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재물은 저자의 실제 경험과 법적 대응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에세이 및 실전 매뉴얼입니다. 다만, 관련자들의 개인정보 보호와 원활한 내용 전달을 위해 등장인물의 가명 처리, 직업 및 직바카라, 사건 발생 일시와 일부 정황 등은 특정할 수 없도록 각색되었음을 알립니다. 아울러 본 글은 특정 개인을 비방할 목적이 없으며, 학교폭력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어려움을 겪는 다른 학부모님들에게 공익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어른의 권력과 돈이, 방어할 힘조차 없는 열한 살 아이를 어떻게 짓밟으려 했는지. 이 모든 촌극의 시작은 학폭 통보를 받기 며칠 전, 평화롭던 봄날의 놀이터에서 비롯되었다."
사건의 시곗바늘을 봄의 어느 날로 되돌려 봅니다.
아직 학교로부터 어떤 통보도 받지 않았고, 대형 로펌이니 학폭위니 하는 단어들은 우리 가족의 사전엔 존재하지도 않던 평온한 봄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새 학기를 맞아 학부모 좌담회가 열리던 날이었습니다. 스텔라는 그 어느 때보다 똘똘하고 자신감 넘치게 발표를 해냈고, 아내의 얼굴에는 온종일 뿌듯한 미소가 번져 있었습니다.
좌담회가 끝날 때까지 스텔라는 학교 근처 '바닐라 공원(가명)'에서 친구들과 놀며 엄마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봄 햇살 아래 평화롭게 뛰어놀던 아이들 사이로, 불현듯 싸늘한 표정의 성인 여성 두 명이 다가왔습니다. 그중 한 명이 찬우(가명)의 엄마, A씨(가명)였습니다.
A씨는 다짜고짜 스텔라를 향해 윽박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우리 찬우(가명) 때렸니?"
갑작스러운 어른의 추궁에 당황한 스텔라가 "아니요, 저는 그런 적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마치 짜인 각본처럼, A씨의 옆에 서 있던 찬우의 무리 민재(가명)와 호민(가명)이가 일제히 입을 맞췄습니다.
"스텔라가 찬우(가명) 때리는 거 저희가 봤어요!"
아이들의 거짓 증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A씨는 더욱 험악한 얼굴로 스텔라를 압박했습니다.
"너 바른대로 말 안 하고 계속 거짓말하면, 당장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
그 순간, 믿기 힘든 기괴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엄마 등 뒤에 숨어 있던 찬우가 갑자기 경찰복 코스튬을 입고 나타나 장난감 경찰봉을 휘두르며 나선 것입니다.
"너 내 친구 은재(가명) 아빠가 무서운 아저씨인 거 알지? 내가 다 일러바칠 거야! 그러면 넌 분명 깜빵 갈 껄? 각오해 스텔라!!"
어른의 강압적인 취조, 또래 남자아이들의 뻔뻔한 거짓말, 그리고 '경찰'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시무시한 무게감. 아무런 방어 능력이 없는 11살 스텔라에게 그 상황은 말 그대로 숨이 멎을 듯한 공포였습니다. 그리고 찬우(가명)와 은재(가명)은 항상 아이들을 때리고 괴롭힌다고 소문이 났었는데, 은재(가명) 아빠가 무서운 아저이고 스텔라가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은재(가명) 아빠가 자신을 감옥에 보내겠다고 하니 극도의 두려움에 질린 스텔라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그 자리를 벗어나려 뛰어갔습니다.
다행히 스텔라 곁에는 진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함께 놀던 세아(가명)와 윤희(가명)가 울며 도망치는 스텔라를 쫓아갔고, 떨리는 손으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아내는 학부모 좌담회 도중 사색이 되어 공원으로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서 있는 A씨(가명)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의 대표였습니다. 돈과 권력으로 무장한 자신이 소리 한번 지르면, 평범한 집안의 어린아이 하나쯤은 겁먹고 납작 엎드릴 것이라 오판했던 모양입니다.
자초지종을 따져 묻는 아내에게 A씨는 횡설수설하며 "당신 딸이 우리 애를 때렸으니 가만있지 않겠다"는 억지만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기업 대표라는 그녀의 기세에 눌려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주 차갑고 단호하게 팩트를 짚어 경고했습니다.
