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개는 멀뚱멀뚱 풍경을 감상한다
길을 지나다 보면 작은 개와 큰 개가 산바카라을 하다가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이때, 작은 개는 큰 개를 향해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짖어댄다. 정작 큰 개는 혀를 내밀고 헥헥 거리며 순둥 한 표정으로 얌전하게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고, 이후에도 이런 상황을 반복하여 마주할 수 있었다.
인간도 자신보다 잘난 상대에 대해서만 시기, 질투, 열등감에 시달리고 공포에 떨며 공격성을 드러낸다. 사람이 다방면에서 우수하면 우수할수록 타인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포용하게 된다. 강한 사람들은 아픔을 겪고도 다시 나아가고, 그런 경험들이 쌓일수록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서도 쉽게 본질을 파악하게 된다. 모든 인간은 자기 인생의 바운더리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인지할 수 있어서 자신과 비슷한 존재일수록 품어주게 되고, 자신과 다른 존재일수록 배척하게 된다.
어떤 관점에서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냐에 따라 사람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물론 그것만으로 인류나 개인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떠한 관점에서 같은 집단으로 분류된 이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행동양식이 똑같거나 매우 흡사하다. 그리고 그렇게 구분해 놓은 수많은 것들의 교집합에 속하는 그 부분이 바로 당신이며, 이런 이유로 정신 의학이나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각종 성향들을 장단점으로 나누어 구분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성향은 성향일 뿐 일방적인 장점이나 일방적인 단점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상반되는 두 기질이 있다고 할 때, 어느 하나가 높을수록 반대 기질은 줄어버리며, 상반되는 두 성향이 서로 비슷한 수준이라면 둘 다 애매한 상태라는 것과 같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성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할 때, 그 한 가지 성향이 발현되기 위해서 연결되어 있는 여러 기질들이 존재한다. 그것들의 강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본질적으로 같은 수준의 사람이라면 공통된 행동양식을 보이게 된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물론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어도 정반대의 행동양식을 보일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사람마다 처해 있는 환경, 처지, 경험에 따라 다른 전략을 사용하는 것뿐이지, 본질이 다른 건 아니다.
사람에게 '성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변화할 수 있는 건 맞다. 하지만 그 변화라는 건, 타고난 수준을 정교하게 다듬어가는 과정일 뿐이지 기존과 다른 수준의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성숙한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웬만한 성인들보다 성숙하다. 미성숙한 사람은 노인이 되어서도 미성숙하다.
피해자라는 건 억울한 사정이 있어야만 하고, 억울하려면 본인의 과실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피해를 겪어야만 해당된다. 본인 과실이 크게 존재할수록 억울할 이유가 없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억울하지 않을수록 피해자가 아니다.
흔히 나쁘게 살면 배척당하고 착하게 살면 모두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실상은 착하게 살아도 안티는 생기고, 악하게 살아도 추종자가 생겨난다.
앞서 한 번 언급했듯 모든 사람은 자기보다 잘난 사람만 공격하게 된다. 잘난 부분이 많을수록 트집을 잡을 게 없기에 누명을 당하게 되고, 허위사실 기반의 수많은 공격을 감내해야만 한다. 이런 일을 겪으면 본성이 착한 사람들은 인류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본성이 바른 사람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바르게 살아가지만, 어릴 때 대부분 사람들은 성숙하지 않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성숙한 이들은 바르게 살아가면서 힘든 일들을 많이 겪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연령대에 맞는 수준으로 점점 성장해나가지만, 본성이 바른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가치, 의미를 잃어가게 되고 결국 본인의 경험에 근거하여 가치 있다고 여기는 행동양식을 인생 전략으로 세우게 되기도 한다. 그 행동양식은 어릴 때 마주하던 대중들의 모습들이다.
하지만 연령대에 맞춰 성장해 나가는 이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 간의 예의,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와 같은 것들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되기에 행동양식을 바꾼 선한 자들은 경험에 따른 인식 차이로 다시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되기도 한다.
오히려 본성이 악한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악한 행동하고도 어리다는 이유로 선처받고, 이후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학습하여 본성을 감추고 안전하게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가기에 얼핏 보면 나쁘게 살면 이득을 보고, 착하게 살면 손해만 보는 듯한 상황이 펼쳐진다.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자신의 본성을 숨길 수 없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인 척 꾸미는 행위는 굉장한 에너지 소모가 발생되기 때문에, 악인들은 첫 만남과 이별 직전에만 착한 척하고 인간관계의 중간 과정에서는 자기 본성대로 남에게 막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착한 사람은 선한 행동으로 분류되지 않는 일상적인 행동에서도 선함이 묻어나지만, 악한 사람은 선한 행동을 해도 꺼림칙한 상황이 발생한다. 어떤 빈도로 얼마나 오래 함께 하냐에 따라 다르지만 짧게는 7일 길어도 30일이면 본성이 드러난다.
모든 거짓에는 모순이 존재하기에 다른 사람인 척 연기하는 것도 맥락이 어긋나고 어색함이 생겨나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사람은 맥락을 파악하는 통찰력이 없어서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머리를 써서 사실검증을 할 고도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대체로 그저 껍데기만 좋아 보이면 홀딱 넘어가버린다.
착하게 사는 게 맞는 건지, 나쁘게 사는 게 맞는 건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여러 연구를 확인해 봐도 좋고, 직접 다양한 수준의 인간 슬롯를 관찰해 봐도 마찬가지지만, 절대적이진 않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바르게 살아가는 이들이 슬롯적으로 잘 살아가는 경향이 존재한다.
