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en's New Diary> #11
"둥지를 떠나지 못한 아기새"가 떠오른 건 한 사람 때문이었다.
얼마 전, 나에게 무척 잘해준 온라인 게임 동료가 있었다.
J
온라인 게임을 옮길 때 J는 아쉬워하면서 앞으로도 한 번씩 보자고 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과거형이 된 것은 고민 끝에 이제 더 이상 연락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J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J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도 처음에는 J를 만난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이만큼 나이 먹고 슬롯에서 친구를 사귀기란 어려운 일이고,
나에게 호의적으로 잘해주는 J와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집이 같은 방향이어서 같이 다니게 되었던 J와
수차례 밥을 먹었다.
내가 한 번 사면 J가 두, 세 번 사는 정도였고,
내가 1,2만 원짜리 밥을 사면 J는 3,4만 원짜리 밥을 사는 식이었다.
밥 까지는 좋았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나는 술을 좋아해서 늘 반주를 하는 J가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문제는 반주가 아니라, 술이 들어가면 통제력이 약해지면서
격렬해지는 감정과 거칠어지는 언어였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어려움이나 상처를 내 보이는 것 까지도 좋았다.
그 상처는 자신은 모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았고,
자기 것을 다 주고, 참았는데, 모두 떠났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참지 않고 마음대로 살겠다는 것이 J의 레퍼토리였다.
"내가 좋으면 먹고 죽는다는 독이라도 먹을 거다."
그 레퍼토리에서 빠지지 않는 대사였다.
'독이라도 자신이 좋으면 먹겠다'는 말이 반복되면서,
나에게 사주는 밥의 액수가 올라가면서,
나는 점점 J에게서 마음의 벽이 두꺼워지고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 독이 나에게도 번져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마음의 문이 닫힌 일이 있었다.
건강 검진을 받고 양성이 의심되는 소견이 있어 정밀 검사를 받게 되었을 당시였다.
과거에 같은 부위에 암이 걸려서 항암까지 받았던 J는
내 결과를 나보다 더 관심을 갖고 물어봤다.
처음엔 고마웠다.
하지만 결과가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순리대로 치료를 해야 할 것이고,
아무 이상 없기를 기도하며 담담하게 지내고 있는 순간에도
계속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사태가 심화되었다.
"병원에서 뭐라고 해?"
의사 선생님이 모양이 착해서 아마 괜찮을 거라고 하더라고 하자,
"나도 그랬다. 그런데 암이었다."
고 하면서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당사자인 내가 걱정을 해도 "괜찮을 거야"라고 말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친구라면.
나도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J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거슬렸다.
결과가 나오는 날,
병원 갔다 오는 버스 안에서 J의 톡을 보았다.
"어떻게 됐어?"
나는 왠지 곧장 답하기가 싫었다.
결과가 나오고 처음 만난 날,
나는 J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됐어?"
"괜찮다고 하더라."
나는 당연히
"다행이다"
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모른다. 나도 그러다가 나중에 암이라고 했다.
만약에 너도 암이면 회사고 뭐고 다 정리하고 치료 준비해야 된다.
내가 다 해봤으니까 가르쳐 줄게."
그는 내가 암이 아니라는 것에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마치 암이기를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자기처럼.
J 때문에 회사를 옮긴 것은 아니지만 회사를 옮기고 나서
다시 그 일을 생각했다.
PTSD
심각한 사건을 겪은 후 정신적 스트레스가 비슷한 상황에서 다시 반복되는 증상.
자신이 겪었던 고통스러운 상황이 타인을 통해 감지되자
다시금 그 일이 재생되는 것처럼
그래서 뭔가 적극적이고, 신나보이기 까지 했던 기이했던 모습.
"둥지를 떠나지 못한 아기새"
벌써 십 년도 넘은 오래전, 아주 강성이신 신부님께 상담을 받았다.
첫째도 성장, 둘째도 성장, 오직 성장을 향해 용맹정진했던 시간,
성장을 멈춘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찾고 이해하고 키우는 작업,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죽을 듯이 힘든 순간들,
인생의 태풍 한가운데를 지나온 시간이었다.
한 번은 너무 힘든데 계속 다그치치기만 하시는 상담 선생님에게 대든 적이 있었다.
목숨을 걸고.
"왜 이렇게 까지 해야 됩니까?"
이성을 잃고 소리쳤을 때 선생님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죽비를 내려치듯 강하게 말씀하셨다.
"둥지를 떠나지 못한 아기새는 죽음도 아깝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전투력이 꺾이면서 조용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인상 깊게 보았던 아기새의 비행 영상을 다시 찾아보았다.
어미 새가 물어다 주는 벌레를 받아먹으며 둥지 안에서 자라던 아기 새는
어느 시점이 되자 둥지를 떠나기 위한 비행 연습을 시작한다.
이때 어미 새는 아기 새들이 스스로 날개를 펴고 도약해서 날아가기를 지켜볼 뿐이다.
어미 새도 초조한 듯 주변을 서성이지만 어떻게도 도움을 줄 수는 없다.
이 과정에서 땅에 떨어져 죽는 아기 새도 있었다.
죽음이 두려워 날지 않고 둥지 안에 머물러 있다가는 뱀의 습격을 받거나 굶어 죽게 된다.
죽지 않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아기 새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스스로 날아올라야 하는 것뿐이다.
이후로 동물 영상을 즐겨 보았다.
피곤할 때면 흐트러진 자세로 고양이와 강아지의 귀엽고 우스운 영상도 보았지만,
알을 깨고 바다로 나아가는 아기 거북이,
나는 연습을 하는 동안의 수많은 상처가 새겨진 날개를 가진 독수리,
먹기 위해 해가 밝으면 달리는 사자와 사냥감이 되지 않기 위해 달리는 사슴,
목숨을 걸고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자연의 엄정한 질서를 목도하면서
산다는 것은 성장하는 것,
성장하지 못하는 삶은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둥지라는
상담 선생님의 불호령이 이해되었다.
그럴 때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제저녁,
삼위일체 대축일 미사에서 들은 복음 말씀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메모했다.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다.
셋인데 하나다.
이것은 누구도 풀지 못한 어려운 문제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
직접 그 안에 들어가 참여함으로써만 알 수 있다.
더 이상 참지 않고 내가 좋으면 독이라도 먹겠다던 J의 처절한 외침을 떠올리며
왜 이렇게 까지 해야 되냐고 목숨을 걸고 대들었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내가 외면했고, 외면당했던 그 존재는
모두 "둥지를 떠나지 못한 아기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성장을 향해야 한다.
십 수년 전,
첫째도 성장, 둘째도 성장, 오직 성장을 향해 용맹정진했던 시간,
목숨을 걸고 인생의 태풍 한가운데를 지날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서서히 스며들어 조금은 더 키가 자랐다.
이제 둥지를 떠났느냐고?
데미안의 알.
깨고 또 깨고 나와야 하는 새처럼,
둥지도 떠나고 또 떠나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매일의 이부자리처럼
매일의 설거지처럼
불만없이
기쁘게
감사하게
나의 현실에 충실하게 참여하며
어린 신앙을 성장시키며
불고 또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비행하는
상처 많은 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2026년 6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