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과의 의미

삼문동 봉주르 아파트 1부: 아파트 재건축 전

by오서

“내용이 좀 다른 게 있어가 제가 수정을 좀 해서 다시 보내드려도 되겠심꺼?”

“내용이 다른 게 있다고요? 뭐, 그럼 수정해서 보내주세요. 제가 한번 볼게요.”

정한이 퇴근 전까지 아파트 전체 엘리베이터 및 게시판에 공고하라고 지시했던 배 소장의 횡령 내용이 적힌 게시물에 대해 배 소장이 수정을 요청했다. 잠시 후, 배 소장의 수정안을 받자 정한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전화했다.

“소장님, 이거 사실이에요?”

“하모예, 회장님이 잘 모르시는 부분이 있어가 제가 사실대로 고쳤심더. 지도 억울하다 아입니까.”

“그러니까 그 돈은 소장님이 받으신 게 아니라, 직원인 손재주 대리님 주도로 받았고, 식사 비용으로 쓰자는 거도 손 대리님이 었다, 그거죠?”

“맞심더. 인자 생각이 확실히 납니더.”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회의 때 직접 그렇게 해명하세요. 뭐, 소장님께서 직접 했든 아니든 어쨌든 관리자 소홀이니 사과는 하시고요. 그럼 게시물은 이번 회의 후에 소장님이 직접 붙이시기 바랍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정한은 베란다 밖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어딜 가든 이런 인간은 꼭 있네. 일 터지면 남한테 뒤집어씌우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



11월 입주민대표회의 날이 되자, 정한은 처음 주관했던 회의보다 더 긴장되는 것 같았다. 지훈의 말처럼 마치 판사로서 오늘이 중요한 심판을 하러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회의를 위해 그동안 어벤저스들과 수시로 비밀 작전 모임을 가졌고, 안일해의 양심선언 계획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그리고 그가 마음을 바꾸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왔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아마도 오늘 회의는 지난 회의보다 더 아수라장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안일해는 평소와는 달리 꽤 일찍 회의장에 나와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정한이 보지 못했던 비장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맞은편에 앉은 지건만과는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정한은 다시 한번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또 오늘 회의의 다른 점이라면 방청석이 사전 신청한 입주민들로 꽉 차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요청에 달려와준 입주민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감사했다.

“11월 입주민대표회의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공청회와 함께 진행하는 만큼 회의 마지막 순서에 입주민들과의 소통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개회를 알리는 정한의 의사봉 소리와 함께 회의가 시작되었고, 필수로 해야 할 결재와 예산 집행에 대한 의결을 마쳤다.

“그럼 다음 순서로 폐자전거 횡령 건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배임각 소장님의 해명과 사과가 있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가 직원 관리를 못 한 것에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더. 사실 그 돈은 저희 직원이 실수로 받게 됐고, 마침 그때가 점심시간이라 그 돈으로 식사도 하게 됐심더. 제가 소장으로서 단돈 십 원이라도 함부로 쓰게 하면 안 되는데 관리를 잘 몬 했심더. 죄송합니더.”

“뭐라카노? 니 그게 말이가, 빵구가? 어데 갑자기 직원들한테 뒤집어씌우노??”

“자, 자. 지금은 회의 진행 중이니 방청객 여러분은 정숙해주세요.”

배 소장의 변명에 벌떡 일어나 고함을 치는 진절희에게 정한은 자중해달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확인차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배 소장님 말씀은 배 소장님이 아니라 직원이 폐자전거 처리 비용 5만 원을 받게 되었고, 그 돈으로 직원들끼리 식사를 한 거다. 이게 맞나요?”

“예.”

방청객에 앉아 있는 어벤저스는 서로를 보더니, 귓가에 검지를 돌리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미간을 찌푸리며 의심의 눈초리로 웅성거렸다.

“일단 알겠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더 확인하고 결과를 공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1동 대표 안일해 이사님께서 오늘 중대한 양심선언이 있다고 하십니다. 안 대표님, 준비되셨나요?”

기다렸다는 듯이 안일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방청석에 있던 어벤저스는 내내 품속에 꼭꼭 감춰놨던 안일해의 양심선언문을 꺼내 방청객들과 동대표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다. 지건만과 그 측근들은 양심선언문을 보더니 동공이 확대되면서 일제히 안일해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배 소장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안일해는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양심선언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양심선언문


아파트를 위하고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진심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일이 이렇게 돼서 유감입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첫째, 관리소장 및 동대표 교체와 고발 조치를 요청합니다. 관리소장의 비리는 아주 많지만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녹취 파일을 들어보시죠.


1) 대가성 향응 제공에 대한 녹취 내용에 대해

아파트 관리업체 ‘유어홈’ 재계약을 대가로 업체와 소장이 몇몇 동대표들에게만 시내에 소재한 소고기 식당에서 200여만 원의 소고기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몇몇 동대표들은 2차 술자리까지 향응을 받았습니다.

이때 제가 이건 좀 아니다 싶어 이의를 제기하자 소장이 아파트 지하창고를 저렴하게 임대해준다고 했습니다. 그때 제가 유혹을 거절했어야 했는데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코가 꿰었습니다. 이 창고 임대 이후로 소장은 저에게 온갖 잡일을 다 시키기 시작했고, 급기야 배 소장의 자택에 에어컨을 거의 원가에 달아줘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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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삼문동 봉주르 아파트>,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저자입니다. 2025년 밀양시 청학서점 문학상주작가, 2026년 창원시 텍스트힙 문학상주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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