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우철 씨는 가족들의 믿는 구석이다.
인명과 지명, 상호는 모두 가상의 이름입니다. 매 회차 첫 번째 이야기는 제가 여러 온라인 게임에서 겪은 실화이며, 두 번째 이야기는 빌런의 사연을 지어낸 픽션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오래 배우면 분명 그만큼의 익숙함과 능숙함을 손에 쥐게 된다. 어떤 자격증이 없더라도, 꾸준함이 만들어주는 전문성을 존경하고 존중한다. 대기업 유니폼을 입고 시스템에 맞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AS직원들도 대단하시지만 길가에 낡은 간판을 내걸고 뭘 가져가든 안경을 콧등까지 내린 채 척척 고쳐내시는 분들 또한 달인이 아닌가. 사라지면 아쉬울 것 같은 풍경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회사에선 그런 분들께 일정 수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이날도 그랬다.
"감사합니다. 클린짱입니다."
들려오는 고객분의 목소리는 아버지 또래의 다정한 아저씨 목소리였다.
"예- 수고가 많습니다- 클린짱이죠? 제가 청소기 증상 때문에 좀 전화를 했습니다-"
너무 따뜻한 말투의 아저씨라 마음이 한껏 열린 채 통화했다.
"제가요- 알파메가파워프로클리너를 쓰고 있는데.. 모터에서 소리가 안 나네요.."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제품 정보를 총동원해서 친절하게 응대해드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고객분께서 말씀하셨다.
"사실은요.. 제가 기계전자를 좀 알거든요? 그래서 분해를 좀 해보고 맨져봤는데.. 중간에 파손된 부분도 있어서 접착제로도 좀.. 손을 봤거든요? 그래도 모터는 해결이 안 되더라고요.."
곤란해졌다. 우리는 고객이 자체적으로 수리를 하면 자칫 그 조치로 인해 원활한 AS가 불가할 수도 있다 보니 그 사실을 꼭 미리 고지해야 했다. 간혹 이렇게 회사의 입장을 먼저 챙기기 위한 멘트를 할 때면 혼자 적잖이 두근거리곤 한다. 별 얘기 아님에도 상대의 기분은 내 맘 같지 않아서 발끈하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 서운해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객님, 수거 접수 하기 전에 미리 안내드립니다. 혹 접착제가 다른 부품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고 자가조치 하셨을 경우엔 원활한 AS가 불가할 수 있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늘 그렇다. 안내드리고, 참고 부탁드리고, 양해 부탁드려 봤자 듣는 사람이 못마땅하게 들으면 다 핑계고, 방어일 뿐 서로 불편한 상황 없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말로는 전달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 고객분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사장님(간혹 고객분들에 의해 나는 사장님이 되곤 한다.) 제가 전자공학을 잘 알아서.... 고장 낼 일은 없습니다. 그냥 조금 손 본 건데 왜 그렇게까지 말을 하세요..?"
"고객님, 이미 고장이 났을 것을 전제하는 게 아니오라, 자가 조치 후 다른 문제가 추가되는 경우를 종종 봤다 보니 미리 고지해 드리게 된 겁니다. 저희도 수거되자마자 보지도 않고 수리불가하다고 판단하며 일처리 하고 있지는 않으니 염려 마시고 맡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니 그래도.. 말이 너무 서운한데요.. 저도 기술잔데... 제가 한 건 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전제가.."
"아,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전달이 잘못되었다면 제 실수입니다. 죄송합니다."
이럴 땐 변명보다는 빠르게 납작 엎드리는 것이 문제를 더 빨리 해결하는 방법이다. 한참을 엎드려 포복을 한 후에야 고객분의 서운함은 누그러졌다.
종종 생각한다. 사람들이 의도까지 계산하지 않고, 말했을 때 그 텍스트만을 이성적인 시선으로 읽거나 듣고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말이다.
'어 이 직원이 이렇게 얘길 하네? 이건 보나 마나 무시하는 거 아닌가?'라는 식으로 '보나마다', '들으나마나'라고 덮어놓으며 일반화해 버리고 갑자기 분노 또는 상처받은 사람으로 돌변하는 상황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겪다 보니 심리상담까지 해주는 느낌이다. 내가 나를 상담사라고 칭하며 고객응대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이 흐름이 맞는지는 늘 생각하곤 한다. 감정을 달래는 데엔 말하는 시간도, 타이핑해야 하는 텍스트도 배로 드니까.
"여보-"
"아빠!"
"아범아-"
오늘도 우철 씨의 집에선 그를 찾는 소리가 한창이다.