"지금 무슨 짓을 하신 건지 아십니까? 어른이 방어할 힘도 없는 남의 집 귀한 아이를 공터로 몰아넣고 강압적으로 협박한 이 상황, 명백한 '아동학대'입니다. 이 일은 제가 즉시 학교에 정식으로 문제 제기하겠습니다."
그건 단순한 으름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밤, 우리 부부는 분노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오직 팩트만을 정제하여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A씨(가명)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스텔라를 위협했는지 육하원칙에 따라 기록한 '사실관계 확인서(아동학대 경고)'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스텔라 편으로 그 서류를 담임 선생님께 공식적으로 전달했습니다.
사실관계 확인서를 학교에 제출한 뒤, 대체 왜 생면부지의 A씨(가명)가 우리 아이를 타깃으로 삼아 놀이터에서 그런 난동을 피웠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주변 학부모들의 입을 통해 그날 운동장에서 있었던 '진짜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은 이랬습니다. A씨에 의한 놀이터 사건이 있기 전, 학교 운동장에서 찬우(가명)가 은혜(가명)라는 여자아이에게 장난삼아 돌을 던지고 도망을 쳤습니다. 갑작스럽게 돌을 맞은 은혜(가명)는 화가 잔뜩 나 찬우를 쫓아가기 시작했죠. 주변 학부모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돌은 상당히 컸고 은혜(가명)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으나, 다행히 다리를 맞았다고 했습니다.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운동장에서 뛰놀고 있던 민재(가명)와 호민(가명)이(놀이터에서 찬우(가명) 엄마 옆에 서서 거짓말을 거들었던 바로 그 아이들)가 이 광경을 보게 됩니다. 두 아이는 은혜(가명)가 화가 나서 뛰어가는 것을 보자 자신들도 덩달아 찬우(가명)를 쫓아갔고, 결국 찬우(가명)를 붙잡아 때리며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즉, 찬우(가명)가 먼저 돌을 던져 원인을 제공했고, 화가 난 은혜(가명)가 쫓아갔으며, 엉뚱하게도 찬우(가명)의 친구들로 추정되는 민재(가명)와 호민(가명)이가 가세해 찬우(가명)를 때린 '아이들끼리의 복잡한 난장판'이 그날의 진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소동 중에 우리 스텔라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스텔라는 찬우(가명), 은혜(가명), 민재(가명), 호민(가명)이 그 누구와도 같은 반이었던 적이 없고 친한 사이도 아니었습니다. 평소 말 한마디 섞어본 적 없고 동선조차 겹치지 않는 무리의 다툼에 스텔라가 끼어들 이유는 1%도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우리 부부는 그저 코웃음을 쳤습니다.
'아, 자기 아들이 친구들한테 맞고 오니까 속이 상해서, 아무 상관도 없는 스텔라한테까지 화풀이를 한 거구나.'
우리는 이 모든 상황을 '돈 많고 유세 떠는 이상한 엄마의 상식 밖의 해프닝' 정도로 치부했습니다. 억울하게 놀란 스텔라를 다독여주었고, 학교 측에 '아동학대에 대해 명확히 주의를 주라'는 서면까지 보냈으니 당연히 그것으로 이 어이없는 소동이 끝날 줄 알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아이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 생각하며 한 귀로 흘려들었던, 우리의 뼈아픈 오판이었습니다.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아동학대 리스크를 덮고, 자기 아이가 친구들에게 맞은 사건의 판을 뒤집기 위해, 그 기업 대표가 스텔라를 완벽한 '희생양'으로 삼아 상상도 못 할 괴물을 소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시 침묵이 내려앉은 식탁 앞, 부모가 출근하고 홀로 남아 진술서 빈 양식을 마주한 스텔라의 시간으로 돌아옵니다.
