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째라면 배 쨉니다

삼문동 봉주르 아파트 1부: 아파트 재건축 전

by오서

소장님, 곧 입대의 회의 날인데 올라온 안건이 있나요?”

“다른 건 없고예. 혹시 회장님 안일해 대표가 쓰고 있는 지하주차장 창고 얘기 아십니꺼?”

“아뇨. 그건 어떤 거예요?”

진절희에게 모든 스토리를 들은 정한이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모른척했다. 배 소장은 슬슬 눈치를 보더니 지하창고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래가 요즘 입주민들이 지하창고 빨리 빼라고 난리입니더. 근데 또 계약까지 해주가 막무가내로 빼라 카지도 몬하고…….”

“근데 소장님, 애초부터 지하 공용 공간을 개인이 사용할 수가 없는데 그 계약은 대체 누가, 왜 해준 거예요?”

살짝 내려온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을 내 보이며, 정한이 물었다.

“전 입대의에서 의결한 거라 지는 잘 모르지예. 회장님이랑 동대표님들이 결정하시는 거라 지는 뭐 아무 권한도 없심더.”

“역시 그렇죠? 맞아, 맞아. 입대의에서 결정하는 걸 소장님이 뭐라고 하시겠어요. 전 또 소장님이랑 안 대표랑 엄청 친해서 불법인 거 알면서 막 눈감아주고 그런 줄 알았는데, 역시 우리 배 소장님은 그런 분 아니죠?”

정한이 미소를 보이며 배 소장을 바라보자, 배 소장도 어색한 웃음을 짜내며 말했다.

“하하하하, 은지예? 지는 안 대표랑 전혀 안 친합니더. 지가예. 얼마 전부터 창고에서 빨리 짐 빼라고 얼마나 닦달했다고예. 고마 안 대표 창고 때문에 제 머리 보이소. 얼마 안 남은 제 머리가 더 빠지는 거 같다니까예!

“그럼 우리 소장님 탈모 방지도 할 겸, 제 첫 회의 핵심 안건은 ‘안일해 대표 창고 반환 건’으로 정할게요.”

“예? 회장님, 안 대표 문제는 굳이 입대의에서 논의할 가치도 없쓰예. 얼마 전에 뵀던 지건만 대표님 아시지예? 지 대표님 말 한마디면 바로 뺄 거라예.”

“아……. 그래요? 그럼 지금 하죠, 뭐.”

“예?”

“아니, 한시라도 빨리 빼야 불법도 사라지고 입주민 불만도 사라질 거 아니에요. 여보세요? 지 대표님, 저 공정한 회장입니다. 혹시 지금 시간 되시면 소장실로 와주실래요? 저번에 무슨 문제 생기면 지 대표님께 얘기하면 된다고 하셨던 게 생각나서요. 우리 지 대표님께 제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지건만에게 전화를 거는 정한을 보며 배 소장은 적잖게 당황하고 있었다.

“다행히 시간이 되셔서 지금 오신다네요.”

“아, 네…….”

잠시 후 지건만이 소장실로 들어서자, 정한은 깍듯이 인사하며 그를 맞이했다.

“아이고, 지 대표님. 어서 오세요. 바쁘신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공 회장, 내 뭘 도와주면 뇌노? 저기, 깡 양아!”

“지 대표님 잠깐만요. 소장님, 뭐 하세요? 지 대표님 오셨는데 빨리 커피 좀 내드리세요.”

“예? 지가예?”

“네, 소장님이요. 왜요? 뭐 할 일 있으세요?”

“아……. 아, 아니예. 알겠심더.”

배 소장은 지건만에게 눈치를 보내더니 떨떠름한 표정을 비치고는 다용도실로 향했다.

“그래. 공 회장, 할 말이 뭐고?”

“지 대표님 혹시 안일해 대표가 쓰고 있는 지하창고 임대차 계약 의결할 때 회의 참석하셨었죠?”

“했지. 근데 그건 와?”

“아니……. 그 자체가 불법인데 좀 이상해서요. 혹시 그때 설마…… 찬성하셨어요?”

“내가? 미칫나? 내가 그때 절대 안 된다고 얼마나 말맀는데. 근데 그걸 말이야, 아파트 수입에 도움 된다고 전 회장 놈이랑 다들 통과시키삐대. 도움 돼봐야 얼마나 된다꼬!”

“그래요? 역시 지 대표님. 그럴 줄 알았습니다. 얼마 전에 지하 주차장에 작은 화재 났던 거 아시죠? 그 후로 입주민들이 엄청 민감해졌어요. 안 대표가 거기서 용접 같은 거 하면서 불을 쓴다고도 하고…….”

“뭐? 이 새끼 이거 분명히 거기는 물건 적재만 한다 캤는데! 용접은 안 되지! 아파트 홀랑 다 태워먹을라고!”

“그쵸? 그래서 말인데…… 배 소장님이 안일해 대표는 지 대표님 말에 껌뻑 죽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지 대표님이 안 대표한테 전화 한 통 해서 당장 창고 빼라고 따끔하게 야단 좀 쳐주세요.”

지건만은 막 커피를 가져온 배 소장에게 ‘이 자식이 쓸데없는 소리를’이란 말을 눈짓으로 담아 보내자, 배 소장은 게 눈 감추듯 눈길을 피했다.

“그, 그래. 내 이 새끼 이거 혼쭐 함 내주지. 여보세요. 안가야, 니 지금 뭐 하노? 바쁘나? 니 지금 소장실로 올 수 있으면 온나. 아, 밖이가? 그라믄 내 말 잘 들으래이. 니 인마, 지하창고 빼라니까 와 안 빼노? 말 안 들을 끼가?”

“아따 성님,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뭔 소리요, 시방. 성님이 계약하게 해준다고 해서 해놓고 뜬금없이 뭔 소리당가?”

“뭐라카노, 인마! 니 거서 용접도 하나? 니 돌았나? 애당초 물건 적재만 하기로 한 거 아이가!”

“웜마? 이 성님이 아침부터 뭘 잘못 자셨나……. 성님이 나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안 했소. 지미럴! 계약하면 입대의에서 인정한 거라 조용할 거라드만 개뿔……. 부녀회장이 구청에 신고 한다요. 그라고 나가 공짜로 있소? 지하창고로 쓰게 만들어 준다고 나가 성님 배때지로 들이부은 술이며 쩌번에 에어컨도…….”

“시끄럽다, 인마! 니는 창고 이번 주 내로 무조건 빼라. 안 빼면 고마 지기삔다!”

지건만은 소리를 빽 지르더니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이런 새끼가 전라도 놈들 욕 다 맥이는 거라!”

“어후……. 우리 지 대표님 성격 장난 아니시다. 그래서, 뺀대요?”

“하모, 지까짓 게 내 말 안 듣고 배기나!”

“그럼 전 지 대표님만 믿겠습니다.”

정한은 지 대표와 배 소장에게 싸한 미소를 보였다.

9월 입주민대표회의.

“삼촌, 나도 삼촌 첫 회의 하는 거 보러 가도 돼?”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오서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장편소설 <삼문동 봉주르 아파트>, <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저자입니다. 2025년 밀양시 청학서점 문학상주작가, 2026년 창원시 텍스트힙 문학상주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5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4화저승사자 공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