모든 사람들은 딱 자기 수준에 대해 선호하고 열광할 뿐, 더 좋은 것도 더 나쁜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흔히 표현되는 '싸한 느낌'이라는 건 인간에 대한 개인 맞춤 빅데이터에 의한 경험적 반응일 뿐이다. 그래서 자신이 싸하다고 느낀 사람들은 정말 이상한 게 맞더라는 발언은 할 필요 없다. 누구나 다 그러니까.
특정 사람이 좋게 느껴졌다는 것과 특정 사람이 안전하다는 건 다르다. 사람에게도 분명한 다름과 틀림이 존재하고 누군가가 좋다는 건 순간적인 이해관계가 통했거나 끼리끼리 만났다는 것만 알려주는 거지만, 누가 안전한 사람인지 파악하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건 객관화 능력이 있다는 것이며 이들은 당신에게 이익이 되면 됐지 타당하지 못한 사정으로 엉뚱한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며, 좋은 사람에게는 안전함이 따라오지 않지만 안전한 사람에게는 좋음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악인끼리 만나도 악인들의 특성에 의해 순간적으로 스파크가 확 튀어 친밀한 관계가 빠르게 형성된다. 하지만 악인이 악인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듯이 결국 그들끼리도 서로에게 피해를 주며 착취를 하다가 관계가 금방 깨진다. 본질적으로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이들끼리 모였으니 피할 수 없는 당연한 결과다.
꼭 전달해주고 싶은 건, 선한 사람이라면 슬롯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악인들은 그들이 보유한 성향들의 작용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밑바닥 인생을 살게 된다. 선한 사람이 슬롯적으로 밑바닥에 위치할 경우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끊임없이 착취를 당하게 되고 실패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실패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어느 정도 슬롯적 위치는 갖춰야만 악인의 비율이 줄어들어 마음 맞는 사람들과 힘을 합치며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 세상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인류 구조와 심리 작용을 파악해 보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내 인생에서 좋은 사람들과만 함께하고자 하는 건, 마치 장사하는 사람이 그 어떤 진상도 없길 바라는 것과 같다.
제대로 된 전략은 완벽한 사전 차단이 아니라 효율적인 예방과 대응바카라이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음식을 팔고 있다고 해도 직원이 고객을 대하는 태도가 막장이면 고객들도 막장이 된다. 현실에서도 서비스업에서 진상 취급 당하는 고객들은 대부분 진상이 아니라 일 못해서 엉뚱한 피해를 끼치는 직원에게 바카라임을 묻거나 지적을 하는 이들뿐이다. 나부터 똑바로 하면 진상 비율이 극한으로 줄어들게 되고, 이때부터 '진짜 진상'을 만나게 된다. 당신이 상대에게 해를 끼친 게 없음에도 혼자만의 부적절한 감정을 관리하지 못해서 엉뚱한 사람에게 엉뚱한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
인생도 마찬가지다. 올바르게 일관된 행동을 보여도 혼자 왜곡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먼저 벽을 치며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대할 필요는 없고 당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가면 된다. 사람으로서의 호의를 멋대로 애정으로 해석하여 상상연애를 하다가 본인의 창피함을 견디지 못해 당신을 문란한 사람이라 선동하는 이들, 자기보다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본인의 시기, 질투를 다스리지 못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다니는 이들, 자기보다 뛰어난 역량을 지녔다는 이유로 본인의 무능감과 열등감을 견디질 못해 누명을 씌워 배척하려는 이들 등 이런 부류의 패배자들만 상대하면 되고, 그들의 심리작용은 당신이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고 본인이 무능해서 적절하지 못하게 혼자 발생시키는 감정이기에 온전히 그들의 바카라임이다. 그리고 이들 또한 이들만의 공통 행동양식과 레퍼토리가 있기 때문에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모든 문제 상황을 차단하려는 것에 비해 대응 전략을 구축함에도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자기 연민에 빠진 악마들은 증거를 외면하고 공감만을 바라지만, 억울한 인간들은 공감에는 관심 없고 사실 확인만을 바란다. 공감은 말의 영역이고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사실 확인은 행동의 영역이며 실질적인 가치로 이어진다.
사람의 본심은 행동으로 나타나고, 사소하면 사소한 행동일수록 그 사람의 본성이 깊게 묻어난다. 오히려 대단하거나 커다란 에피소드는 사람의 본질을 미리 파악하는데 별 가치가 없다. 무능한 사람들은 입만 나불나불 거리는 반면, 유능한 사람들은 행동으로 보인다. 이런 차이 또한 해당 집단만의 공통된 성향에서 비롯된 공통된 행동양식이다. 그리고 평범한 수준의 사람들도 결국에는 깨닫는다. 어떤 게 가치 있고, 어떤 게 무의미한지.
아무리 어릴 때부터 말로 잘못된 편견을 주입시키며 선동을 하더라도 인간은 본인의 실제 경험을 가장 신뢰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생물이다. 그러한 신뢰는 말이 아닌, 행동에서 느끼고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당신이 겪은 사건들은 당신에게만 발생한 건 아니고, 당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당신과 비슷한 경험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존재한다. 사람들은 수준이 비슷할수록 같은 상황에서 동일한 전개가 펼쳐지지만, 수준이 다르면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경험이 적은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거짓 선동에 넘어가기 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며 각자 마주하게 되는 경험으로 본질을 파악하는 역량이 강화되고 저마다 타고난 수준 차이로 각종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차이가 명확해지며 인간성에 대한 큰 격차로 이어지게 되고 성숙한 진짜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미성숙한 가짜들이 추구하는 가치에는 명백한 차이가 발생한다. 결국 진짜는 진짜를 알아볼 수밖에 없게 되고, 동시에 진짜인 척하는 가짜를 단번에 구분해 내게 된다. 가짜들은 진짜를 흉내 내지만 본질적인 부분에서 끊임없이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