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AI가 대신 거래하는 미래보다, 함께 거래하는 미래에 더 가깝다고
자동매매를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의 상상을 하게 된다. 정해진 조건만 실행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차트를 읽고, 뉴스와 경제지표를 분석하고, 시장 분위기를 판단해 스스로 매매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어떨까. 인간처럼 시장을 해석하면서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고, 감정도 없이 거래한다면 결국 트레이더라는 직업 자체가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AI가 빠르게 발전하는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실제로 컴퓨터는 이미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수많은 시장을 감시할 수 있고, 방대한 데이터를 동시에 비교하며, 복잡한 계산을 거의 즉시 처리한다. 과거 비슷한 시장 상황을 찾아내는 일이나 뉴스와 경제지표를 정리하는 일도 인간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무엇보다 기계는 피곤하지 않는다. 밤새 시장을 봤다고 집중력이 떨어지지도 않고, 방금 손절했다고 화가 나서 포지션을 두 배로 키우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인간보다 AI가 훨씬 좋은 트레이더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자동매매를 만들고 AI를 실제 트레이딩에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AI가 트레이딩에서 점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이 없지만, 그것이 곧 인간 트레이더의 완전한 퇴장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다른 문제처럼 보였다.
우선 지금까지 금융시장에서 사람의 역할을 줄여온 것은 AI 하나라기보다 전자화와 알고리즘 자동화가 오랫동안 누적된 결과에 더 가깝다. 사람이 전화로 주문을 전달하던 일은 전산 시스템으로 바뀌었고, 정해진 조건에 따라 주문을 분할하거나 시장을 만드는 업무 역시 상당 부분 알고리즘이 담당하게 됐다. 이런 변화 속에서 과거 사람이 직접 하던 많은 일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을 곧바로 ‘AI가 인간 투자자를 모두 대체했다’고 설명하면 실제 변화와는 조금 다르다.
트레이딩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일이 섞여 있다. 반복되는 계산과 실행이 있고, 데이터를 찾고 정리하는 일이 있으며, 시장 상황을 해석하고 위험을 선택하는 판단이 있다. 이 가운데 앞부분은 기계가 압도적으로 잘한다. 수십 개의 코인이나 주식, 원자재를 사람이 계속 돌아가며 확인할 필요는 없다. 조건을 정해두면 프로그램이 동시에 감시할 수 있다. 경제지표 발표 일정이나 뉴스도 사람이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하나씩 찾을 이유가 줄어든다. 포지션 크기 역시 진입가와 손절가, 허용 리스크를 주면 순식간에 계산할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일을 인간이 계속 직접 하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 정보들을 받아들고 실제로 돈을 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진다. 차트에서 같은 모양이 나왔다고 해서 항상 같은 거래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승 추세의 눌림처럼 보여도 몇 시간 뒤 중요한 경제지표 발표가 예정되어 있을 수 있고, 기술적으로 좋은 지지라 해도 이미 시장 전체가 급격하게 위험 회피 상태로 변하고 있을 수도 있다. 비슷한 차트 구조라도 상위 시간봉의 위치와 변동성, 시장 참여자의 포지션, 직전에 있었던 움직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은 이런 여러 요소를 상당히 이상한 방식으로 한꺼번에 판단한다. 차트를 오랫동안 본 트레이더에게 왜 이번 자리는 들어가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정확한 규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모양이 조금 이상했다”, “힘이 별로 없었다”, “이 자리에서는 왠지 손이 안 나갔다”는 식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비과학적으로 느껴지지만 반드시 근거 없는 감정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사람이 반복적으로 경험한 수많은 사례가 완전히 언어화되지 않은 채 판단에 섞여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직감이라고 부른다. 나는 트레이딩에서 말하는 좋은 직감은 미래를 느끼는 신비한 능력이라기보다 압축된 경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수천 번 비슷한 차트를 보고 손실과 수익을 경험하면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패턴 인식이다. 물론 여기에는 함정도 있다. 경험에서 나온 직감과 두려움이나 욕심에서 나온 감정은 겉으로 굉장히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재량만 믿는 것 역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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