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 동안 드라마 정주행한 날

by소믈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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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연휴 중 이틀째 날을 보내고 있다. 그것도 집에서. 늦장마 때문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어제 아침에 남편은 둘째를 데리고 강원도로 2박 3일 떠났다. 이번에도 나랑 첫째만 남았다. 첫째는 인근에 있는 중학교에 친구들이랑 축구하러 나가서, 남은 식구는 나뿐. 온종일 집에, 혼자만 있는 게 얼마 만일까.

요즘 차(茶) 수업을 들으러 다닌다. 교수님이 추천해 준 대만 드라마 <차금(茶金)>을 보기 위해 OTT플랫폼에 접속했다.


중심 소재는 대만의 대표적인 청차인 동방미인의 탄생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1950년대 복잡한 정치 상황, 화폐개혁을 통한 경제 구조 등 슬롯적 상황과 시대적 배경을 밀도 있게 다루고 있었다. 한 회차에 50분 정도로 12회로 구성된 드라마를 오늘 아침, 마침내 정주행 했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드라마를 볼 수 있었던 건, 내 건강 덕분이기도 하다. 3주 전에 발견한 허리디스크 파열로 인해, 매주 월요일마다 병원에 다니며 주사 맞고약을 복용하는 중이다. 체질적으로 소염제나 항생제 부작용이 있다 보니 보름 넘게 얼굴부터 발까지 다 부풀어 있는 상태다. 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통증과 부종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래서 이번 연휴 동안은 평소와 비슷한 일상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집에 혼자 있는 덕분에 오랜만에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든 생각이 있다. 만약 내가 당시의 슬롯적 배경을 전혀 몰랐다면 어땠을까. 작년 상반기부터 참여하기 시작했던 세계사 스터디. 매주 금요일 오전 5시 30분이면 주위가 고요하다. 열에 아홉 번은 잠과 사투를 벌이며 모니터 앞에 앉지만, 그런 갈등의 시간을 이기며 1년 가까이 중국사 공부를 해서일까. 배운 내용이 다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드라마 속 시대 상황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순간, 여러 고비를 넘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순간에 그 새벽의 시간들이 힘을 발한 것이다.


정주행을 마치고 바로 공방으로 나왔다. 다음 주 수업을 준비해야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드라마의 여운을 확인하고 싶었다. 가지고 있는 대만차들을 하나씩 꺼냈다. 드라마 속 전문가들처럼 멋진 맛 평가는 못 하지만, 나만의 기준으로 맛과 향을 차근차근 테이스팅해 보았다.

이틀 동안 12시간 넘게 드라마 정주행을 했다고 하면, 누군가는 귀한 시간을 비생산적으로 보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합리화하지 않더라도 그 시간조차 결국 내 일상과 일에 확실한 도움이 되는 시간으로 채웠다고 단정 짓고 싶다. '가치 없는 경험은 없다'라는 내 좌우명이자 신조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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