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종'의 출현

쓰고 싶은 '나'

by펜끝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 동네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을 엄마만 모르는 걸까? 딱 봐도 붕어빵인데 엄마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넌 누굴 닮아서 이런 거냐?"

한 뱃속에서 나왔지만, 우리 다섯 남매는 제각각으로 자랐다. 아빠는 콩이고, 엄마는 팥이라는 가정하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콩과 팥의 유전자 변이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간만에 나른한 일요일을 만끽하고 있었다. 주방이 소란스러웠다. 벌써 두 시간째다. 계속 모르는 척할 수도 없고 소파에 껌처럼 들러붙어 있던 몸을 일으켰다. '쏴'하는 물소리와 함께 파를 다듬던 엄마의 손이 분주하다. 하품을 '쩍' 소리가 나도록 늘어지게 하는데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말하셨다.

"저녁에 해물파전이나 해 먹자. 손질할 게 많네"

"번거롭게 뭐 하러 그래? 시켜 먹어도 되는데."
엄마 손에 들려있던 오징어로 찰지게 한 대 맞을 뻔했다.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입을 나불거렸으니 맞아도 할 말은 없지만, 한마디 더 얹었다.

"고추는 넣지 마. 나 매운 거 싫어하는 거 알지?"

"까탈스럽기는···. 그거 안 넣으면 뭔 맛으로 먹을라고. 네가 요리를 아나?"

해주는 대로 먹으라는 말이다.


오징어채를 써는 엄마의 칼질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동시에 잔소리가 도마 위에서 춤을 춘다.

"자식 다섯이 어찌 그리 식성이 다 다른지 모르겠다. 거기다 너희 아버지까지."

"엄마, 요즘은 같은 붕어빵 틀에서 나와도 속에 든 게 달라. 뭘 넣을지는 만드는 사람 마음이라고!"

이렇게 나불거리는 내 입을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셨다.


처음엔 내가 엄마의 요리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내가 돌연변이이거나.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음식을 잘하시던 분이 몇 년 전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 주방일에 손을 놓으셨다. 말 그대로 '엉성시럽다'고 하셨다. 애당초 그런 유전자가 있기는 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엄마 역시, 자식들 먹여 키우느라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신 게 틀림없었다. 엄마는 요리 못하는 나를 나무라는 대신, 이렇게 말하셨다.

"못 하는 거 잘해보려고 힘 뺄 필요 없다. 좋아하는 거나 더 잘 하려고 하면서 살면 된다."

대물림된 엄마의 유전자는 바로 이 말 속에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주셨던 거다.


어쩌면 유전인자는 함께 한 시간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빚어낸 문화처럼.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동네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물려받은 유전자와 더불어 '문화'라는 유전자를 이식받으며 성장한다는 말이 아닐까. 요즘 들어 부쩍 부부가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물론 생물학적으로는 아주 딴판이다. 자라온 환경도 다르다. 그런데도 부부가 닮아가는 건, 둘이 나름의 가족문화를 만들어 살아왔으니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우리는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당황스러울 만큼 생소한 유전자를 만났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현미경 속의 세포처럼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세포분열을 시작하기라도 한 걸까. 엄마는 못하는 거에 힘 빼지 말라고 하셨지만, 한 가지를 보태고 싶다. 만약, 못하는 게 좋아하는 거라면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간절함이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줄지도 모를 일이다. 새로운 '종'의 출현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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