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의 다정함을 위한 슬픔 보관
5월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형세를 키워가는 초록이 궁금해 아침 산바카라이 길어지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라일락. 이팝. 아카시아. 보랏빛 더듬이, 하얀 털뭉치 같은 꽃들. 내내 눈과 코가 호강했습니다. 새순이 띠는 밝은 녹색은 어째서 이다지도 반가움을 머금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요 며칠은 학교 담벼락과 공원 담장을 붉게 수놓은 장미가 사방에 만개했습니다. 담쟁이도 무럭무럭 잎을 키우고요. 자꾸만 발을 멈추어 카메라를 꺼내게 됩니다. 바야흐로 여름의 한 복판입니다.
제가 다니는 도서관 서가에는 커다란 고흐의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요즘의 하늘과 나무가 제게는 그 그림처럼 보입니다. 바람길이 보이고요.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뿜어냅니다. 바람은 형체 없이도 존재를 나타내곤 하지요. 누군가를 흔들어 놓는 방식으로요.
늘 거기에 잘 있어주어 고마운 풍경과 찬란한 고흐의 하늘을 보며 기뻐하다가도 줄곧 착잡했습니다.
이 여름을 빼앗긴 이들이 있습니다.
서가 바깥 세계 저편에는 참혹한 바람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전쟁과 학살이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학교에 폭격이 있었습니다. 168명의 어린이가 사망했습니다. 폭사였습니다.
어떤 비극은 너무 쉽게 화면 밖으로 밀려납니다. 유가의 흐름, 코스피 지수는 연일 생중계되는데 말입니다.
내친김에 한 문단을 더 할애하겠어요. 가혹한 바람은 세계 저편에만 불지 않습니다.
2026년 5월 17일, 강남역 10번 출구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10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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