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판도라의 상자
직업병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틈'에 강박적이다. 벽이든 바닥이든, 실눈을 뜨고 찾아낸다. 오늘따라 유난히 거슬리는 그 틈새에 온통 신경이 쏠려있을 때, 그 미세한 균열을 따라 생각의 실타래가 한 여인에게로 닿았다. 인간에게 치명적 틈을 만들어 준 여인, 바로 판도라였다.
형인 프로메테우스는 동생인 에피메테우스에게 신신당부했었다. 제우스가 보내는 선물은 인간에게 파멸을 가져올 덫이니 절대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판도라가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 동생은 판도라에게 넋이 나가고 말았다. 인간을 위해 신들의 불을 훔친 형에게 신이 분노하여 벌을 주기 위해 판도라를 만들어낸 줄은 까맣게 모른 채, 그렇게 둘은 부부가 되었다.
왜 제우스는 동생에게까지 덫을 놓았을까?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는 '먼저 생각하는 사람(선견지명)'이고, 에피메테우스는 '나중에야 깨닫는 사람(후회)'이다. 누가 더 인간과 닮았는가? 언제나 뒤늦은 후회를 일삼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벌을 주기 위해 빚어진 그녀의 아름다움 뒤에는, 신이 숨겨둔 치명적인 본성인 ‘호기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절대로 열어보아서는 안 될 상자를 주었다. 금기의 상자를 매일 바라보아야 했던 한 여인의 갈등은 얼마나 깊었을까.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뚜껑을 아주 살짝 들어 올린 순간, 그 미세한 균열을 놓치지 않고 온갖 불행이 연기처럼 빠져나왔다. 세상의 모든 견고한 것들은 언제나 아주 작은 틈새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불행이 쏟아지는 공포 속에서 황급히 뚜껑을 닫았을 때, 상자 틈새에 걸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마지막 하나가 있었다. 바로 '희망'이었다.
왜 온갖 불행이 가득한 상자 속에 '희망'이 함께 들어있었을까? '희망' 역시 인간을 괴롭히는 잔인한 신의 장난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루어지지 않을 허황된 희망을 고문처럼 품고 살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온갖 질병과 가난 속에서도 인간이 살아낼 수 있었던 건 그 상자 틈새에 걸려 있던 아주 작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 역시 가끔은 마음속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원망, 욕망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호기심이 동시에 일렁인다. 삶 전체가 판도라의 상자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결국은 열리게 되어 있다면, 두려움 때문에 닫아두기보다 기꺼이 열어젖히는 쪽을 택하고 싶다. 잘될지 안 될지 알 수 없어도 무모하기까지 한 도전을 하고, 사랑받을 수 없을지라도 마음을 고백하며 살고 싶다.
'호기심'은 내게 닫힌 삶의 상자 틈새를 과감히 벌리는 용기다. 내게만 불행이 피해 갈 거라는 나약한 생각 대신, 상자 속에서 무엇이 나오든 온전히 받아들일 각오만 되어 있다면, 그 '호기심'은 삶을 뒤바꿀 귀한 열쇠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우리는 탄생과 죽음이라는 틈 사이에서 살아간다. 우주에서 보면 그저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다. 삶이 가혹할 때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건, 절망의 맨 밑바닥 틈새에서 겨우 반짝이는 아주 사소한 희망들이다. 단 한 번 주어지는 삶이라는 치명적 틈새를 '호기심'이 발견하게 해 준 '희망'으로 메우며 살아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