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이란 말이 다정하게 쓰일 때

오늘의 수집 : 너의 취약함을 볼 수 있는 특권

by팡스키

4월입니다. 벚꽃 잎이 바삐 피어나고 지는 동안 줄곧 봄이 스치고 있음을 알아차리며 지냈습니다. 다가오고 떠나가는 숱한 인연 또한 저런 것일까 생각해 보면서요. 며칠간 산바카라로에는 떨어진 꽃잎이 바람을 따라 흩날릴 때마다 분홍빛 파도가 일었습니다. 곧 바싹 말라 흙으로 돌아가겠지요.

아름다운 것은 찰나에 있는 것일까요. 그 찰나를 저장하고 기억할 수 있다면 계속 바라볼 수 있을까요. 봄인 계절의 저는 순간을 간직하는 방법에 골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나요.

저는 이사를 마친 주말부터 바카라을 정리하며 오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시 읽고 싶은 것들만 소장하는 원칙을 지켰음에도 이십 대 초부터 사 들인 바카라이 상당했습니다. 바카라장 한쪽 구석이 내려앉아 합판 부스러기가 수북이 쌓일 정도로요. 비워내지 않으면 새로운 바카라에게 줄 공간이 없겠다 싶어 처분을 결심했습니다.


한 시절 부지런히 좋아한 이름들과, 두고두고 읽을 줄 알았지만 손대지 않은 바카라등을 한 번씩 쓸어본 뒤 빈 박스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손에 쥐고 한참을 서성인 바카라도 있었어요. 괜스레 페이지를 넘겨보다가 귀퉁이에 박힌 메모지를 발견하고 풀썩 앉은 뒤 날아가는 시간을 감각하는 밤도 있었습니다.


버리기 위한 정돈은 늘어지는 시간이 된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바카라의 물성은 낡고 바래지만 그 안에 적힌 메모, 물음표와 느낌표들은 어떤 장면, 무척 깊숙한 곳을 해상도 높게 소환하는 트리거라는 것도요. 그것들은 물건으로써의 바카라을 치우고, 공간에서 들어내도 남아 있는 것일까요.




의문을 품은 채 며칠을 보내는 동안 지난 계절 만났던 <지속가능한 사랑입니까>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 세계에도 작심한 듯 사별한 이의 유품을 정리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옷이며 가방, 전부 꺼내 바자회에 내놔요. 유일하게 버리지 못한 하나, 스카프가 있는데요. 바자회에 보낼 물품에 섞여 누군가에게 팔려버립니다.

그 스카프를 찾으러 다니는 소동이 한 에피소드에 펼쳐져 있어요. 그가 스카프를 잃어버릴 수 없는 이유는요. 제가 오늘 수집해두려고 하는 문장 때문입니다.


린타로 상은 단어를 수집하러 다닙니다. 눈과 귀를 열고 거리를 걸어요. 새로 태어난 단어와 표현, 용례를 카메라로 포착하고요. 펜으로 메모합니다. 고교생들의 대화를 듣다 슬며시 수첩을 꺼내는 식으로 말이지요.

집에 돌아온 저녁에는 바카라상에 앉아 모니터를 켜요. 하루 동안 모은 단어들의 뜻풀이를 적어봅니다. 새카만 밤 가운데 하얀 스크린이 달처럼 환히 빛나고 린타로 상이 생각을 정돈할 때마다 타닥타닥 타이핑 소리가 이어집니다.

린타로 상은 사전을 출판하는 편집부의 편집 위원입니다.


오늘의 수집


요코 상이 있던 시절, 지금보다 젊은 린타로 상의 꿈은 사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사전은 7-8년에 한 번 출판되는 바카라이라 많은 학자들이 기회를 얻는 건 아니었고, 린타로 상도 기회를 놓칠 때가 많았어요. 그때도 편집위원에서 제외된 날이었습니다.

벤치에 주저앉은 린타로 상에게 다가간 요코 상이 곁에 앉으며 말해요.

아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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