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문동 봉주르 아파트 1부: 아파트 재건축 전
회장 후보 등록이 마감되고, 회장 후보는 8동 대표 정한과 1동대표 안일해 두 사람으로 확정됐다. 후보 등록을 위해 아파트 선거관리위원회를 찾은 정한은 짧은 스포츠머리에 거무튀튀한 얼굴의 안일해와 마주쳤다. 안일해는 정한을 보자, 일어서며 악수를 청했다.
“어따, 반갑소. 지는 안일해라고 하요. 공정한 선상님 맞죠잉?”
진한 전라도 사투리, 국방무늬 바지에 워커, 작업조끼, 짧은 스 포츠머리와 그을린 얼굴. 정한은 안일해가 마치 군인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네, 반갑습니다. 공정한입니다.”
“아이고, 이렇게 젊은 선상님이 워째 회장까지 나와부렀소?”
“아, 그냥 뭐, 한번 해보려고요.”
“지는요, 원체 주변에서 회장 하라고, 하라고 해부러서 어따, 아파트를 위해서 한 몸 불살라 불자! 하고 나와부렀소.”
“아, 그러시군요. 동대표 경험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지가 기술이 쪼까 있어서 잘잘한 공사 같은 거 좀 도와주고 그랬지라. 다 무상으로! 지는 이 봉주르 아파트를 겁나게 사랑해 불어요. 삼문동도 허벌나게 사랑하고요. 근디 공 대표님은 선거 운동 하실랍니까?”
“선거운동이요? 그런 거도 해야 해요?”
“해야 하는 건 아니고 규정상 어깨띠 두르고 명함 돌리는 정도는 허용돼 불거든요.”
“아, 그런 거면 전 안 할 거예요.”
“그람 저는 해불랍니다. 괜찮으시죠잉?”
“그럼요. 그거야 안 대표님 자유죠. 열심히 하세요.”
그렇게 일주일간의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됐다. 안일해는 정말 매일 ‘기호 1번 안일해’ 띠를 두르고 아파트를 돌며 마주치는 사람마다 명함을 돌리고 있었다.
“삼촌, 삼촌도 이런 거 돌리고 해야 하는 거 아냐?”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안일해에게서 명함을 받아 온 지훈이는, 저녁을 먹으러 온 정한에게 명함을 쑥 내밀며 말했다.
“굳이? 저런 거 한다고 사람들이 뽑아줄까?”
“우리도 회장 선거할 때 선거운동 하거든. 선거운동이 엄청 중요해. 선거운동 잘해야 애들이 뽑아주거든. 그리고 나 이 아저씨 너무 마음에 안 들어.”
“어디가 마음에 안 들어?”
“회장이랑 너무 안 어울리게 생겼어.”
“야, 외모로 그런 걸 판단하면 안 되지. 어떻게 알아? 일은 잘 할지.”
“난 지훈이 말에 동감! 사람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어. 회장 후보라는 사람이 옷차림이 그게 뭐냐? 그래도 아파트 대표 후보면 좀 깔끔하게 입고 선거운동을 하든지. 작업복 그대로 입고 옷에는 여기저기 페인트에 진흙에……. 사람들이 다 욕하더라. 기본 예의가 안 됐다고.”
주방에서 국을 끓이던 정해가 국자로 허공을 찌르며 말했다.
“그래도 나처럼 아예 안 하는 거보다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
“그러게. 넌 무슨 똥배짱으로 선거운동을 안 해? 당연히 뽑힐 거 같아?”
“그런 건 아니고. 부끄러워서. 젊은 놈이 할 일 없어서 이런 거 나 나온다고 하지 않겠어?”
“야, 그러지 말고 현수막이라도 하나 걸자.”
“현수막 안 돼. 싫어! 선거 규정에 상대방이 하는 거만 허용 돼……. 띠 두르고 명함 뿌리기.”
“그럼 출근 시간이라도 잠깐 나가서 인사만 해.”
“됐어, 다 출근하는데 난 출근도 안 하고 인사하는 게 더 그렇지…….”
정해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정한의 마음을 잘 알기에 괜한 말을 꺼냈나 싶었다.
“삼촌, 걱정 마. 내가 우리 학교 애들한테 기호 2번이라고 다 얘기하고 다닐 거야. 우리 학교 애들 대부분이 우리 아파트 사는 거 알지?”
“우리 지훈이밖에 없네. 말이라도 고맙다!”
정한은 지훈의 통통한 볼을 꼬집어주었다.