거대 로펌과 재력을 가진 어른이 꾸며낸 복잡한 집단 폭행의 시나리오나,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난장판의 실체를 스텔라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아이에게 그 날 운동장은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평범한 점심시간'이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스텔라는 무슨 일을 써야 할지 모른 채, 아빠와 약속한 대로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팩트와 억울한 감정만을 연필로 꾹꾹 눌러 담기 시작했습니다. 훗날 학교에 밀봉되어 제출되었던 스텔라의 실제 [학생 확인서]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참고로 학생 확인서 내용은 이 당시에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추후 사건이 진행되면서 긴 시간이 흘러 아이러니 하게도 제가 아닌 상대방의 요청에 의해 해당 자료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선생님. 그 날 점심시간에 찬우 만난 적도 없어요. 그날 이야기도 한 번도 안 했어요. 그날은 점심 빨리 먹고 벚꽃 정자에서 세아(가명)랑 학예회 공연 춤 연습 한 것밖에 없어요. 며칠 전 달리기를 해서 다리가 아파서 잘 뛰지도 못해요. 선생님 정말 억울해요."
"저는 찬우(가명) 만나지도 않고, 같이 놀지도 않았는데 제가 왜 때렸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찬우(가명) 엄마는 저한테 거짓말을 한다고 경찰을 부른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너무 무서워요. 제가 잘못한 것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학교 가기가 무서워요. 찬우(가명) 엄마가 또 저한테 무섭게 할 것 같아요. 정말 억울해요."
맞춤법이 틀린 곳도 있었고, 지우개로 벅벅 문질러 지운 자국 위로 번진 눈물 자국도 있었습니다. 부모로서 이 종이를 보았을 때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지만, 스텔라는 그 어느 아이보다 순수하게 자신이 아는 내용만을 적었습니다. 스텔라가 아무것도 몰랐기에 적어 내려간 이 순수한 진술서가, 결과적으로 골리앗의 급소를 정확히 찌른 세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부작위(不作為)'의 완벽한 증명입니다.
어설프게 현장에 있었다거나 장난을 쳤다는 식의 타협적인 문장이 전혀 없습니다. "만난 적도 없다", "다리가 아파 뛰지도 못한다"며 사건 자체와의 연관성을 원천 차단했고, '벚꽃 정자에서 학예회 춤 연습'이라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다시 한번 문서로 확정 지었습니다.
둘째, '진술의 오염'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했습니다.
어른이 개입했다면 절대 쓰지 않았을 "점심 빨리 먹고", "달리기를 해서 다리가 아파" 같은 지극히 11살 아이다운 표현들은, 이 진술서가 부모나 변호사의 코칭 없이 아이의 순수한 기억만으로 작성되었음을 심의 위원들에게 강력하게 어필합니다. 상대방의 정교한 타이핑 문서보다, 이 투박한 연필 글씨가 법정에서는 훨씬 더 무거운 신빙성을 갖습니다.
셋째, 가장 치명적인 일격. '가해자의 아동학대'를 학폭 공식 기록에 박아 넣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스텔라는 찬우를 때린 적이 없으니 쓸 말이 없었고, 대신 자신의 머릿속에 가장 큰 공포로 남아있는 '놀이터에서 찬우(가명) 엄마에게 협박당한 사건'을 진술서의 절반 이상을 할애하여 적었습니다. 이로 인해 단순한 '민원'으로 묻힐 뻔했던 A씨(가명)의 아동학대 정황이, 학교폭력 전담 기구가 반드시 읽고 조사해야만 하는 공식적인 '학폭 사안 조사 기록'으로 영구 박제되어 버린 것입니다. 자신들이 파놓은 학폭이라는 함정에, 가해 학부모 스스로가 발을 헛디뎌 추락하게 만든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털끝만큼의 개입도 하지 않겠다."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아이를 홀로 식탁에 앉혔던 우리 부부의 뼈를 깎는 결단이, 결국 가장 날카로운 검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스텔라의 '밀봉된 진술서'가 무사히 학교에 제출된 직후, 저는 곧장 담임 선생님께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이의 진술서라는 1차 방어선을 단단히 구축했으니, 이제 이 사건에 종지부를 찍을 가장 확실한 객관적 물증, '운동장 CCTV 영상'을 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저는 흥분하거나 따지는 기색 없이 최대한 차분하고 정중한 어조로 요청했습니다.
