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시스템은 나 대신 거래하지 않는다

모든 판단을 자동화하는 것보다, 판단해야 할 순간만 남기는 편이 나았다

by포스포르

자동매매를 만들고 AI를 트레이딩에 활용하면서 한동안 나는 어디까지 자동화할 수 있을지를 계속 생각했다. 시장을 감시하고, 조건이 맞으면 진입하고, 손절과 익절을 관리하고, 거래가 끝나면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구조를 잘 만들 수 있다면 사람은 굳이 차트를 계속 볼 필요가 없어질 것 같았다. 트레이딩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감정이라면, 인간이 개입하는 부분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결바카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 시스템을 만들고 매매를 반복할수록 내가 원했던 것은 완전히 다른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장에서 인간의 판단을 없애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없애고 싶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하루 종일 여러 종목을 번갈아 보며 추세를 확인하고, 지지와 저항에 가까워졌는지 살펴보고, 거래량이나 변동성이 변했는지 확인하는 작업은 판단이라기보다 감시에 가깝다. 중요한 경제지표가 언제 발표되는지 찾아보고, 관련 뉴스를 정리하고, 현재 포지션의 손익과 리스크를 계산하는 일 역시 상당 부분 반복적인 업무다. 이런 일을 사람이 계속 직접 한다고 해서 트레이딩의 질이 반드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화면을 보고 있을수록 피로해지고, 아무 의미 없는 움직임에도 거래하고 싶어질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게 된 시스템은 나를 대신해 매수와 매도를 결정하는 기계가 아니었다. 내가 볼 필요가 없는 시장을 먼저 제거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상승 추세에서 눌림 매수를 주로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시스템은 내가 거래하는 수십 개의 시장을 계속 감시하면서 상위 시간봉이 상승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종목만 남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격이 중요한 지지나 이전 돌파 구간에 접근한 시장을 다시 추릴 수 있고, 거래량이나 변동성이 평소와 다른 종목이 있다면 우선순위를 높일 수도 있다. 그렇게 후보가 몇 개로 줄어든 뒤 알림을 보내주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는 사람이 본다.


지지가 실제로 의미 있는 자리인지, 가격이 어떤 방식으로 그 구간에 접근했는지, 급하게 떨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조정의 힘이 약해지고 있는지, 바로 위에 강한 저항이 있는지, 상위 시간봉과 하위 시간봉의 구조가 서로 충돌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한다. 지지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곳에서 실제 반응이 만들어지는지를 기다린다. 시스템은 자리를 찾아줄 수 있지만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까지 하나의 숫자로 완벽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내가 원하는 구조는 이런 역할 분담에 가깝다.


기계는 지치지 않고 기다리고, 인간은 기다릴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 방식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트레이딩에서 내가 가장 많이 낭비하고 있던 시간이 실제 매매가 아니라 매매를 기다리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자리가 하루에 몇 번 나오지 않는다면 사람이 열 시간 동안 차트 앞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 가격이 중요한 위치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프로그램이 보면 된다. 내가 차트를 봐야 하는 순간은 시장이 내가 정한 조건에 가까워졌을 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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