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에서 맞이한 아침, 몽골에서 배운 느림

by소믈리연

몽골에서 돌아온 지 사흘째. 떠나기 전에도, 떠나서도, 돌아와서도 여전히 여유롭다. 한 달 살기도 아닌 3박 5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었다. 아이들 없이 혼자 떠난 덕분일까, 초원이 건네는 고요함 덕분일까. 평소보다 일찍 잠들고 늦게 일어났으며, 매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지난해 중국사 수업에서 원나라 역사를 접했다. 칭기즈칸과 쿠빌라이가 펼친 거대한 역사를 배우며, 지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졌을 그 땅이 궁금해졌다. 50만 인구를 염두에 두고 만든 울란바토르 시내는 내가 사는 도시의 어느 풍경을 떠올리게 했고, 기병들의 식량에서 유래한 샤브샤브와 육포 맛은 미각 수준을 높였다. 독주를 마시지 못하는 편임에도 한국 소주의 원류가 된 칭기즈 골드 보드카는 입과 목으로 미끄러졌다.

한국보다 시계가 1시간 늦게 가는 곳. 현대식 자재와 전통 방식이 섞여 지어진 게르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차분했다. 문을 열면 엘리베이터나 계단이 나오는 아파트와 달리, 이곳은 문만 열면 야외다. 낮에는 여름, 밤에는 가을, 새벽에는 겨울로 변하는 기온 변화 속에서도 두꺼운 이불 덕에 적정 체온을 유지했다. 오전 5시 30분, 패딩을 챙겨 입고 산바카라을 나간 룸메이트가 돌아와 사과 한 개를 다 먹을 즈음인 7시 30분이 되어서야 조식을 먹으러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돌아오면 챙 모자와 햇빛 가리개 마스크를 쓴 채 게르 앞 의자에 앉아 머리 위로 올라오는 해를 바라보았다. 울타리 안에서는 말과 개, 고양이가 순찰하듯 게르 사이를 돌아다녔다. 말은 새로 돋은 풀을 뜯고, 개는 낯선 손님들의 냄새를 맡으며, 고양이는 사람 곁에 다가와 기지개를 켜고는 새침하게 사라졌다. 그들이 떠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좋았다. 손가락 마디만 한 육포 몇 점을 씹으며 가축과 유목민들의 동선을 따라 눈동자가 움직였다. 방목하는 소나 말이 울타리 근처로 오면 어디선가 말을 탄 주인이 흙먼지를 가르며 나타났다. 생소한 언어로 채찍 소리를 두어 번 내면, 백여 마리의 무리가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달아났다.


유목민들은 2,500여 마리가 넘는 가축의 풀밭을 찾아 1년에 네다섯 번 터전을 옮긴다고 한다. 물길을 따라 이동하는 이들에게 집을 짓고 부수는 일은 큰 수고가 아닌 듯했다. 나무, 양털, 천, 중앙 화로, 로프만 있으면 성인 남성 둘이서 두 시간이면 게르 한 채를 뚝딱 완성한다. 간결한 구조지만 지켜야 할 예절은 분명했다. 문지방을 밟고 들어오는 손님은 복을 가져오는 존재로 환영받지만, 나갈 때 문지방을 밟으면 집안의 복을 가지고 나간다고 믿어 다시 들어와 정화 의식을 치러야 한다. 밖에서 바라보는 문을 기준으로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침대를 두는 규칙도 엄격하다. 단순해 보이는 삶의 형태 속에 오랜 세월 축적된 문화와 절제가 담겨 있었다. 최소한의 물건만 두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집집마다 보유한 수천 마리의 가축은 이들의 삶이 결코 빈곤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운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자녀 교육을 위해 시내로 보내는 부모가 늘어나는 모습에서, 이 고요한 초원에도 소소한 변화가 불고 있음을 느꼈다.


남한의 15배에 달하는 땅에 부산시 인구 정도인 355만 명만 살아가는 나라. 사람보다 가축을 훨씬 더 많이 마주하며 자연이 내는 소리와 풍경을 있는 그대로 누렸다. 아침에는 태양이, 밤에는 푸른 그러데이션 아래 북두칠성과 수많은 별이 머리 위에 머물렀다.


사과를 베어 물며 '내년에는 아이들과 함께 와야지', '몽골 아이들처럼 말도 타고 별도 더 많이 봐야지' 하고 혼자서 기약했다. 정작 아이들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은 채. 여유로운 흐름에 몸을 맡겼던 덕분인지, 여독도 없이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일과에 집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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