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en's New Diary> #12
나는 해운대 바닷가 한 호텔의 룸메이드로 일하고 있다.
십 년 전, 우연히 아르바이트하는 기분으로 시작했던 일,
엘리스가 토끼 굴에 떨어진 것처럼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과는 다른 시간,
다른 분위기, 다른 질서로 움직이는 이곳에서 수많은 질문과 번뇌가 치솟았다.
존재의 감옥인양 호시탐탐 탈출을 꿈꾸었던 곳,
생각대로 탈출에 성공해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창의력으로 빛나는 인재들이 모여있는 일터에서 일하기도 했으나,
우여곡절을 겪은 십 년 후, 나는 다시 이곳을 선택했다.
인생이 만만하지 않고, 실패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영원한 시간 안에서 더 좋은 것을 계획하시는
하느님이 주신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누군가는 급여가 더 많은 곳, 복지가 더 좋은 곳, 미래가 더 유망한 곳,
일이 덜 힘든 곳, 사람 좋은 곳을 이직의 조건으로 생각하겠지만,
나에게는 동료들에게 말할 수 없었던 나만의 이직 이유가 있었다.
너무나 깊이 내밀하게 숨겨져 있어서 스스로도 인정하지 못했던 꿈,
작가의 꿈을 일깨워준 곳이 바로 여기였기 때문이었다.
십 년 전과 같은 공간에 가서 내 의식의 변화를 느껴보고 싶었다.
역시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매일매일 이상한 사람들, 특별한 일이 차고 넘쳐서 감정이 요동치고 글감이 폭발했던 곳,
그래서 스캐쥴 시트 뒷면에 메모지를 끼워 원라이너를 작성하며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이 메모로 소설을 쓸거라 결심했던 일,
내가 궁금했던 의식의 변화는 이 대목이었다.
어찌 보면 다행히도, 어찌 보면 아쉽게도,
이상하고 특별한 사람들과 사건들은
내가 있었을 십 년 전과 십 년 후를 떼었다가 붙여놓은 듯이 똑같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을 글로 써서 세상에 알리고 재미와 감동을 주고 싶다는
재기 발랄한 감정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퇴근 후 직원용 출입문을 통과해서 오십 걸음 정도 걸으면 나오는
소나무 아래 첫 번째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십 년 전, 원라이너 수첩을 꺼내어 전투적으로 오늘의 에피소드를 정리했던 그 자리에서
시선을 들어 바다를 바라본다.
'내가 쓰고 싶은 모든 것이 저 바다에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초조해지지 않고 곧 평화로워진다.
'꼭, 반드시, 기필코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했지만
나는 다시 존재의 감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무리 도망 다녀도 찾아내시어 나의 실패와 고통이
과정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시는 하느님의 시간 안에서
매일의 호흡과 땀을 봉헌한다.
(2026년 6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