이었다. 평소에는 장롱 한구석에 넣어 두었다가 입학식, 졸업식, 회갑연 같은 중요한 날이 되면 조심스럽게 꺼내는 물건이었다. 모두가 키에 맞춰 한 줄로 서고, 렌즈를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의 카메라는 집안의 중요한 순간을 증명하는 증인이었다.
나 역시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가 펜탁스나 미놀타로 보이는 수동 카메라를 사 오셨던 장면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렌즈가 분리되었고, 다이얼이 많았으며, 상단은 은색이었다. 조리개도 맞춰야 하고 셔터스피드도 맞춰야 했으니, 여간 불편한 물건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회용 카메라도 셔터만 누르면 사진이 나오던 시절에 초점까지 맞춰야 했으니, 사진을 찍는 일이 아니라 거의 노동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결국 아버지는 그 카메라를 다시 들고 가 올림푸스 자동카메라로 바꿔 오셨다. 지금 생각해도 그 카메라는 제법 근사했다. 뷰파인더 안에는 화려한 표시가 있었고, 필름 매수를 알려주는 카운터가 있었으며, 버튼 몇 개만 누르면 자동으로 사진이 찍혔다. 어린 내 눈에는 그것이 거의 최첨단 기계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그 카메라를 종종 들고나가셨다. 가족 여행을 갈 때, 졸업식이나 입학식이 있을 때, 필름 한두 롤을 챙겨 사진을 찍는 것이 하나의 일이었다. 그리고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면, 며칠 뒤 흔들리지 않고 초점이 맞은 사진들이 인화되어 돌아왔다. 그렇게 사진은 앨범 속으로 들어갔다.
언젠가 그 사진과 필름들을 스캔해 디지털로 보관하고 싶어 찾아본 적이 있다. 하지만 몇 차례 이사를 다니는 동안 필름과 앨범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어딘가 박스 속에 잠들어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이제 마음먹고 찾지 않는 이상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담고 있던 사진들 말이다.
어찌 보면 그 시절의 사진은 기록이면서 동시에 봉인이었다. 사진을 찍고, 인화하고, 앨범 속에 넣어 둔다. 잠깐 꺼내 보며 웃다가 다시 덮어 둔다. 그렇게 사진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기록되었지만 자주 공유되지는 않았고, 남겨졌지만 쉽게 열리지는 않았다.
그런 카메라가 다시 한 번 대중의 손에 들어온 순간이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사람들의 손에는 작은 똑딱이 디지털카메라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행지에서, 술자리에서, MT에서, 모임에서 사람들은 보이는 순간마다 사진을 찍었다. 필름을 살 필요도 없었고, 현상이나 인화 비용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메모리카드를 컴퓨터에 꽂기만 하면 사진은 곧바로 화면 위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사진들은 인터넷을 타고 퍼져 나갔다. 디시인사이드에 올리고, 싸이월드에 올리고, 네이버나 다음 카페에 올렸다. 사진은 더 이상 앨범 속에 잠드는 물건이 아니었다. 서로 돌려보고, 댓글을 달고, 웃고, 놀리고, 다시 추억하는 매체가 되었다.
“맞아. 그때 술 먹고 먼저 잠들어서 사진 찍혔었지?”
“이 사진 당장 내려라.”
“오늘 다시 보니까 또 웃기네.”
그 순간 사진의 성격은 바뀌었다. 사진은 중요한 행사를 증명하는 기록에서, 함께 있었던 시간을 확인하는 흔적으로 바뀌었다. 카메라의 성능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얼마나 빠르게 찍고, 얼마나 쉽게 공유할 수 있느냐였다.
하두리 셀카도 그 시절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였다. 하두리는 조금 다른 성격의 카메라였다. 기록보다는 놀이에 가까웠다. 웹캠의 낮은 화질과 묘하게 밝고 뭉개지는 효과는 얼굴을 현실보다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의 필터와 보정 앱이 하던 일을, 그 시절 하두리는 이미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때는 모든 것을 사진으로 이야기하던 시절이었다. 긴 설명보다 사진 한 장이 더 많은 것을 말해 주었다. 기쁜 순간, 슬픈 순간, 낯선 여행지의 풍경, 모임의 우스운 장면들이 모두 사진으로 남았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과한 이미지는 나의 생각이었고, 감정이었고, 그 시절의 존재 방식이기도 했다.
남대문 근처에는 디지털카메라를 파는 매장들이 모여 있었다. 캐논과 니콘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디자인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소니 카메라를 고르기도 했다. 매장에서는 카메라를 사면 메모리카드, 블로어, 클리닝 천 같은 것들을 서비스처럼 챙겨 주었다. 그리고 꼭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렇게 팔면 남는 게 없어요.”
그 말을 믿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시절 우리는 카메라를 사고, 여행을 떠나고, 모임에 들고 가고, 데이트에 들고 갔다. 경치 좋은 곳을 발견하면 누구보다 빨리 그곳으로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한 손으로 브이를 만들고, 렌즈를 바라보았다. 카메라는 여행의 완성이었고, 데이트의 한 장면이었고, 모임에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대학 시절의 일도 기억난다. 한 교수님이 나를 찾아와 말했다.
“정 군이면 카메라에 대해 잘 알 것 같아서.”
