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인가요?

인간이 인간다워지게 만드는 건 뜻밖에 동물을 향한 사랑일지도.

by귀리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침 산바카라이 서늘하고 좋았건만, 7월이라는 이름에 맞게 서늘함이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아침에 게으르면 안 된다. 얼른 세수를 하고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쓴다. 반려견 모카의 물병에 얼음물을 담아 가방에 넣고 출발한다. 가자, 아침 산바카라!


십 분쯤 걸었더니 땀이 퐁퐁 솟기 시작한다. 나는 이렇게 더운데 털북숭이 모카는 신나게 걷는다. 기분이 좋으면 더위도 잊는 건지, 멀리 떨어진 반려견 놀이터를 향해 무한질주를 한다. 어찌나 빠른지 네 발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가까운 공원만 걷다 오고 싶지만, 항상 모카에게 선택권을 뺏긴다. 원하는 바가 다양하고 세밀한 인간과 달리 강아지의 욕구는 아주 단순하다. 다양한 냄새를 맡고 산바카라을 실컷 하고 간식까지 먹으면 행복한 심플 라이프. 그 정도만 채워줘도 충분히 행복한 모카와 갈등하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끌려가 준다.


산 중턱에 있는 반려견 놀이터에 도착했다. 더운 아침이라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웬일, 강아지 셋과 보호자 둘이 있다. 체구가 모카와 비슷하다. 모카가 들어갔더니 강아지 세 마리가 올망졸망 다가와 냄새를 맡는다. 보호자 한 명이 강아지들을 부른다.

“사랑아!”


사랑이라고 불린 갈색 푸들 강아지가 뒤돌아 가려는 자세를 취한다. 그런데 많이 본듯한 강아지다. 처음 봤는데 많이 본듯한 이 느낌은 뭘까. 나는 너를 아는데 너는 당연히 나를 모를 것 같은 이 기시감. 용기 내 말을 걸었다.

“혹시 유기동물 단체 유행사의 사랑인가요?”


보호자가 깜짝 놀라 답한다.

“네, 맞아요. 어떻게 알아보셨어요?”

“제가 자주 들여다보거든요. 너무 이뻐서….”

그렇다. SNS에서 나 홀로 사랑에 빠져 허우적댄 덕분에 나는 사랑이를 단번에 알아봤다.


사랑이는 8살의 유기견이다. 진한 갈색털에 요정처럼 솟은 귀가 특별해서 눈에 띄었고, 단체의 SNS를 팔로우한 상태라 소식을 매번 접하고 있었다. 사랑이가 임보가정에서 지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 임보가정이 내가 사는 도시에 있었던 것. 아직 입양가족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임보가족에게 이쁨 받으며 지내는 티가 확연했다.


사랑이는 처음 보는 내게도 아주 살가운 강아지였다. 마치 남편의 전 여자친구 SNS를 너무 열심히 염탐한 나머지 길에서 아는 척을 했다던 어떤 사연처럼. 비록 나만 알고 사랑이는 나를 몰랐던 사이지만, 처음 보는 아줌마가 마구 만져도 활짝 웃으며 손길을 받아주는 착한 강아지. 이름처럼 사랑이는 사랑 그 자체였다.


물론 사랑이만 예뻐한 건 아니다. 유기동물을 구조, 보호하는 단체의 SNS 여러 개를 팔로우한 상태고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자주 보이고 응원하게 되는 동물들이 있다. 동물들이 가족을 찾아 새 출발을 했다는 소식이 올라오면 아주 기쁘고 흡족하다. 잠도 잘 온다. 그런 날은 괜히 좋아서 남편에게 자랑도 한다(내가 왜?). 우리 누가 입양을 갔어, 내가 자주 보던 아이가 가족을 만났어. 그 아이가 입양이 돼서 너무 행복하다.


그런 유기동물들은 자기 전 침대에 누워 SNS를 살피는 동안 눈에 가득 담긴다. 구조될 때만 해도 눈코입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털이 엉켜있고, 지저분하고, 건강이 엉망인 동물들이 보호의 손길을 거쳐 사랑스러움을 되찾아가는 모습이 마음을 지그시 누른다. 모카의 동생을 데려오고 싶다는 마음도 굴뚝같다.

KakaoTalk_20260903_140128141.jpg사랑이 사진을 함부로 가져올 수 없어 사랑이를 만났던 놀이터에서 찍은 모카 사진을 올립니다 너무나 이쁜 내새끼랍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예쁜 동물들이 계속 올라오는 이 상황에 불이 붙기도 한다. 활동가들이 아무리 구조해도 끝이 없다. 펫샵이라는 잘못된 유통구조는 사라지지 않는다. 동물을 수집하듯 모으는 애니멀호더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자신이 학대하는 줄도 모르는 동물학대자들은 큰소리를 친다. 시골에는 목줄에 묶여 밭을 지키는 방치견들이 가득하다.


왜 구조를 해도 해도 악인은 끝없이 생성되는가. 먹을 게 지천으로 널렸는데 굳이 강아지를 잡아먹겠다고 고집을 피우는가. 반려동물과 연결된 세계에는 항상 물음표가 붙는다. 마치 총량의 법칙처럼 반려동물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생명의 값어치를 멋대로 계량하는 악인 역시 늘어난다.


잠들기 전 SNS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유기동물을 마음에 담는 시간. 그리고 따뜻함과 잔인함이 공존하는 세계를 괴로워하는 시간. 악인들의 만행을 보며 서글픈 마음이 들다가도 그 안에서 생존해 행복을 찾아가는 동물을 보면 세상이 알쏭달쏭해진다. 유기되고 학대받던 동물들은 몸 하나 뉘일 곳을 만나 집밥 한 끼 먹는 것만으로도 알아서 희망을 챙긴다. 그런 모습을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야박한 시선을 잠시 접게 된다. 내가 악인들을 혐오할 때 세상과 화해를 주선하는 건 아마도 털친구들일 것이다. 그저 착하기만 한 동물들.


그러고 보니 알겠다. 오늘 만난 사랑이를 떠올려도 알겠다. 내 곁의 모카를 비롯해 수십 년 사이 우리 가족을 거쳐 간 동물들.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수많은 누군가의 반려동물들. 마음이 아팠다가 기뻤다가, 슬펐다가 행복했다가, 분노했다가 뿌듯해지는 잠들기 전 그 모든 순간은 사랑이구나. 곁의 동물들을 향한 사랑이구나. 인간이 인간다워지게 만드는 건 뜻밖에 동물을 향한 사랑일지도.


오늘 밤도 베갯잇에 그렁그렁 매달려 나를 잠 못 들게 만드는 건

사랑인가요?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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