"선생님, 스텔라 진술서는 아내가 잘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안과 관련해 그날 운동장의 CCTV 영상을 꼭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영상을 보고 만약 우리 아이가 정말로 조금이라도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부모로서 깨끗하게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겠습니다."
무작정 "우리 애는 억울하다, 죄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학부모들과는 다른 접근이었습니다. '객관적 사실 앞에서는 승복하겠다'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학교 측의 방어적인 경계심을 낮추고 열람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저만의 작은 전략이었습니다.
뜻밖에도 선생님의 대답은 수월하게 돌아왔습니다.
"네, 아버님. 마침 오늘 저녁에 다른 가해 관련 학생 부모님들도 오셔서 CCTV를 열람하기로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민재와 호민, 그리고 준영(가명)이 부모님들이 오시기로 했는데, 아버님도 오늘 저녁 6시까지 학교 교무실로 오시면 같이 보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이름들. 민재(가명), 호민(가명), 준영(가명).
학부모들을 통해 전해 들었던 '그날 운동장에서 찬우(가명)와 엉켜 싸웠던 진짜 당사자들'이었습니다. 진짜 다툼을 벌인 아이들의 부모들과, 그곳에 있지도 않았던 제 아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가는 제가 한날한시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6시까지 반드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시계를 확인했습니다. 퇴근 시간 무렵, 꽉 막힌 도로를 뚫고 제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서둘러 회사 문을 나섰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어둑어둑해진 저녁 6시의 초등학교. 학생들은 모두 하교하고 적막이 내려앉은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환하게 불이 켜진 교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우면서도 빨라졌습니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곳에는 무거운 적막과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회의용 테이블에는 이미 도착해 있던 세 명의 학부모, 바로 민재(가명), 호민(가명), 준영(가명)의 아버님들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들의 면면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민재(가명) 아버지는 작년까지 학부모회 임원을 지낸 들으면 알만한 기업의 대표였고, 호민(가명) 아버지는 꽤 유명한 회사에서 중요한 직바카라을 가졌으며, 준영(가명) 아버지 역시 유명한 기업의 중역이었습니다. 이른바 슬롯적으로 자리를 잡은 묵직한 어른들이 좁은 교무실에 모여 앉아,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도착하기 전, 세 아버님은 이미 문제의 CCTV 영상을 한 차례 확인한 상태였습니다. 제가 자리에 앉자 교감 선생님께서 조심스럽게 상황 브리핑을 시작하셨습니다. 놀랍게도 교감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사건의 전말은, 제가 다른 학부모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들었던 '소문'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일치했습니다.
"학부모님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교감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사건 당일 찬우(가명)가 먼저 은혜(가명)에게 돌을 던지고 도망갔고, 화가 난 은혜(가명)가 찬우(가명)를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민재(가명)와 호민(가명), 그리고 준영(가명)이가 합세해 찬우를 쫓아가 붙잡는 과정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영상을 확인한 부모들의 입장은 엇갈렸습니다. 민재(가명)와 호민(가명) 측은 "우리 아이는 쫓아가기만 했지 직접 때리지는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준영(가명) 측은 "일부 때린 정황이 있는 것 같아 이미 찬우(가명) 측에 사과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깊은 한숨을 쉬며, 사건 직후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A씨의 난동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사건 직후 찬우(가명) 어머님이 학교로 찾아와 거세게 항의를 하셨습니다."
A씨(가명)는 당장 CCTV를 확인하겠다며 난리를 쳤고, 학교 측은 규정에 따라 영상을 확인한 뒤 화면에 잡힌 당사자들을 1차로 식별해 주었습니다. 돌을 맞고 쫓아간 은혜(가명), 그 뒤를 따라간 민재(가명), 호민(가명), 준영(가명), 그리고 상황을 모르고 은혜(가명) 뒤를 쫓아 뛰어가던 여자아이 두 명. 여기까지가 학교가 CCTV를 통해 파악한 관련자들의 전부였습니다. 학교 측은 A씨(가명)에게 "운동장 CCTV 거리가 멀어 아이들이 너무 작게 보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정확한 식별은 불가능하다"고 거듭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A씨(가명)의 폭주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학교로 다시 들이닥친 그녀는 더욱 황당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우리 아이를 때린 애들이 총 십 수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화면에 안 보이는 그 나머지 아이들까지 당장 찾아내세요!"