이 집 식구들은 사용하는 물건이 말썽일 때 AS센터를 찾은 일이 드물다. 우선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아들인 우철 씨를 부르는 것이다. 우철 씨는 리모컨처럼 작은 물건부터 부피가 큰 가전제품까지 척척 고쳐내고 웬만해선 못하겠다고 포기하는 경우가 없었다. 심지어 줄 이어폰도 분해해서 다시 납땜하고 고쳐주는 그를 가족들이 닳도록 부르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여느 주말 아침처럼 우철 씨는 뉴스를 보며 빨래를 모으고 있었고, 옆에서 아내는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며칠 전 청소기를 떨군 후에 깨진 부분에 박스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서 쓰고 있는 모양새가 영 눈에 밟혔는데 오늘은 청소기 작동도 시원치 않아 보였다.
"희진 엄마, 청소기 줘 볼래?"
"여보. 그렇지 않아도 이게 말을 안 들어... 어디가 문젠지 모르겠는데, 잘 됐다. 함 봐줘요."
우철 씨는 먼저 먼지통에 뚜덕뚜덕 붙어있는 테이프를 뜯어냈다. 떼어낸 자리에 끈적하게 자국이 생겨버린 게 보기 좋지 않았다. 스티커 제거 스프레이를 뿌려서 테이핑 흔적을 깨끗이 떼어냈다. 스프레이를 말끔히 닦아내고 먼지통 파손된 부분을 접착체로 갈무리했다. 외관상으론 훨씬 보기 좋아졌다.
"여보, 희진 엄마. 이거 먼지통은 이렇게 하면 통째로 뺄 수 있거든? 뚜껑 여닫는 부분을 일단 접착제로 붙여버려서 청소 중 열리지는 않을 거야. 센타에 맡기기 전까진 이렇게 쓰고 먼지통 비울 땐 통째로 꺼내서 비워. 알겠지?"
"응, 알았어, 희진 아빠. 그럼 이거 본체에서 소리가 안나는 건 어떻게 해줘야 해? 그것도 같이 봐줘."
우철 씨는 안경을 두 겹 쓰고 나서 모터 부분을 열어보았다. 육안으로 보기엔 문제 부분을 찾기 힘들었다. 부품을 꼈다 뺐다, 납땜인두를 들었다 놨다 몇 차례 끙끙거렸지만 모터 작동이 간헐적으로 문제가 있다 보니 원인 찾기가 영 좋지 않았다.
결국 우철 씨는 모처럼 포기를 결정하며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이거 내가 월요일에 센타에 물어볼 테니까 오늘은 우선 저거 작은 청소기로 돌리자. 응?"
아내는 끄덕였다.
다음날이 되어 우철 씨는 잊지 않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해 주는 사람에게 참고가 될까 해서 자신이 어디까지 손을 봤는지도 알려주었는데 돌아오는 말이 영 서운했다. 자신이 조치한 것 때문에 AS가 어려워질 수도 있으니 알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열어본 건 다시 원위치했고, 먼지통 접착제도 자신이 한두 번 수리해 본 게 아닌데 아무렴 중요 부분에 흘러들어 가도 모르고 무식하게 접착제를 뿌렸을까봐?
자신이 어릴 때부터 뭔가 열어서 분해하는 것도 곧잘 하고, 수리하는 과정이나 고친 물건을 받아 드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즐거움에 몇십 년을 뚝딱뚝딱 이것저것 고쳐왔는데 이렇게 한 마디로 실력을 무시당하니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뭐 내 손에 가시라도 달렸단 말인가.
그냥 넘어가고 싶진 않고, 그렇다고 버럭버럭 화를 내는 성격도 아닌 우철 씨는 잠시 고민하다가 서운함을 표했다. 그랬더니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크게 당황하지도 않은 듯, 그런 뜻이 아니라고 자신을 달래는 것이 아닌가.
많이 미안해하는 것 같지도 않고 기계적인 느낌이었지만 여기에서 진심이네 아니네를 따져서 뭐 하겠는가. 우철 씨는 못 이긴 척 괜찮다고 말하며 접수를 했다.
나도 전기 기술자라고, 내가 한평생 고친 물건이 너희 회사 직원이 고친 물건 보다 더 많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상상 속에서나 이뤄지는 장면이었다. 자신의 숙련된 기술을 알아주는 건 가족들 뿐이라는 생각에 전화를 끊고 나서 가족들의 귀가를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우철 씨였다.
"내가 대학만 나왔으면 기계전자공학을 전공했을 거야. 뭐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