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로 떠나는 날 아침. 여전히 짐을 싸지 않았다. 인솔자가 공유한 준비물 리스트를 눈으로 훑은 게 전부다. 집에 대부분 있는 물건들이었고, 굳이 더 챙길 거라면 컵라면 몇 개가 전부였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고, 가족 여행 짐을 항상 도맡아 싸던 습관이 있다 보니 출발하는 날까지 안일했다. ‘필요한 건 누군가 가져오겠지’라는 생각도 있었고.
몽골은 일교차가 15도나 나는 곳이다. 반팔부터 긴팔, 경량 패딩까지 챙겨야 했다. 안방 붙박이장 문을 열고 닫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허리가 좋지 않아 짐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막상 고르려니 딱히 손에 잡히는 옷이 없었다. 작년, 재작년에 즐겨 입던 옷을 발견하며 시간만 보내다 결국 평소 입던 티셔츠와 반바지, 긴 바지를 챙겼다. 바람막이, 잠옷, 속옷, 양말까지 넣으니 부피 때문일까, 28인치 캐리어가 꽉 차 보였다. 짐을 줄여 여유 공간을 만든 뒤 운동화, 상비약, 샤워용품, 컵라면 3개와 나무젓가락을 넣어 문을 닫았다. 노트북과 다이어리, 펜, 이어폰은 메시 소재의 숄더백에 따로 담았다. 예상대로 준비물은 간단했고, 그래서 뭔가 허전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에 올랐다. 10시 50분 집결 시간에 맞추기 위해 9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30명이 넘는 일행 중 일등으로 와 있었다. 집이 먼 사람이 일찍 도착한다는 불문율은 이번에도 통했다.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노트북을 펼칠 자리를 찾기 위해 식당가로 올라가 김치찌개 하나를 주문했다. 싫어하는 면을 빼고 밥 반 공기와 김치와 고기만 먹고 있는데, 일행에게서 전화가 왔다."벌써 도착했죠? 지금 어디세요?"
"밥 먹고 있는데 다 먹어가요."
"D 구역 의자에 있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식기를 반납하고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역시나 지방에서 온 분들이 모여있었다. 서울에서 온 일행은 딱 한 분.
체크인 카운터는 이미 열려 있었다. 모바일 체크인을 마친 일행들은 짐을 부치고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했다. 인터넷 면세점에서 주문한 물건을 찾는다며 흩어졌다.
밤 10시가 지나니 마티나 라운지는 문을 닫았다. 대신 24시간 운영하는 스카이 허브라운지에 할인을 받아 들어왔다. 탑승까지 두 시간. 고민 끝에 가져온 노트북을 펼쳤다. 밀린 업무를 정리하고 이어폰과 핸드폰을 충전하며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아이들과 한 달 살기를 할 때면, 캐리어를 인당 하나씩 챙기고 기내용 가방까지 더해 25kg 수화물 규정을 꽉 채웠었다. 현지에서 다 구할 수 있는 것들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리바리 싸 들고 다녔던 시절. 거실에 캐리어를 며칠씩 펼쳐두고, 빠뜨린 건 없는지 체크리스트를 확인하며 일어나지 않을 확률에도 철저히 대비했다.
하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은 달랐다. 짐만큼이나 행동도 가볍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아침부터 얼른 집을 나서고 싶었다. 오랜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도 아닌데 그러고 싶었다.
인천공항으로 오는 버스 기사님마저 친절해서일까. 아직 본격적인 여행은 시작도 안 했는데 좋다. 여태 다녀온 여행과 달리 이번 여행은 처음 시도해 보는 경험도 여럿 될 거 같다.
아직도 탑승까지 30분이나 남았다. 폰에 있는 앱으로 영어 공부를 하며 남은 시간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