학교 측이 "CCTV 화질상 불가능하며, 현재 파악된 아이들 외에는 근거가 없다"고 난색을 표하자, A씨(가명)는 차갑게 한마디를 내뱉었다고 합니다.
"아, 불가능하시다고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갑짜기 싸이렌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 이유는 학교에 경찰이 들이닥쳤기 때문입니다. A씨(가명)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집단 폭행 조사를 명목으로 운동장 CCTV 원본을 전부 복사해서 압수해 가버렸다고 했습니다.
교감 선생님의 이 짧은 브리핑을 듣는 순간, 제 머릿속에서는 퍼즐 조각들이 소름 돋게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래서였구나.'
놀이터에서 찬우(가명)가 경찰복을 입고 장난감 경찰봉을 휘두르며 '자기 친구 아빠가 경찰인 거 알지? 다 일러바칠 거야!'라고 스텔라를 협박했던 것이 단순한 어린아이의 허풍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A씨(가명)는 이미 자신의 경찰 인맥을 동원해 학교 CCTV까지 털어갔을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것으로 보였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십 수명'이라는 A씨(가명)의 억지 주장이었습니다. 학교가 파악한 관련자는 몇 명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A씨(가명)는 자신이 주장한 '십 수명의 집단 폭행'이라는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머릿수를 채워줄 억울한 제물 중 하나가 더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타깃을 찾던 중, 우연히 놀이터에서 마주친 만만한 스텔라를 협박해 아동학대를 저질렀고, 그 사건을 무마함과 동시에 집단 폭행의 빈칸을 채울 '또 한 명의 가해자'로 우리 아이의 이름을 억지로 쑤셔 넣은 것입니다.
교감 선생님의 충격적인 브리핑이 끝나고 교무실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던 찰나, 제게 슬며시 다가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학부모회 회장 출신의 중견 기업체 대표라는 '민재(가명) 아빠'였습니다.
그는 마치 선심을 쓰듯, 은밀하고도 다급한 목소리로 제게 제안을 건넸습니다.
"스텔라 아버님,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참 답답하시죠. 사실 저희 세 집은 이미 변호사를 선임해서 대응을 준비 중입니다. 이왕 이렇게 같은 배를 타게 된 거, 아버님도 저희와 함께 묶어서 공동 대응을 하시는 게 어떨까요? 뜻이 있으시면 지금 즉시 제 계좌로 0만 원(특정을 하지 않기 위해 마스킹 처리 합니다.)을 입금해 주시면 같이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공동 대응을 빌미로 천만 원을 입금하라는 요구.
그것도 아이들의 학폭 사안을 논하는 교무실 한복판에서 말입니다. 사업을 한다는 사람의 제안치고는 너무나도 노골적이고 경박했습니다. 저는 그 속내가 뻔히 보여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변호사는 제가 알아서 선임하겠습니다."
그리고 뒤돌아서려는 민재 아빠를 향해, 제가 쥐고 있던 날카로운 팩트의 비수를 꽂았습니다.
"그나저나 민재(가명) 아버님, 혹시 이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 지난주 바닐라 공원 놀이터에서 찬우(가명) 엄마가 스텔라를 만났을 때, 그 옆에서 '스텔라가 때리는 걸 봤다'고 거짓 증언을 거든 게 바로 아버님 아들 민재(가명)와 호민(가명)이었습니다."
자신들은 그저 억울하게 휘말린 피해자인 양 점잔을 빼고 있던 민재(가명) 아빠의 얼굴에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번졌습니다. 방금 전까지 0만 원을 입금하라며 여유를 부리던 그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아... 네? 그, 그건 제가 아이에게 다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얼버무리듯 말끝을 흐리며 황급히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 비열한 제안의 진짜 소름 돋는 내막은,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가해 관련자로 지목된 세 명의 학부모가 공동으로 선임했던 변호사의 총 수임료는 0만 원이 아니라 '0만 원'(특정을 하지 않기 위해 마스킹 처리 합니다.)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교무실에 불려 온 저를 만만한 호구로 보고, 자신들의 변호사 비용 0만 원을 제 돈으로 전부 충당하는 것도 모자라, 추가로 0만 원(특정을 하지 않기 위해 마스킹 처리 합니다.)의 웃돈까지 챙겨 주머니를 불리려 했던 것입니다. 아이들의 인생에 붉은 줄이 그어질지도 모르는 이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번듯한 직함을 가진 어른들이 남의 위기를 이용해 잇속을 챙기려 한 그 천박한 민낯. 그것이 바로 이 사건을 둘러싼 어른들의 진짜 모습이었습니다.
