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벽

-<Oren's New Diary > #8

by오렌



'내일 서울 간다'는 글을 쓴 지 어언 오십일이 훌쩍 지났다.

수학여행 가는 기분으로 모처럼 간 서울행, 3월 말의 날씨는 초여름 같았고,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언니가 가보고 싶었다던 동물원에서,

추억과 회한이 묻어있는 서울 거리 곳곳을 거닐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옛날이야기를 나누었다.



1박 2일이 훌쩍 지나고 마지막 날 밤,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글은 계속 쓰고 있냐는 언니의 질문에 새 바카라을 쓰고 있고, 초고를 썼다고 했다.

내 대답에 언니가 이번에도 내 이야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이제 더 이상 내 이야기를 쓰지 말고, 소설을 쓰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조심스럽게 했다.

예상치 못한 말에 놀랐고, 즉시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지난번 바카라, <재생의 욕조>에서, 또 온라인카지노 작가님들과 같이 쓴 <글루미 릴레이>에서 가족 이야기를 쓴 일,

특별히 언니 이야기, 그것도 언니의 아픈 역사를 본인의 의중과 상관없이 쓴 것. 그것이 혹시 언니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나 싶어서 그랬다면 미안하다고 하자, 그건 정말 아니라고 하면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가족이라서, 나를 알아서 그런지 몰라도 "곰국 우리듯이" 같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는 것 같다고,

새롭지가 않다고 했다. 그 표현은 더더욱 놀라웠고, 쉽게 잊히지 않을 충격적인 리뷰였다.

이어서,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무겁고 심각한 옛날이야기를 꺼내고 곱씹는 것보다

가볍고 즐거운 게 좋다고 했다.

그리고 글은 남지만 말은 바람처럼 흘러가 버리기 때문에 말이 더 좋다고도 했다.



바카라을 읽고 난 직후, 나도 어땠냐고 묻지 않았고, 언니도 감상을 제대로 말한 적은 없었다.

한번 지나가는 식으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라는 표현을 통해

별로 좋게 읽지 않았나 보다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심장이 있어서 심하게 두근거리는 기분이었다.

동생이긴 하지만, 그래도 작가로서 내가 왜 이런 글을 쓰는지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말하고 싶었지,

감정적으로 대처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언니의 조언대로

"앞으론 소설도 쓸 생각이야."

라고 말했으면 가볍게 끝날 수도 있었겠지만,

왠지 그 말에 강한 반감이 들어 쉽게 넘겨지지 않았다.



계속 내 이야기를 쓰겠다는 말에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내 바카라을 후원해 준 언니의 친구들도 그러더라며,

구체적인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라 줄이는 듯하면서

"곰국 우리듯이"라는 표현을 한 번 더 함으로써 내 뇌의 심장에 각인시켰다.



나는 오래전 들은 비폭력 대화 강의를 생각해 내며 이 상황을 평화롭게 마무리하고자 애썼다.

"언니와 언니 친구들, 특별히 후원까지 해준 독자로서 애정을 갖고 있을 터,

비평하는 것은 상관없고, 취향이 아니라면 앞으로 안 사보면 되지,

나보고 쓰지 말라고 할 권리는 없다. 나는 쓸 거다."

머릿속 심장이 떨리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끝까지 말했다.



단호한 나의 대응에 언니는 그만 자자고 했고,

거실에 마련된 이부자리 위에 누워 오랫동안 잠이 오질 않았다.



내 글은 언니가 쓰기 바라는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 지어낸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지리멸렬하고 곰팡내 나는 과거, 지워버리고 싶은 사고, 실패의 기억도 맞다.



그러나 나는 내 삶을 썼고, 또 쓴다.

그걸 안 했으면 하면서 다른 걸 해보라고 하는 조언에 대해

들었던 그 강한 반감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 삶을 직면하고, 새롭게 바라보고, 쓸 용기를 낸 나 자신,

내 삶 자체가 부정되는 듯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언니는 계획에 없었던 미사에 가자고 했다.

마침 판공성사 주간이라 성사를 보았다.



성령 충만해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제 내가 너무 단호하게 말해서 미안하다."

"아니다, 내가 더 미안하다."

며 화해를 했다.

하느님 안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신부님의 말씀을 되새겼다.

"한번, 두 번,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안 나가게 되면

마음의 벽이 무너져요.

만약에라도 한 번 못 나갔으면 어떻게 하냐면,

다음번에 곧장 나가세요."



그 이후로 지금껏 매 주일마다 퇴근 후,

회사 근처 성당에 나가며 은총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또한, 언니가 해준 날카로운 질문과 조언 덕분에

초고를 출력하고 오십 일간 묵혀두며

내가 왜 이런 글을 계속 쓰려 하는지,

나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글이 나에게 무엇인지,



더 깊고 고요한 곳에서

마음의 벽을 단단하게 세우고 있다.




(2026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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