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en's New Diary> #9
5월.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을 읽었다.
한 챕터 한 챕터,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
생각의 군더더기가 없고, 명료하며, 아름답다.
특히 "주의력"에 대한 제시와 통찰을 주의 깊게 읽었다.
시몬 베유는 주의를 매우 중요하게 보았는데,
"15분의 주의는 선행보다 낫다"
는 문장은 현재 내 하루의 곳곳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먹고사는 일에 물리적인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쓰이면서
상대적으로 읽고 쓰는 일, 운동에 늘 아쉬움을 갖고 있었는데,
문제는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주의력의 문제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1시간 정도가 확보되지 않으면 운동이나 공부를 하지 않고 미루는 습관이 있었는데,
"15분의 주의"를 읽고 나서, 15분 이상만 주어지면 갈등 없이 움직임으로써
훨씬 생산적이고 활력적인 일상이 된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15분"이라는 시간은
수학자 허준이 교수가 어떤 인터뷰에서 소개했던 모래시계 이야기와 연결되었다.
허준이 교수가 지나가다가 우연히 어떤 가게에 들러서 모래시계를 보았는데,
모래가 떨어지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생각으로 샀다고 했고,
15분이라는 시간은 단지, 그 모래시계가 15분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인터뷰를 보고 15분짜리 모래시계를 샀다.
15분이란 시간은 뭔가 집중해서 하기에는 너무 짧아서 허투루 쓰고 마는 시간이었는데,
15분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함으로써 시간을 훨씬 풍성하고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글 또한 15분에 대한 통찰 이전이었다면 쓰지 않았을 테지만,
15분 동안 할 수 있는 유용한 일이라 얼른 쓰게 되었다.
주의력에 관해 밑줄 친 시몬 베유의 문장들이다.
한 문장 한 문장
읽기는 15초 만에 읽을 수 있겠지만,
15년은 생각할 만한 문장들이지 않은가.
의지가 아니라 주의력으로 과오들을 치유하려 해 볼 것.
가장 높은 단계에서의 주의력은 기도와 같다.
믿음과 사랑을 상정한다.
그 어떤 것과도 섞이지 않은 주의력은 기도이다.
지성을 선으로 향하게 하면, 온 영혼이 조금씩 선으로 이끌려 가지 않을 수 없다.
극도의 주의력은 인간에게 창조 능력을 준다.
그런 주의력은 언제나 종교적이다.
보상은 오직 욕망 없는(대상에 매이지 않는) 노력 안에 있다.
목표에 이르지 못한다 해도 언제나 유용한 노력들도 있다.
학문과 신앙. 기도는 순수한 형태의 주의력이고 학문은 주의력 훈련이다.
모든 학습은 영적인 삶의 굴절이어야 한다.
비유, 상징 등을 이해하는 방법.
그것들을 해석하려 하지 말고 빛이 솟아날 때까지 주시할 것.
지성을 훈련시키는 방법은 주시하기이다.
선을 향해 계속 주의력을 쏟아야 한다.
그러면 에너지의 질이 높아진다.
고독의 가치는 주의력을 더 많이 쏟을 수 있다는 데 있다.
스스로의 비참함을 응시하는 만큼 신을 응시하게 된다.
죄는 바로 인간의 비참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순수는 더러움을 응시할 수 있는 힘이다.
-주의력과 의지 p156-165
<중력과 은총>, 시몬 베유, 문학과 지성사
(2026년 5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