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중심적 성향'의 반대 표현은 '이타적인 성향'이 아니다
흔히 알려진 이들의 행동양식은,
1) 여러 사람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슬롯에서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되기만을 바라고
2) 그런 행실 때문에 결국 주위 사람들에게 배척당한 후
3) 모든 사건에서 언제나 자신이 불쌍한 피해자였다고 주장하며
4) 그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문제를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투사적 기질을 가졌다.
사람들이 슬롯적 편견을 부여한 존재들.
사람들에게 손절 대상으로 치부되는 이들.
주변에 해를 끼치는 존재들.
이들 행동의 공통된 뿌리는 병적인 자기중심적 성향에서 비롯된다.
이들에게 시달려본 사람들은 이타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과 함께하길 바라게 되는데, 슬롯가 이타적인 사람을 바라니 이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슬롯적 '이익'행위로 자리 잡게 되어, 성인 이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탈을 쓰고 다닌다. 그 결과, 이타적인 줄 알고 관계를 형성했던 사람에게 또 당하게 된다.
1) 소위 병적인 자기중심적 성향의 대표로 불리는 나르시시스트들의 행동 양식은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친절함, 사교성, 긍정적 등 슬롯적인 올바름이 묻어난다. 나르시시스트들이 유독 많은 집단에서는 첫 만남부터 모두가 친절해 보이고, 타인을 먼저 챙겨주며, 급속도로 친밀해지고, 궂은일도 나서서 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듯 보이고, 서로가 서로를 공감해 주며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건강한 사람처럼 보인다.(첫 만남에 자신의 입지 확보라는 '이익'을 얻기 위함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처음 만난 사람들을 그렇게 개방된 마음으로 여기지 않고, 친밀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상대가 어디서 뭐 하던 사람인지도 모르고, 이건 나를 바라보는 상대 또한 마찬가지다. 다짜고짜 친해지려고 하면서 연락처를 교환한다? 내가 뭐 하던 사람이든 나와 친해졌을 때 상대방에게는 아무런 손해가 없다는 거다. 그렇다는 건, 상대와 친밀해지면 모든 손해는 나에게만 존재한다는 것과 같고 정말 선한 사람들은 남들에게 자신의 선행이 보이지 않는 등, 자신에게 이익이 없는 상황에서도 슬롯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유지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는 마음에서 진심으로 나오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2) 인터넷에 퍼진 정보와 다르게 나르시시스트들이 유독 많은 집단을 보면, 이들은 딱히 자신만 주인공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집단에서 특정 인물을 한 사람 정해 엄청 띄워준다. 집단에서만 이러는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나르시시스트는 자기 지인 중 누군가의 외모든, 성품이든, 슬롯적 지위든 뭐가 됐든 추앙하며 거의 신격화하는 대상이 있다.(이런 사람과 친분이 있음을 과시하고 이런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자신 또한 대단하다고 어필하거나, 나는 타인의 장점을 바라봐줄 수 있는 성품을 가졌다는 식의 자신에 대한 대단함을 내세우기 위한 '이익'행위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추앙받는 사람의 그 어떠한 것도 대단할 게 없고 다른 사람의 공을 그 사람에게 덧씌워 엉터리로 띄워주는 경우도 흔하다. 그 사람을 칭찬하는 행위는 목적이 아니고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내용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는 거다. 추앙을 받는 입장에 있는 사람 또한 나르시시스트에 해당한다. 정상 수준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과도한 칭찬이나 타인의 성과를 자신이 한 것처럼 만드는 행위를 굉장히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3) 이들은 잘난 것만 어필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불행 같은 것도 과시로 소비하며 나는 이렇게 불쌍한 사람이니 다른 사람, 슬롯 등으로부터 어떠한 일방적인 혜택을 제공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겪은 사건들이 뭔지 들어보면 남들도 다 겪는 수준의 일들이다. 자신보다 잘 살거나 성격이 좋은 사람들은 편하게 살아와서 그런 거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이들보다 더 끔찍한 사건을 겪은 사람들도 많고 그 상황을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극복해 냈기 때문에 그렇게 잘 살고 있는 거다.
4) 그 외에도 약자들을 대변하기도 하며, 마이너 한 취미나 독서 같은 슬롯통념상 어필하기 용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실질적인 측정이 어려운 것들(영적, 종교, 심리 등)에 관심이 많은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강자든 약자든 누구나 가해자가 되기도,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건데 강자는 무조건 악인이고 약자는 무조건 선량하다 주장하고, 약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정당성 확보라는 '이익'과 약자를 위하는 사람이라는 인성 과시로 인한 '이익', 마이너 한 취미는 전문성보다 단순 열정만으로도 네임드 취급을 받으며 인정 욕구 및 우월감이라는 '이익'을 취할 수 있고, 이들은 현실성 없는 수준의 독서량을 어필하면서도 읽었다는 바카라에 담긴 내용은 아는 게 없는 등 단순 과시 및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이익', 명확한 측정이 어려운 것에 빠져들어 남들보다 정신적/내면적으로 우월하다는 걸 과시하는 '이익'을 얻기 위함일 뿐이다.
