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문동 봉주르 아파트 1부: 아파트 재건축 전
“회장님, 이번 새 동대표님들이랑 업체들 연락첩니더. 이번에 새로 동대표 뽑히신 분은 딱 두 분이고예 나머진 전 동대표님들 고대로라예.” 정한은 소장이 뽑아준 동대표들의 연락처를 들여다보았다.
‘지건만’이라는 이름이 보이자 어제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모 하모! 회장 뭐 별거 없다카이. 내한테 다 얘기하면 돼. 회 장이 하고자 하는 게 생기면 일단 내랑 상의를 하면 된다고. 내가 동대표들 다 잡고 있다 아이가!’
“지가 뭔데…….”
“예? 회장님? 뭐라고예?”
자리에 앉아 있던 배 소장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정 한을 바라보았다.
“아, 아니에요. 소장님. 소장님한테 한 얘기 아닙니다. 일 보세 55 요. 연락처 감사합니다.”
정한이 소장실을 나가자, 배 소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하……. 묘하게 기분 나쁘네. 내한테 한 거 같은데, 아인가?”
“여보세요.”
“저…… 공정한 회장님 맞으시죠?”
“네, 실례지만 누구세요?”
“저는예, 아파트 부녀회장 진절희이라고 합니더. 우선 회장님, 당선되신 거 억수로 축하드립니데이.”
다른 사람들보다 억샌 경상도 사투리가 정한의 귀에 예사롭지 않게 꽂혔다.
“아, 부녀회장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회장님 혹시 시간 되시면 근처 카페에서 차 한잔하실랍니꺼? 아파트 운영에 대해 드릴 말씀도 있고예.”
“그럼요. 당연히 만나 봬야죠.”
정한이 카페에 도착하자,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정한에게 손을 흔들었다.
“부녀회장님 맞으시죠?”
“맞심더. 제가 부녀회장 진절희고예, 이쪽은 총무 유별라.”
전형적인 한국 아줌마 파마머리에 쌍꺼풀 진한 눈이 다부지게 56 보이는 부녀회장과 어깨까지 오는 단발에 외꺼풀 눈이 차분해 보이는 총무. 이 둘은 정반대의 성향같이 보였다.
“회장님, 우리 부녀회가 이번에 회장님을 얼마나 열심히 밀었는지 아십니꺼?”
“그래요? 전혀 몰랐습니다. 감사드려요.”
순간 정한은 이 두 사람이 자신을 엄청 지지했다는 생색을 내 기 위해 만나자고 한 건가?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오히려 저희가 회장님께 감사드려요. 저희가 얼마나 회장님 같이 젊은 분이 나오길 바랐는지 아세요? 이렇게 회장 선거에 나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안일해가 또 나왔다는 말에 혹시라도 단일 후보로 당선될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다고요.”
총무는 두 손을 모아 진심으로 정한에게 감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안일해 대표님이 회장이 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진절희와 유별라는 정한의 질문에 서로를 바라보더니 동시에 크게 한숨을 내쉬며 커피를 들이켰다.
“회장님, 지금부터 저희가 하는 얘기 잘 들으이소.”
부녀회장은 머그잔을 내려놓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아파트가 벌써 20년이 넘어쓰예. 저희 둘은 입주 초기에 들어와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걸 목도한 사람들이에요. 지금까지 아파트 회장들이 얼마나 많은 비리를 저질렀고, 입주 민대표회의 동대표들부터 그 배임각 소장 놈까지 어떻게 연결돼 57 있는지를 소상히 알고 있다, 이겁니더.”
“그래요? 대체 얼마나 심각한 일이 있었던 거예요?”
“회장님, 저희 믿어주실 수 이쓰예?”
부녀회장의 ‘믿어줄 수 있냐’는 물음에 정한은 먼저 커피 한 모 금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제가 부녀회장님과 총무님을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게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하고 부당한 게 있다면 없도 록 하는 게 중요하죠.”
정한의 안경 너머로 확고한 눈빛이 느껴진 진절희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파트 입주 초기에 초대 회장이 있었는데 어찌나 많이 해먹었는지 그 돈으로 구의원까지 했다 아입니까. 우리가 고발도 했고예. 그다음 회장도 똑같이 해 먹다가 저희한테 걸려가 고발당 하고 벌금까지 내고 난리도 아니었심더. 뭐, 엄청 예전 이야기까지 다 하기는 너무 길고 지금은 전 회장이랑 동대표들, 배임각 소장이랑 소장이 소속된 관리업체 ‘유어홈’이 더 문제라예.”
진절희의 말을 들으며 정한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서로 자기 살기 바쁘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를 만큼 조용하고 무관 심해 보이던 아파트에, 이렇게나 많은 문제로 얽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지금 아마도 회장님이 당선되고 나서 지들끼리 비상일 거예요. 꼴좋지! 안일해가 됐어봐. 지들끼리 축제라도 했을걸요.”
