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밥돌밥의 날이 왔다

by소믈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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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시작되면 우리 집도 ‘돌밥돌밥’ 모드로 들어간다. 하루 세 끼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두 번은 밥을 차려야 하니까.

중학교 1학년인 첫째는 키가 180센티미터를 바라보고, 둘째도 내년이면 나를 따라잡을 것 같다. 방학만 되면 잠은 또 어찌나 많이 자는지, 학교를 가지 않는 동안은 무조건 늦게 일어난다. 아침부터 학원을 보내거나 바카라을 읽히는 대신, 아이들은 자라는 일에 집중한다.

어른 같은 남자애 둘이 일어나 “엄마, 배고파요”라고 말하는 순간, 아직도 요리가 서툰 15년 차 주부는 주방으로 출근한다.

아이들이 자는 동안에는 웬만하면 요리를 하지 않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깨면 개운하게 못 잘까 봐서다. (내가 이 나이 때,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하는 소리에 깨면 그렇게 짜증이 났던 이유도 있음)


냉장고 안을 채우는 재료는 단순했다. 닭고기, 오리고기, 돼지고기 같은 육류는 기본. 사과, 복숭아, 키위, 수박. 채소는 오이, 버섯 정도가 전부. 그 외에는 엄마와 어머님이 만들어 준 기본 반찬 몇 가지, 그리고 각종 김치류. 이런 구성으로는 있는 재료만으로 원푸드 요리조차 만들기가 어렵다. 냉장고는 분명 차 있는데, 막상 꺼내 놓을 게 없었다.

먹고, 먹고, 또 먹는 아이들을 위해 집밥 레시피 영상을 검색한 적이 있다. 알고리즘은 친절했다. 간단한 조리법으로 그럴듯한 요리를 만드는 영상이 쏟아졌다. 애 넷을 키우면서도 저렇게 하는데, 나라고 못 할까 싶었다.

문제는 화면 속 냉장고였다. 그 집에는 늘 내가 없는 재료가 있었다. 그래서 없으면 없는 대로 따라 하기로 했다. 쉬워 보이는 영상을 하나 골라 세 번 연달아 봤다. 순서까지 외워서 막힘없이 따라 하고 싶었다.

김치냉장고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묵은 김장김치를 꺼냈다. 물로 빡빡 씻었다. 배추 잎맥에 퍼져 있던 짠맛은 씻어도 적당히 남아 있었다. 한 포기를 잡아 손목을 비틀어 물기를 짜고, 도마 위에 올려 1센티미터 간격으로 잘랐다.

선풍기 얼굴만 한 스테인리스 볼을 꺼냈다. 갓 지은 밥을 퍼 담고, 그 위에 김치와 참치, 마요네즈, 김가루를 올렸다. 숟가락 두 개로 밥풀 전체에 재료가 골고루 섞이도록 비비고 또 비볐다. 각자 접시에 2인분 같은 1인분을 담아 깨를 뿌렸다.

그날 이후로 오이 비빔밥, 고등어조림, 묵은지 말이, 대파전, 명란 청국장처럼 따라 하기 쉬운 영상을 찾아 집에 있는 재료 위주로 계속해봤다. 덕분에 우리 집은 이틀에 한 번꼴로 새벽 배송이 도착한다. 냉장고는 빈 공간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해지고, 예전엔 잘 쓰지 않던 양념들이 조리대 한쪽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손이 빠르거나 손맛이 좋거나 요리 감을 타고난 사람이 있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또 완전히 아닌 것도 같다. 늘 하는 요리는 정해져 있지만, 따라 하다 보면 감이 생긴다.

‘이 재료도 어울리겠다.’

‘이건 조금 더 넣어도 되겠다.’

요리하는 동안, 내 손은 어느 때보다 과감하다. 재료를 뭘 넣을지, 양념을 어떻게 맞출지 몇 초도 망설이지 않는다. 우리 엄마도, 외할머니도, 맛있다고 하면 늘 같은 대답이었다. “그냥 대충 넣어. 눈대중으로.”

그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고 하면 우스울 수도 있지만 나도 그런 거 같긴 하다.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닌데 막상 하면 손이 빨라지고, 적당히 먹을 만한 맛이 나온다.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어쩌면 이 또한 주부 내공의 한 항목일지도.


오전 9시 15분. 두 아이는 아직도 자고 있다. 10시 30분에는 치과 정기검진이 있어서, 이 글을 끝내면 바로 깨워야 한다.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오늘은 내가 처음 따라 했던 요리를 하려고 한다. 묵은지와 참치를 넣은 묵참 덮밥.

요리하는 시간이 30분이든 1시간이든, 우리 아이들이 먹는 시간은 늘 10분도 채 되지 않으니 진료시간까지 다 할 수 있을 듯.

아무쪼록 이번 방학 동안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만큼, 내 요리 실력도 자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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