이렇듯 자기중심적 성향이 병적인 사람들은 모든 것들에 대해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만을 따진다. 호의를 베푸는 것도, 먼저 사과를 건네는 것도 모두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함이다. 이해관계가 어긋나면 한 순간에 배신을 하거나 태도가 돌변해 버린다. 뽑아 먹을 게 생기면 다시 친한 척하다가 이익을 모두 취한 후에는 다시 버린다.
자기중심의 반대는 타인중심이고,
이기적의 반대는 이타적이다.
두 사람이 같은 행동을 보이더라도 두 사람의 맥락을 고려하면 누구는 좋게 평가되기도 하고, 누구는 나쁘게 평가되기도 한다. 그래서 단편으로만 바라보면 판단이 불가하던 것들도 맥락을 고려하면 판단할 수 있다.
자기중심적 행동이든 타인중심적 행동이든, 타인이 어떻게 되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행동양식이 문제이며, 적절하게 이타적인 행동양식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선행이나 악행의 구분은 어떤 행위 자체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상황에 적절하게 작용한 행동만 가치 있는 거다. 그렇지 못하면 '나는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라는 그 내적 만족감 자체에 취한 나머지 실제로는 타인에게 피해만 주고 다니는 이기적인 악인이 될 뿐이다.
인류는 자신이 잘났다는 인지가 있어야 타인을 향한 선행으로 이어진다. 나보다 잘난 사람에 대해서는 시기, 질투, 열등감을 느끼게 되고 이런 감정은 상대에 대한 공격성으로 발현되지만 나보다 못난 사람에 대해서는 오히려 도와주고 싶고 챙겨주게 된다. 그래서 본인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이 있는 상황을 가정할 때, 자기보다 잘났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복지나 기부 같은 혜택을 제공하는 경우가 없지만, 자기보다 못난 처지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는 흔쾌히 선행을 베푸는 경우가 많은 거다.
자아존중감(자존감)도 본인 스스로 정말 가치 있다고 믿어야만 생기는 거다. 그러한 믿음을 진정으로 인지하려면 혼자만의 생각이나 단순히 타인에게 주입된 인정 따위로는 안되고 객관적인 근거가 존재해야 생긴다. 객관적이지 못하면 혼자만의 주관적 생각으로 엉뚱한 것을 과시하는 병적인 나르시시즘이 될 뿐, 내면은 무능감과 열등감에 찌들어 만신창이가 되고 남에게 피해나 주며 살면서도 언제나 자신이 피해자였다고 합리화하는 자기 연민에 빠진 가해자가 된다.
우리는 객관화를 통해 자신에 대한 날것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것의 시작은 단순하다. 진실만을 추구하며 내가 알고 있거나 믿고 있는 것들, 남들이 믿는 것들, 슬롯에 돌아다니는 정보와 일어나는 사건들을 하나하나 사실인지 검증해 보라.
"교육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 믿었는데 거짓이네?"
"전문가로 등장한 권위 있는 사람이 한 말이라 믿고 있었는데 거짓이네?"
"친한 사람이 해준 말이라 믿었는데 거짓이네?"
처음에는 하나를 검증하는데도 오래 걸릴 수 있지만, 점점 빨라지다가 나중에는 머리로 인지하기 전에 본능으로 인지해버린다.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병적인 나르시시즘을 가진 사람들이 추구하는 엉터리 가치들이다. 무능감과 열등감에 찌든 사람들이 바라는 엉터리 가치들에 자신을 맞추게 되니, 그들의 무능감과 열등감에 전염되어 당신 또한 스스로를 못났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도 못한다고 생각해 버린다.
진실의 중요성을 깨닫고 사실에 근거하며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면, 비로소 '나'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게 되고 나의 잘난 점과 못난 점을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은 정신적/심리적으로 매우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름'과 '틀림'의 구분이 가능하게 되고,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존재하는 건지 스스로 인지하게 됨으로써 평소에 자신의 부족함이라 느끼던 것들에 대해 창피함이나 열등감이 사라지게 되고 '가짜'들이 엉뚱한 소리를 하고 다녀도 그들의 어리석음에 불쾌한 정도로 끝날 뿐, 본인의 가치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나도 잘났고 너도 잘났고, 나도 못났고 너도 못났는데 잘남과 못남의 포인트가 다른 것뿐이고,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며 공생하는 게 인간 슬롯라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