"교감 선생님, 이제 그만 저도 CCTV를 보겠습니다."
저는 이 위선적인 어른들에게서 고개를 돌려, 교감 선생님이 켜둔 모니터 화면 앞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제 11살 스텔라의 진술서가 100% 진실임을 증명해 낼 차례였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모니터 화면을 돌려 제 앞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아버님, 보시다시피 화면이 워낙 작고 거리가 멀어서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식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다만, 자기 자녀의 체형이나 평소 움직임이라면 부모님들은 어느 정도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화면 속 운동장은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아이들로 가득 차 뒤엉켜 있었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먼저 A씨가 주장하는 '사건 현장'인 운동장 중앙을 비췄습니다. 12시 12분부터 15분 사이, 누군가 쫓고 쫓기며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어지러운 장면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혼란스러운 군중 속에 스텔라는 없었습니다.
저는 교감 선생님께 요청했습니다.
"선생님, 혹시 우리 아이가 말한 '벚꽃 정자' 쪽을 비춰주실 수 있습니까?"
교감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습니다.
"학교에 벚꽃 정자라는 명칭은 없습니다. 아마 아이들이 부르는 이름인 것 같은데, 공식적으로는 '팔각정'과 '사각정'만 있습니다."
저는 직감적으로 스텔라가 말한 곳이 팔각정임을 깨닫고 그곳의 영상을 틀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2시 09분, 제 심장이 멎을 듯한 장면이 화면에 나타났습니다.
다리를 눈에 띄게 절뚝거리며 운동장 가장자리를 지나 팔각정으로 향하는 작은 실루엣 하나.
전날 달리기를 해서 다리가 아파 잘 뛰지도 못한다던 스텔라의 진술서 내용 그대로였습니다.
아이는 12시 09분에 이미 팔각정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세아와 함께 르세라핌의 춤 동작을 맞춰보기 시작했습니다. 시계가 12시 12분을 지나 15분을 가리킬 때까지도, 스텔라는 운동장 중앙의 아수라장과는 수십 미터 떨어진 그곳에서 오직 춤 연습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12시 20분이 되어 아이들이 자리를 옮길 때까지, 스텔라의 동선은 단 1초도 폭행 현장과 겹치지 않았습니다.
"됐습니다. 보셨죠, 선생님? 우리 아이는 저기 있었습니다."
안도감이 밀려오며 가슴속 응어리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명확한 영상을 두고 누가 감히 우리 아이를 가해자라고 부를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교감 선생님, 이 CCTV 영상을 복사해 갈 수 있을까요?"
교감 선생님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법상 다른 아이들의 얼굴이 모두 찍혀 있어 외부 반출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대신 이미 경찰이 원본을 가져갔고, 학교 측에서도 이 영상을 따로 잘 보관해 두겠습니다. 나중에 교육청이나 법원에서 정식 요청이 오면 언제든 제출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저는 교감 선생님께 해당 영상을 절대 삭제되지 않게 각별히 보관해달라고 몇 번이나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아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첫 번째 공식 기록인 '학생 확인서(진술서)'.
불안한 마음에 부모가 한 글자라도 더 보태주고 싶겠지만, 진술서가 법적·행정적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1. 절대로 어른의 생각이 개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보기에 아이의 기억이 엉성해 보여서 "이때 이렇게 된 거 아니야?"라며 살을 붙여주는 순간, 진술서는 '부모에 의해 오염된 증거'로 전락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기억의 환각'입니다. 방어 능력이 취약한 아이들은 부모나 어른이 지속적으로 특정 상황을 주입하면, 자신이 겪지 않은 일조차 진짜 겪었던 진실인 것처럼 뇌에서 환각을 일으켜 믿어버리게 됩니다. 오염된 기억은 추후 조사 과정에서 반드시 모순을 드러내며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2. 완벽한 문장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만의 언어'입니다 (코칭 금지).