유별라의 얘기를 듣자, 정한은 회장 지원서를 내러 갔을 때 배 소장의 태도가 떠올랐다. 그는 그때 있었던 일을 그녀들에게 그 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이 인간들 안일해 회장 시키고 또 지들끼 리 쿵작쿵작하려고 한 거지! 회장님, 우리가 안일해 후보 등록하고 나서 안일해만은 막으려고 다른 회장 후보를 얼마나 찾았는지 모르시죠? 저희는 정말 후보 한 분이 더 나오셨다는 말 듣고 어찌나 마음이 놓이던지…….”
유별라는 손바닥을 마주치며 당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저 ……. 아파트 회장도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고요. 앞으로 두 분이 많이 도와주세요.”
“회장님이 저희 믿어주시기만 하면 저희는 얼마든지 회장님 도울 낍니더. 저희가 도와드릴 테니까 지금 이 문제부터 해결해 주세요. 하던 얘기 이어서 말씀드릴게요.”
진절희는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안일해의 가장 큰 문제가 뭐냐면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빈 공간이 꽤 있거든예. 근데 이 인간이 그 공간 중 일부를 자기 창고로 쓰고 있다는 거라예. 그것도 3년이나! 안일해 그 인간, 저번에 회장 떨어져놓고 이번에 또 기를 쓰고 출마한 이유가, 회장 돼가 그 창고 마음 놓고 계속 쓰겠다는 심산이다, 이겁니더!”
“네? 아파트 공용 부지를 개인이 사용한다고요?”
정한은 머그잔을 입에 갖다 대려다 멈추더니, 놀란 표정과 동시에 잔을 내려놓았다.
“그렇다니까예! 처음에는 거기를 몰래 쓰다가 입주민들한테 걸리가 호되게 욕을 먹어쓰예. 그라더만 당장 빼겠다고 하더니 세상에, 거기 문까지 달았다니까? 그라고 거서 가끔 용접까지 하는데 정말 불안해서 미치겠심더! 회장님도 아시지예? 얼마 전에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있는 전기실에서 불났던 거. 그 인간이 뭐라는 줄 압니꺼? 그나마 지 창고가 지하주차장에 있어가, 지가 일하다 빨리 발견해서 큰불 막은 거라나? 하! 기가 막히가. 누가 아나? 지가 불 내놓고 오리발 내미는 건지!”
진절희는 다시 부아가 치미는지 아이스커피를 벌컥 들이켰다.
“그거 불법 아니에요? 구청이나 이런 데 신고하면 되지 않나요?”
“회장님, 우리가 그 생각 왜 안 했겠어요. 지금 문제가 뭐냐면 안일해가 몰래 쓰던 지하 공간을 저번 회장이랑 입대의, 그러니까 입주민대표회의에서 정식으로 임대차 계약을 해줬다는 거예요. 정신 나간 사람들 아니에요? 공용 부지 사용 자체가 불법인 데 그걸 지금은 아파트와 임대차 계약을 맺고 월세를 받으며 허용하고 있는 거예요. 임대차 계약을 하고 나니까 안일해 그 인간은 ‘나 이제 아파트에 월세 내고 지하 공간 떳떳하게 쓴다!’ 이러고 있어요. 더 어이없는 건 월세도 고작 20만 원으로 의결한 거 있죠? 요즘 같은 세상에 월세 20만 원짜리 창고가 어딨어! 게다가 경리한테 알아보니까 월세도 4개월이나 안 내고 있어요!”
“불법인데 월세도 안 내고 있다고요? 입대의에서 의결해서 임대차 계약을 맺으면 그게 합법으로 되는 거예요?”
정한이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묻자, 유별라가 말을 이어갔다.
“물론 아니죠. 불법 행위를 허용해준 입대의 전체, 즉 전 회장 과 동대표 모두 다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구청에 신고를 못 했어요. 동대표 중에 안일해 이런 인간이랑 똑같은 인간들도 있지만, 정말 일 열심히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분들까지 벌금을 물게 되거든요.”
“그럼 이 불법을 저번 입대의는 왜 임대차 계약까지 맺으면서 허용해준 거예요?”
“바로 그거라예, 회장님. 동대표를 아무도 안 할라고 해가 후보가 없으니, 안일해 1동 대표를 엄청 오래 해왔거든예. 물론 지금 동대표 중 절반 이상은 다 오래 한 사람들이고. 게다가 다 고령자 투성입니더. 젊은 사람들은 다 회사 다니고 바쁘니 동대표 할 사 람도 없쓰예. 안일해가 나이 많은 몇몇 동대표들과 억수로 친합니더. 그 영감탱이들한테 만날 행님, 행님 하면서 술이며 밥이며 엄청 사기도 하고예. 특히 지건만이라고 영감탱이가 하나 있는데…….”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