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체] 안 본 이야기

by오래된 도서관

영화 군체의 예고편을 보았다.
'부산행'에서 사람보다 빨리 뛰는 좀비를 보여준 감독은 이제 '하나의 개체의 진화가 종 전체의 진화가 되는 좀비 떼'라는 섬뜩한 설정을 했나 보다.
원래 걷는 시체인 좀비는 느리게 걸어도 무서운데, 부산행에서는 나보다도 잘 달리더니
이제 세대를 거칠 필요도 없이 순식간에 모든 종이 진화를 한단다.
'부산행'을 보면서는

"역시 빨리빨리의 나라, 한국에서는 좀비도 뛰는구나. 죽어서도 뛰어야 하는 좀비라니. 한국 좀비로 살기도 녹록지가 않아."

라고 생각했다.

이번 영화를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좀비 중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 하나가 나오면 무지성 좀비 떼가 나를 깨물어 움직이는 시체로 만들 아인슈타인 떼가 될 테고, 우사인볼트 급의 달리기 실력을 가진 돌연변이 하나만 나오면 우사인볼트 좀비 떼가 된다는 말인데,

'저 세계관에서 난 오프닝에서 죽는 등장인물이구만.'

보통의 재난이나 빌런은 머리가 좋으면 신체 능력이 떨어지고, 신체능력이 좋으면 머리가 나빠야지 뭐 이런 상도덕 없는 경우가 다 있나?
내가 이런 말 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떼를 지어 나오는 위협은 크기라도 작아야지.
아닌가? 내가 물리면 좀비가 되는 설정이라면 개미나 모기보다는 사람이 덜 위협적이긴 하구나.

상상 속에서조차 뛰고 싶지 않아서 초반 장렬한 죽음의 주인공을 상상했다.
그런데, 한 개체의 진화가 곧 모든 종의 진화가 된다는 설정은 좀비가 아니라 AI의 성장 패턴이 아닌가?
간헐적 영특함을 드러낸 뿌듯함에 영화 이야기를 좀 찾아봤더니 이미 감독이 AI에서 출발했다고 밝힌 기사가 있다.
뿌듯함에 조금 금이 간다...

실체도 없는 AI가 좀비의 얼굴로 표현되었다.
산업혁명 당시에는 노동자들이 때려 부술 기계라도 있었는데 그것조차 없는 AI혁명을 직격으로 맞고 있는 지금은 '러다이트 운동'처럼 때려 줄 대상도 없는 그 약 오름..
그래서 AI에게 좀비의 얼굴을 주고 때려보기로 한 것이라면,

"난 찬성일세!"

인간에게 형이상학은 그 자체로 공포이다.
그래서 실체를 만들고, 얼굴을 만들고. 그것도 안 되면 이름이라도 붙인다.
좀비 영화 장인이 AI의 특성이 주는 막연한 공포에 좀비 가면을 씌운 것은, 어찌 보면 친근한 공포의 얼굴을 준 것일지도 모른다.
얼굴 없는 막연한 공포와 좀비 얼굴을 한 존재감 절절한 공포 중 어느 것이 더 무서운지를 고르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는 도둑놈이 낫다.'지 않나.
이왕이면 안면 있는 잘생긴 좀비 떼이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