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을 수 없는 곳
유난히 파란 하늘이었다. 성묘 가는 길에 턱을 괴고 차창 밖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구름이 마치 북극곰이 유유히 수영하는 것처럼 보여."
"증세가 심하네."라고 남편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가는 내내 파란 하늘에 매료되어 있었다. 이윽고 단어 하나가 두둥실 떠올랐다. 이번 주 글제 '씨앗'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어를 떨쳐버리려고 했다.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공원묘지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온통 파랑에 잠겨 있었다. 눈을 감아도 푸른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먼 곳, 닿을 수 없는 곳들은 모두 푸른빛을 띤다. 수평선과 지평선이 그렇다. 눈을 감고 그 너머를 생각해 본다. 그곳으로 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때 나는 상상 속에서 푸른 옷을 입는다. 한 가닥 한 가닥 푸른 실을 뽑아내 몸을 감싼다. 그러고 있으면 멀리 있는 것들이 조금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 한참 생각 속에 잠겨 있는데, 머릿속을 맴돌던 두 단어가 어느새 하나가 되었다. ‘푸른 씨앗’.
‘마다가스카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던 게 생각났다. 울트라마린 색상의 그 씨앗을 처음 봤을 때 무언가에 홀린 듯했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누가 일부러 파란 물을 들인 것처럼 보였다. 씨앗을 비추던 카메라가 서서히 위로 올라가자, 더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무였다. 커다란 부채를 펼쳐놓은 모습 같기도 하고, 꼬리를 활짝 편 공작 같기도 했다. 그 이름이 ‘여행자의 나무’란다. 이름조차 신비로웠다.
알고 보니 그 푸른빛은 씨앗 자체의 색은 아니었다. 씨앗을 감싸고 있는 가종피가 강렬한 울트라마린빛이었다. 이 푸른빛은 여우원숭이 같은 동물의 눈에 띄어 씨앗을 멀리 퍼뜨리는 데 한몫한다고 했다.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누군가를 불러들이기 위해 만들어낸 색이라니. 생각할수록 묘했다. 푸른빛에 이끌린 것은 동물들만이 아니었다. 나도 그 씨앗 앞에서 한참 눈을 떼지 못했으니까.
닿을 수 없는 곳을 떠올릴 때마다 푸른 옷을 입는 상상을 했던 나를 보는 듯했다. 나 역시 알지 못하는 사이 어딘가로 옮겨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가끔은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보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품고 있는 씨앗이 무엇인지, 어떤 모습으로 싹을 틔울지는 모른 채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나를 보더니 한마디했다.
"괜찮나?"
"그러니까, 내가 선루프 있는 차로 사자고 했잖아. 아이고, 목이야."
"중증이구먼."
남편이 갑자기 우회전을 했다. 깜빡이가 유난히 푸르게 빛났다. 한 번 힐끗 쳐다보고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이탈했다고 자꾸 잔소리를 했다. 경로 취소 버튼을 눌렀다. 파란 하늘이 손에 닿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