문맥이 어색하거나 맞춤법이 틀려도 절대 교정해 주지 마십시오. 법률 용어가 섞인 세련된 문장은 오히려 누군가의 코칭을 받았다는 의심만 살 뿐입니다.
주의할 점: 간혹 학교에서 아이를 교무실에 앉혀두고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진술서를 쓰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선생님이 "네가 때린 건 맞지? 인정한다고 적어"라며 특정한 방향으로 지시하거나 유도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부모는 반드시 사전에 아이에게 "선생님이 불러주는 대로 적지 말고, 오직 네가 기억나는 사실과 억울한 감정만 네 생각대로 적어야 한다"라고 단단히 일러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부모에게 통보하기전에 사전에 담임 선생님 혹은 학폭 전담 교사가 사전에 진술서를 받은 뒤 분리조치를 하는 경우가 있으니 그 부분도 확인이 필요 합니다.
3. 아이의 '추측'이나 '상상'은 철저히 배제하십시오.
아이들은 혼나지 않기 위해, 혹은 상황을 이해받기 위해 "아마 제가 밀었을지도 몰라요", "찬우가 저를 놀리려고 했던 것 같아요"라는 식으로 자신의 추측을 섞어 적는 경향이 있습니다. 추측성 문장이 문서로 남게 되면, 앞선 어른의 개입과 마찬가지로 아이 스스로 그 추측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기억의 환각 현상이 일어납니다. 진술서에는 오직 '내가 확실히 본 것, 들은 것, 한 행동'이라는 명백한 팩트와 '내 감정(억울함, 무서움 등)'만을 분리해서 적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11살 아이의 삐뚤빼뚤한 글씨와 투박한 문장. 그것은 결코 초라한 기록이 아닙니다. 어른의 때가 묻지 않은 날것의 진실이야말로, 거대한 거짓 프레임을 단번에 부숴버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명심하십시오.
교문을 나서는 밤공기가 차가웠지만 마음만은 가벼웠습니다. 11살 딸아이가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진술서가 0.1초의 오차도 없이 진실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중견기업 대표의 권력도 이 명백한 영상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제 됐다. 이 영상만 있으면 우리 스텔라의 누명은 금방 벗겨지겠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잠든 아이를 보며, 우리는 차마 생각지 못한 거대한 함정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집에서 아이를 홀로 앉혀두고 정성껏 밀봉해 보낸 진술서는, 엄밀히 말하면 학교가 확보한 '첫 번째'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학폭 신고가 접수된 직후, 학교의 학폭 전담 교사는 절차라는 명목하에 스텔라와 가해 관련자로 지목된 다른 아이들을 한 장소에 모아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에게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며 사건에 대해 적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부모가 개입하기도 전, 영문도 모른 채 불려 간 11살 아이가 느꼈을 공포는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스텔라에게 그때 학교에서 무엇을 적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아이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습니다.
"아빠... 사실 그때 선생님이랑 다른 애들이랑 다 같이 뭘 쓰라고 했는데. 내가 뭐라고 썼는지... 잘 기억이 안 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집에서 쓴 진술서는 완벽했지만, 만약 학교에서 강압적인 분위기에 눌려 선생님이 유도하는 대로, 혹은 다른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단 한 줄이라도 적었다면?
학폭위와 소송에서 가장 무섭게 작용하는 것은 언제나 '최초의 진술'입니다.
나중에 제출한 완벽한 알리바이는 '부모의 코칭'으로 치부당하고, 영문도 모르고 적은 그 '기억나지 않는 쪽지'가 아이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확인한 CCTV라는 강력한 창이, 아이가 스스로 적었을지도 모를 그 불확실한 기록이라는 방패에 막혀 꺾여버리는 것은 아닐까. 안도감으로 가득 찼던 밤은 다시금 보이지 않는 함정에 대한 공포로 물들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