“아 참, 너 회장 공고문 보니까 네 이력은 하나도 안 적었더라? 게다가 학교는 또 왜 그렇게 적었어? 왜 딸랑 학사만 적어놔? 이력은 또 왜 유라기업만 적었대? 유라기업은 지 선배가 사정사정해서 잠깐 있었으면서.”
“아이고, 됐어요, 됐어. 허위로 적은 거도 아니고. 아파트 회장하는데 무슨 이력이며 학력을 빽빽하게 적어? 아파트 일에 필요하지도 않은걸.”
“야, 내 자존심이야, 내 자존심. 아 아파트에 사는 엄마들이 죄다 내 동생인 거 아는데 안 그렇겠어? 게다가 이 아파트 여자들이 허세는 또 좀 심해? 대한민국 최고 대학, 한국대학교에 석사는 해외파인데 내가 입이 얼마나 근질근질하겠냐? 네 이력이 좀 화려해?”
“거기까지……. 이미 다 지난 일이고요. 지금은 그냥 백수. 오케이?”
“휴, 네가 자발적 백수지 뭐, 능력이 없어서 그래?”
“어쨌든.”
“너 그러다 80만 원 날아가!”
사실 정한도 불안하긴 했다. 선거운동을 하지 않는데 입주민들이 뽑아줄까? 라는 불안감이 어떻게 없을까. 하지만 남들 다 일하는 시간에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정한의 입장에서는 고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정해가 다시 한번 강조한 80만 원을 듣자, 불안감이 점점 더해지고 있었다.
“이번 회장 후보들인갑네?”
“아무래도 젊은 사람 뽑아야 하지 않겠나?”
“근데 이 젊은 사람은 우째 코빼기도 안 보이노? 아까 1동 아저씨는 선거운동 한다고 난리더만.”
“그르게. 그래도 선거인데 느무 조용하다, 이 사람은. 당연히 될 끼라고 생각하는 긴가? 괜히 미워질라카네?”
쓰레기 분리수거 날이라 엘리베이터 안은 정한을 비롯해 다섯 명이 함께 타고 있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정한을 알아보지 못한 아주머니들은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정한과 안일해의 회장 후보자 등록 공지사항을 보며 쑥덕거리고 있었다.
‘하, 선거운동 안 하는 게 정말 안 좋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정한은 집으로 들어와 소파에 털썩 앉으며 구시렁거렸다. 좀전까지 선거운동을 안 하는 것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주민들이 했던 말이 은근히 마음에 걸렸다.
“야, 아빠한테 너 아파트 회장 나갔다니까 완전 노발대발!”
정한이 전화를 받자마자, 정해는 뭔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떠들썩하게 말했다.
“아, 진짜. 그런 걸 뭐 하러 얘기해?”
“아니, 뭐 통화하다 보니까. 근데 아빠네 아파트 회장 보니까 맨날 욕만 먹고 골치 아프다고 절대 하지 말라고 난리였어.”
“누가 그걸 모르나? 내가 이런 거 안 해본 것도 아니고.”
“아, 맞다. 너 왕년에 장난 아니었지. 흐흐! 와, 진짜 너 대학생때 그 일은 지금 생각해도 어우! 닭살 돋아.”
“다 옛날얘기거든?”
“뭘 옛날얘기야. 사람이 변하냐? 어우 살 떨려. 아빠가 너한테 전화해서 하지 말라고 한다는 거 내가 한 큐에 방어했지.”
“어떻게?”
“뭐 어떻게야? 월급이 80만 원이라고 하니까 열심히 해보라던데? 풉! 나 빵 터졌지 뭐야. 아빠네는 세대 수가 적은 아파트라 회장 월급이 그렇게까지 안 된대. 그나저나 곧 투표 날인데 어때, 예감이?”
“몰라. 뭐 어떻게 되겠지.”
“그래도 내 주변에 엄마들이 그러는데 너 미는 사람 은근히 많대. 이제 젊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우리 아파트도 바뀌어야 한다는 사람이 꽤 많다고 하더라고. 하긴, 나도 네가 동대표든 회장이든 안 나갔으면 이런 거에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했을 거니까.”
전화를 끊고 난 정한은, 정해가 ‘미는 사람이 많다’고 한 말에 방금 전까지의 걱정이 좀 누그러지는 듯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투표일이 되자, 정한에게도 메시지가 도착했다. 전자투표를 할 경우 문자로 링크를 통해 참여하라는 안내였다.
“삼촌! 투표했어? 아, 삼촌 좀 씻고 옷도 좀 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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