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점쟁이도 아니고, 사주나 관상을 보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소개받을 때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좋아 보이는 사람이 있고,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고, 호기심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찝찝한 느낌을 남기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걸 ‘촉’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촉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태도와 인상이라는.
서비스업에서 10년 넘게 일해 왔다. 그래서인지 식당에 가면 음식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다. 분위기다. 사장이 종업원을 하대하거나, 종업원이 손님을 불친절하게 대하는 집은 아무리 맛집이라도 두 번 가지 않는다. 그런 공기는 결국 음식과 대화, 표정에까지 묻어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같이 간 사람의 태도도 의도치 않게 보게 된다. 직원을 어떻게 부르는지,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어떤 말투로 주문하는지. 직원의 나이가 어리든 많든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 그 역시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니까.
예의는 거창한 게 아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말이면 충분하다. 그런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관계의 온도는 달라진다. 반대로 표정이 온화해도 말끝이 하대하듯 떨어지면, 나는 그 사람의 눈과 표정을 다시 보게 된다. 사소한 태도 같지만, 이상하게 나는 이런 부분에 민감하다. 오래 일하면서 몸에 남은 감각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비즈니스 모임에서 만난 사람이 있었다. 초면인데도 “어디 살아요? 어느 학교 나왔어요? 나 그 동네 잘 아는데.”라며 질문을 이어갔다. 질문은 궁금해서 묻는 방식이 아니라 캐묻는 쪽에 가까웠다. 그러고는 “됐어요. 더는 안 물을게요. 대충 알겠어요.”라며 대답까지 정리해버렸다. 짧은 대화였는데도, 내가 분류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 말투는 식당 직원에게도 비슷하게 나왔다. 부탁이라기보다 지시처럼 들리는 톤.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표현은 없었지만, 눈빛과 태도에서 묘한 불편함이 전해졌다. 내가 예민한 건가 싶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인간관계를 좁히고, 쉽게 판단하고, 결국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하고.
그런데 돌아보면 이런 신호는 대체로 맞았다. 가까워질수록 ‘촉’은 더 구체적인 이유로 바뀌었다. 말투, 태도, 시선. 결국 그때 느꼈던 불편함이 틀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그 사람과 잘 지내는 누군가도 분명 있으니까. 대신 나는 내 기준의 거리를 둔다. 그런 태도는 다음에도 반복될 확률이 높고, 내 인생에 굳이 그런 사람이 없어도 아무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초면에 싸한 ‘촉’이 올라올 때, 나는 그걸 여태 그래왔듯 나를 지키라는 안내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