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몰랐던 것처럼

들켜버린 마음

by펜끝

모가지가 꺾인 수국을 발견했다. 아니, 모가지가 사라지고 없었다. 내 목이 꺾인 것처럼 아릿했다. 목수국은 웬만해서는 잘 꺾이지 않는다. 부러뜨렸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누가 그랬을까? 집 앞을 비추는 CCTV를 확인했다.


이른 아침, 해가 금방 얼굴을 내민 시간이었다. 무심히 지나가던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멀찍이서 수국을 바라보더니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한 발짝씩 다가섰다. 2배속으로 돌려서 얼른 목을 부러뜨리는 장면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그녀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얼굴만 한 꽃송이 앞에서 머뭇거리더니 이내, 이 꽃 저 꽃의 향기를 맡았다. 아이의 얼굴을 감싸듯 두 손으로 꽃송이를 감싸더니 자기 얼굴을 갖다 댔다. 표정을 볼 수는 없었다. 두 대의 카메라는 각각 그녀의 옆모습과 정수리 쪽을 비추고 있었다.


제발···제발. 그녀가 아니길 바랐다. 처음에는 확인만 되면 욕을 한 바가지 하고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었다. 꽃을 어루만지던 두 손이 순간 멈칫했다. 망설이고 있는 걸까. 가지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지, 당황한 듯 두리번거렸다. 두세 번 가지를 이리저리 흔들더니 기어이 꺾고 말았다. 그렇게 하나 더, 하나 더, 무려 여덟 송이를 꺾었다. 들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수국을 양손에 쥐고 종종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이내 한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뒤돌아보고 미안한 표정이라도 한 번 지어주길 바랐다.


아직 한창 꽃을 보여줄 철이다. 동네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여름 한 철 잠시나마 미소를 짓게 하는 존재였다. 일주일에 두 번씩 흠뻑 물을 주면서 나까지 물이 오르는 듯했다. 여덟 송이가 빠진 자리가 생각보다 컸다. 무성하던 꽃 무더기 한가운데 구멍이 난 것처럼 보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아마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와 나만 아는 비밀이 생긴 듯했다.


꽃을 보면서 꽃도 나를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만지지 않아도, 내 것이 아니어도 서로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활짝 핀 수국은 이유 없이 자지러지게 웃는 아이의 얼굴이다. 철이 끝날 무렵이면 아쉬운 듯 웃음을 거두고 연둣빛으로 돌아간다. 집에 도착해서야 자기 손에 목을 늘어뜨린 채 생기를 잃은 수국을 보고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녀의 표정이 조금 더 사납고 수국을 괴롭히듯 부러뜨리고 갔다면 오히려 나았을지도 모른다. 미워하는 마음이 더 편할 때가 있으니까. 가지를 비틀던 손보다 꽃송이를 감싸던 손이 자꾸 생각났다. 분명 같은 손이었다. 어루만지던 손과 부러뜨린 손.


예전에 몽돌해수욕장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파도에 둥글게 깎인 조약돌 하나에 마음을 빼앗겨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쏙 집어넣고 말았다. 여행에서 돌아와 빨래하려고 주머니를 뒤지다 발견했다. 가져온 것도 잊고 있었으면서 왜 그랬을까. 나만의 것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민망했다.


그녀의 마음도 잠시나마 만개했기를 바란다. 여덟을 세고 있던 손을 펼쳤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를··· 나도 모르게 영상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처음부터 몰랐던 것처럼.

ChatGPT 이미지 2026년 9월 30일 오후 05_07_00.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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