사실 나는 카메라를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어린 시절 용산전자상가에서 게임팩과 컴퓨터 부품을 사러 다닌 경험이 있었고, 그 덕분에 전자제품 매장에 가는 일 자체를 그리 낯설어하지 않았을 뿐이다. 교수님과 함께 남대문 카메라 매장에 갔다. 해외여행에 들고 갈 카메라라고 하니 작고 가벼운 컴팩트 카메라면 충분할 것 같았다. 마침 니콘 쿨픽스가 눈에 들어왔고, 나는 그 카메라를 추천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카메라가 정말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박스도 없었고, 인터넷으로 가격을 바로 확인할 수 있던 시절도 아니었다. 나도 깎아 달라고 말하긴 했지만 시세를 몰랐다. 그래도 교수님은 소녀처럼 카메라 기능을 이리저리 만져 보며 남아프리카 여행에 꼭 들고 가겠다고 했다. 그 순간만큼은 카메라가 여행의 설렘을 완성해 주는 물건처럼 보였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뒤 교수님은 그 카메라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는 일이 어딘지 불편하다고 했다. 가방에서 꺼내는 것도 번거롭고, 전원을 켜고 셔터를 누르는 것도 번거롭고, 사진을 다시 컴퓨터에 옮겨 보관하는 것도 번거롭다고 했다. 어쩌면 그동안 누군가가 찍어 준 사진을 바라보는 일에 익숙했기 때문에, 직접 사진을 찍는 행위는 생각보다 큰 노동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사람들은 조금씩 카메라를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주머니나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는 일이 귀찮아졌고, 메모리카드를 리더기에 꽂아 사진을 옮기는 일도 번거로워졌다. 어느 순간 카메라는 챙기지 않아도 되는 물건이 되었다.
“혹시 카메라 가져온 사람?”
다들 침묵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밖에 나갈 때 꼭 챙기던 물건이었는데, 어느새 아무도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았다.
“내 얼굴 꼭 나와야 해? 난 사진 찍히는 거 불편한데.”
사람들은 사진을 찍히는 일에도 조금씩 거부감을 갖기 시작했다. 단체사진과 모임 사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이제 외출할 때 챙겨야 할 물건 목록에서 카메라는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스마트폰이 들어왔다. 한국에서는 갤럭시 S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해외에서는 아이폰이 대세가 되어 갔다. 당시 스마트폰 카메라가 지금처럼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늘 손에 있었고, 사진을 찍는 행위를 다시 가볍게 만들었다.
처음 스마트폰의 카메라는 기록보다는 놀이에 가까웠다. 얼굴을 인식해 캐릭터와 합성해 주는 앱, 내 얼굴이 들어간 짧은 영상이나 게임, 우스꽝스러운 효과를 입혀 주는 앱들이 많았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앱들은 분명 사진을 다시 재미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때부터 사진은 또 한 번 성격을 바꾸었다.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은 기록이라기보다 유희가 되었다. 사람들은 가장 웃긴 순간, 가장 예쁜 표정, 가장 그럴듯한 장면을 남기기 시작했다. 스노우 같은 앱은 얼굴 위에 스티커와 이모티콘을 얹었고, 수많은 보정 앱은 현실보다 더 매끈한 얼굴을 만들어 주었다. 인생네컷 같은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오래 보관하기 위한 기록이라기보다,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한 놀이에 가까웠다.
이상하게도 이때부터 스마트폰 사진과 카메라 사진은 더 분명하게 갈라졌다. 스마트폰으로 찍는 사진에는 모두가 관대했다. 하지만 카메라의 렌즈가 자신을 향하면 사람들은 부담을 느꼈다. 스마트폰은 놀이처럼 보였지만, 카메라는 기록처럼 보였다. 스마트폰은 가볍게 지나가는 순간처럼 보였지만, 카메라는 무언가를 붙잡아 두려는 의지처럼 보였다.
“여기서 사진 찍으시면 안 돼요.”
그 말은 어쩌면 카메라를 향한 시대의 반응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카메라를 통해 정보를 가져가려 한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카메라를 통해 무언가를 증거로 남기려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카메라를 든 사람의 마음은 그보다 단순하다.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오래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이제 사진의 자리마저 동영상이 대신하고 있다. 사람들은 10초, 30초, 1분짜리 영상을 찍어 플랫폼에 올린다. 사진 한 장보다 짧은 영상 하나가 더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동영상에는 관대해지고, 사진에는 되레 인색해졌다. 스마트폰으로 찍는 영상은 괜찮지만, 카메라로 찍는 사진은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걸을 때마다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을 불편해하게 된 것일까. 카메라라는 물건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시선 속에 기록된다는 사실일까.
사진은 찰나를 붙잡는다. 너무 짧아서 지나가 버렸다고 생각한 순간을, 한 장의 이미지 안에 조용히 남긴다. 그 사진이 앨범 속에 잠들든, 인터넷에 공유되든, 스마트폰 속에서 잊히든, 사진이 하려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라지는 시간을 붙잡아 두는 것.
어쩌면 카메라는 아직도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그 시선을 조금 더 부담스러워하게 되었을 뿐이다.
찰나의 순간, 단 하나의 기록.
나는 여전히 그 오래된 방식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